목조관음보살좌상과 지장시왕도는 시 유형문화재로 지정


조성발원문, 후령통, 다라니 등이 발견 된 목조관음보살좌상은
1695년 득우·덕희 스님이 조성
지장시왕도는 1869년, 향로암에 봉안하기 위해 비로암에서
취선 스님이 제작한 것으로 추정



서울노원구 염불사
■ 연혁
서울 노원구 상계동 수락산 서쪽 기슭에 자리한 염불사(念佛寺, 주지 호명스님)는 조선 초기 무학(無學)대사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로, 창건 시 백운사라고 불렸으나, 한국전쟁 이후 중창되어 영몽사(靈夢寺), 쌍몽사(雙蒙寺), 염불사로 사찰명이 바뀌었다. 사찰의 당우(堂宇)는 1903년에 상궁 김씨가 건립한 전면 3칸, 측면 2칸의 지장전과 1965년에 하처사가 부인의 쾌유를 빌며 세운 전면 2칸, 측면 1칸의 산신각이 있다. 그리고 2005년에는 대웅전 터 옆에 한글 현판을 단 큰 법당을 건립하였다.
사찰 내에는 시 유형문화재 250호로 지정된 관세음보살좌상과 시 유형문화재 251호로 지정된 지장시왕도가 봉안되어 있다.  
 

1695년에 조성된 목조관음보살좌상은 장흥 봉일암과 수도암에서 조성한 불상 가운데 하나이다.

순천 송광사에 봉안되어 있는 동일한 형태의 목조관음보살좌상.
■ 불교문화재
목조관음보살좌상
목조관음보살좌상은 큰 법당 2층에 봉안되어 있는 높이 63cm의 중형의 보살상이다. 보살상은 신체와 비교하여 머리가 큰 편으로, 큰 복련과 앙련이 붙어있는 높은 연화대좌 위에 결가부좌(結跏趺坐)하고 있다.

보관은 화려한 영락장식과 화염보주 등 장식과 관대 등이 잘 남아있지만, 화불(化佛)은 없어졌다. 보살상은 정수리에 높고 길쭉한 보계(寶계)가 있고, 이마 부분에는 빗으로 빗은 듯 머리카락이 가지런히 표현되었으며, 보발(寶髮)은 귀의 중간부분을 감싸고 어깨에서 둥글게 말린 후에 세 가닥으로 갈라져 팔뚝까지 흘러내렸다,

보살상의 얼굴은 방형으로 눈꼬리가 약간 위로 올라가 지긋이 뜬 눈, 원통형의 코, 살짝 미소를 머금은 입을 하고 있다. 오른쪽 어깨에 걸친 대의자락은 목에서 팔꿈치까지 완만하게 늘어져 있고, 팔꿈치 뒤와 배 부분을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가고, 반대쪽 대의자락은 왼쪽 어깨를 완전히 덮고 내려와 배 부분에서 편삼과 겹쳐지고,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펼쳐졌다.

하반신을 덮은 대의자락은 옷자락 윗부분이 약간 밑으로 완만하게 펼쳐지고, 왼쪽 무릎을 덮은 소매 자락은 연꽃봉오리 모양으로 무릎을 완전히 덮었다. 무릎을 감싸고 흘러내린 옷자락은 대좌 아래를 덮은 상현좌처럼 늘어져 있다. 대의 안쪽에 입은 승각기(僧脚崎)는 가슴까지 올려 끈으로 묶어 5개의 앙련(仰蓮)모양 주름을 표현하였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로 들어 올려 첫째와 셋째 손가락을 엄지손가락과 가운데 손가락을 맞대고 있다. 왼손은 왼쪽 무릎에 손등을 얹은 채 엄지손가락과 중지를 맞대고 있으며, 손바닥에 지물을 붙였던 흔적이 남아있다. 

보살상 내부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은 “時維康熙三十四年歲次乙亥二月初六日朝鮮國全羅道長興東山」獅子山鳳日庵修道庵兩庵佛象始役三月十三日畢役同參記」施主秩」觀音願佛大施主 朴二龍」朴龍山」材木施主 安可望」供養施主 天良 … 寺內秩」和尙 三玄」持殿 印克」首僧 總悅」三綱 懷善」持寺 德宗」書記 普衍 … 證明 性元」太祐」持殿 恒玄」畵員秩」得牛」德熙」供養施主 覺仁 …”라고 적혀있다. 따라서 이 보살좌상은 관음보살로, 1695년(강희34년)에 박삼룡(朴三龍), 박용산(朴龍山) 등이 시주하여 조각승 득우(得牛)스님과 덕희(德熙)스님이 전라도 장흥 사자산 봉일암과 수도암에서 조성한 불상 가운데 하나이다.

목조관음보살좌상에서 발견 된 조성발원문.

득우스님과 덕희스님은 전라도 고흥 능가사에 거주하던 조선후기 불교조각사를 대표하는 색난스님의 제자로, 색난스님이 제작한 동일한 형태의 보살상이 순천 송광사 성보박물관에 봉안되어 있다.
보살상의 내부에서는 발원문(發願文)과 함께 황초복자에 싸인 후령통, 17세기 중반에 간행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주사다라니(朱砂陀羅尼)’ 등의 복장물(腹藏物)이 발견되었다.


목조관음보살좌상에서 발견 된 후령통, 주사다라니 등의 복장물.

■ 불교회화
지장시왕도
큰 법당에 걸려 있는 지장시왕도(地藏十王圖)는 126.2㎝×116㎝의 크기로, 화면 중앙에는 높은 연화대좌 위에 앉은 지장보살좌상이 있고, 그 앞에 도명존자와 무독귀왕, 그 옆에 두 명의 대왕과 윗부분에 세 명의 대왕을 좌우 대칭으로 배열하였다. 그리고 상단에 판관, 사자, 동자 등의 명부 권속이 그려져 있다.  


지장시왕도의 설채법은 적색과 녹색을 주로 쓰고 청색과 백색을 부분적으로 사용한 기법으로 이것은 19세기 중반 제작된 불화에서 볼 수 있다. 사진=호명스님


지장보살은 원형의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을 두르고 결가부좌한 자세로, 오른손을 들어 손바닥을 위로 한 채 엄지와 중지를 손바닥 쪽으로 구부리고, 왼손은 둥근 보주(寶珠)를 들고 있다. 얼굴은 이마가 넓고 턱 아래로 완만하게 좁아지는 형태이다. 머리는 두건을 두른 피건형으로 머리카락을 녹색으로 칠하여 제작 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지장보살의 신체는 어깨선이 완만한 편이고, 대의자락은 오른쪽 어깨에 완만하게 걸친 후, 팔꿈치와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간다. 대의 안쪽에 편삼을 걸쳐 배 부분에서 대의자락과 겹쳐진다. 가슴 위 깊은 녹색의 승각기를 입고 띠로 묶고 있다. 지장보살의 신광 하단에 합장을 한 무독귀왕과 도명존자가 지장보살을 향하여 비스듬히 서있다.

시왕들 위에는 경책을 든 판관, 과일을 공양하는 동자 등이 좌우 대칭으로 서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누듯이 얼굴을 돌려 마주보고 있어 자세는 자유롭고, 다양한 형태의 관모를 쓰고 있다. 전체적으로 설채법은 적색(赤色)과 녹색(綠色)을 주로 쓰고, 청색과 백색을 부분적으로 사용하였다. 이러한 색의 사용은 19세기 중반에 제작된 불화에서 볼 수 있다.

화면 하단 중앙 적지란(赤地欄)에 쓰여 있는 화기(畵記)는 “同治捌年己巳四月日」毘盧庵畵成奉安于」香爐庵」施主秩」曺衡國」妻朴氏」兩主」裕悟 伏爲」先嚴父 李積厚」先慈女 李氏」兩主 靈駕」覺?」平元」覺恩」金魚秩」錦巖堂天如」就善」妙英」證明 任性堂都○」幹事 函溟堂台鉉」誦呪 斗三」供養主 斗法」本庵秩」英蓮堂 ○悟」善○」○祐”이라 적혀있다. 따라서 염불사 지장시왕도는 1869년에 향로암(香爐庵)에 봉안하기 위하여 비로암(毘盧庵)에서 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암자 이름만 적혀 있고 지역이 언급되지 않았다. 전국 사찰에 봉안된 불화 가운데 조성연대와 작가가 동일한 불화가 순천 선암사 성보박물관에 봉안된 향로암 관음보살도(同治八年己巳四月日香爐菴」畵成奉安于○○○」施主雪岳堂」同願曺衡國」妻朴氏」兩主」覺暄」平元」覺恩」金魚秩 錦巖堂天如」就善」妙英」證師 任性堂都殷」○○」○○○○鉉」誦呪 斗三」供養主 斗法」本房秩 ○悟」慧○」○祐)이다.

또한 지장보살도가 조성되고 3개월 후에 취선이 수화승으로 비로암(毘盧庵)에서 제작한 비로자나후불홍도(毘盧遮那後佛紅圖)가 선암사 성보박물관에 봉안되어 있다. 따라서 이 불화가 조성된 향로암은 <범우고(梵宇考)>와 <태고사사법(太古寺寺法)>에 언급된 순천 조계산 내에 있었던 암자로 볼 수 있다. 불화를 그린 수화승 천여(天如)스님은 호(號)가 용하당(龍河堂) 또는 금암당(錦巖堂)으로, 19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 활동한 불화승이다.

그는 1823년에 수화승 도일(度鎰)스님과 전남 순천 송광사 광원암 삼세후불도를 조성한 후, 수화승으로 1831년에 경남 합천 해인사 산신도와 1833년에 전남 구례 천은사 극락보전 신중도 등을 조성하기 시작하여 전남 순천, 여수, 경남 남해와 양산 등 남부 지역의 많은 사찰에 불화 조성을 주도한 스님이다.

또한 보조화원으로 참여한 취선(就善, 就先, 趣善)은 호가 운파당(雲波堂) 또는 동운당(東雲堂)으로, 19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 전남 순천 송광사 천진암을 중심으로 활동한 불화승이다. 이들이 조성한 불화는 전국에 걸쳐 100여점 정도가 조사되었다.

이외에도 염불사에는 1903년에 상궁 김씨가 돌아가신 부모님과 고모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발원한 불화에 걸어놓는 복장주머니, 1902년에 간행된 <다비작법(茶毘作法)>, 촛대, 천보구하(天輔九河, 1872~1965) 스님의 편지 등의 성보물이 남아있다.


(문학박사, 동북아불교미술연구소 자문위원)
■그동안 성보문화재 이야기를 연재 해 주신 최선일 박사님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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