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에는 한국 절에 모여서
정담을 나누며 명절 분위기 만끽

각 나라의 유학생들이 각자 가지고 있는 자료를 공유하기 위한 컴퓨터 작업하는 모습.

약 1달간의 방학을 마치고 이제 3학기째에 막 접어들었다. 이 방학이란 것이 어릴 적이나 어른이 되어 출가를 하고 나서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방학 전엔 이런저런 거창한 계획을 세우지만 막상 방학이 시작되면 하루하루를 흐지부지 지내다 개학 날짜가 다가오면 뭐 하나 똑 부러지게 한 것이 없음을 후회하면서 새 학기를 시작하게 된다. 그런 마음으로 오늘 개강 첫날 수업을 듣고 와서 메일을 열어보고 나서야 벌써 추석이 목전에 닥친 것을 알게 되었다.

스리랑카의 날씨는 일 년 내내 거의 변화가 없다보니 우리나라처럼 곡식이 풍성한 수확기가 따로 있지 않고 그냥 한해가 고만고만할 뿐이다. 그래도 한국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 중에는 불자들도 있어 명절엔 비구니 스님이 거주하는 한국 절에 모여서 부처님께 불공을 올리고 조상님 차례를 모신다.
또한 추석이나 설날, 웨삭뽀야데이(우리나라 초파일에 해당) 때는 콜롬보에 있는 유학승과 유학생들이 다 모여 그간 나누지 못했던 정담을 주고받는 날이기도 해서 약간은 명절 분위기가 나기도 한다.
스리랑카에서 초기불교와 테라와다(상좌부)불교를 공부하고 있는 유학생은 약 20명 정도 되는데 그 중에 스님은 15명, 재가자는 5명 정도 된다. 그리고 수행센타에서 수행만 하는 스님들도 있다고 들었는데 정확한 인원수는 잘 모른다.

일단 공부에 우선 목적을 둔 스님들을 보면 태고종 스님은 나와 덕선스님(3기)이 있고 나머진 전부 조계종 비구니스님이다. 지역별로는 내가 공부하는 콜롬보에 스님 8명, 재가자가 5명이 있고 캔디에는 스님만 7명 정도 있다. 남방 비구계를 받은 두 스님을 제외하면 비구는 나 혼자인 셈이다.
상대적으로 비구니스님의 숫자가 훨씬 많다. 들리는 이야기로는 비구스님 중에는 간혹 공부하러 와서 조금 하다가 ‘중이 걸림 없이 살아야지’ 하면서 짐 싸서 한국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그 ‘걸림 없음’이란 것이 궁극적인 지혜(般若)의 완성에서 나오는 무애(無碍)여야 할 텐데… 라며 도에 넘치는 걱정을 잠시 해보았다.

재가자들 5명 중에는 30세 전후의 청년 두 명과 세 명의 여성이 있는데 그 중 한 명은 이미 앞에서 소개를 한 빨리어 선생님이다. 박사학위를 따고 대학 강단에 서는 교수의 위치에 있지만 우리와 함께 빨리어 율장과 아비담마를 계속해서 배우고 있는 입장이라 오늘은 학생이라 했다.

대부분의 스님들이 경제적으로 그리 넉넉한 지원을 받지는 못해도 우려할 만큼 어려움에 처한 상황은 아니다. 여기서 공부하는 스님들을 보면서 ‘스님들이 공부할 돈은 어디서 생겨도 생긴다’고 출가 이후에 항상 들어 왔던 선배스님들의 말씀이 사실인 것을 절실히 느끼게 된다.

그러고 보면 나는 경제적으로 부족하지 않은 비교적 행복한 유학생활을 하고 있음을 실감하며 은사스님과 청련사 어른스님들께 다시 한 번 고마움과 존경의 마음을 느낀다.
사실 스리랑카가 우리나라보다 후진국이어서 물가가 싸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서민들의 생활에 꼭 필요한 일부 1차 상품, 버스요금 등을 제외하면 한국보다 싼 것이 별로 없다. 화폐가치만을 놓고 보면 훨씬 비싸도 이만저만 비싼 게 아니다.

스리랑카 노동자의 한 달 평균임금이 한화(원)로 대략 30만 원 정도로 우리나라의 약 5분의 1정도 수준인데 슈퍼마켓이나 시장 등지에서 파는 대부분의 생필품들은 우리나라의 가격과 비슷하거나 비싸다. 결국 우리나라 물가보다 4~5배는 비싼 셈이다.

또한 유학승이나 유학생들은 대부분이 방 한두 칸 있는 집을 월세로 얻어 자취를 하는데 최근 중국 노동자들이 고속도로 건설을 위해 많이 입국해 있어 마음에 드는 집 구하기가 하늘에 별 따기고 매년 집값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어 재계약을 할 때마다 ‘이사를 가야 하나 말아야 하나’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스리랑카 절에서 거주하며 공부하는 방법도 있지만 거의 일주일 내내 공부하기 위해서 절 밖으로 나가야 하는 일은 얹혀서 사는 사람 입장에서는 그리 마음편한 일이 아닐 뿐더러 스리랑카 절에서는 오후 불식을 하기 때문에 거기에 익숙하지 않은 우리나라 스님들로서는 더욱 더 현지 절에서 사는 것이 여의치 않다.

유학생들은 이런저런 상황들을 고려해 자취를 하지만 매년 아니 6개월에 한 번 정도 인상되는 물가로 인해서 늘 고민을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수년 내에 우리나라 보다 싼 물건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될 정도이며 실제로 자동차 가격을 보면 우리나라 보다 최소 두 배는 비싸다(똑 같은 차를 비교했을 경우)

그래도 수도 콜롬보에는 한국에서도 쉽게 타기 힘든 값비싼 외제차들이 즐비한 것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극심한 빈부격차의 한 양상을 보여주는 예이다. 대부분 서민들의 대중교통 수단은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나 기차지만 하루 세 번의 ‘러시 아워’엔 버스의 앞, 뒷문에 거의 매달려 가는 사람들이 있어 버스 타는 것을 포기해야 한다. 문 밖으로 매달려 있는 그들의 틈을 비집고 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모든 열악한 환경에서도 유학생들이 버틸 수 있는 이유는 빨리어나 초기불교, 상좌부불교, 아비담마불교, 영어를 공부하는 환경 등이 경제적으로나 질적으로 상당히 만족스럽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나를 포함한 유학생들의 정진을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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