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법륜사 주지 취임후 기념촬영. 덕암스님(앞줄 왼쪽에서 네 번째), 혜일스님(앞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무공스님(뒷줄 왼쪽에서 네 번째).

스승의 말씀을 한 번도 거역한 적이 없는 무공당(無空堂) 무상(無上) 대종사여! 어디로 가셨습니까?
스님께서는 본래로 온 바도 없고 간 바도 없다고 생전에 늘 말씀하셨습니다. 실상으로 보면 옳으신 말씀입니다만 저희 후학들은 중생계로 생각할 때 80 평생을 사시다 이 세상과 저희 문형제 및 가족, 신도들과 이별하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듣지 못하고 만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디로 가셨단 말씀입니까? (걸)

사형님, 며칠 전 무량사에서 봉행한 사후 4칠재를 사제인 소승이 집전하여 올려드렸습니다. 정성껏 축원 올리며 기도할 때 스님의 발자취의 향기가 법당에 퍼져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아무리 이 세상이 무상하고 어쩔 수 없는 인연의 소치라 하지만 모든 것을 보고 향기를 맛 볼 때 스님이 안 계신 그 자리가 너무 슬프고 한없이 외롭다는 걸 느꼈습니다.

스님께서 생전에 수행에 얼마나 철저 하셨는지 저는 잘 알고 있기에 지금 우리 종단에 스님과 같으신 분이 없다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스님께서 파사현정(破邪顯正)하는 수행으로 이 세상을 살았다 가셨다는 걸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때로는 종단을 잘못 이끌어 가는 승려들과 논쟁을 하며 결국은 멸빈과 같은 수모를 당하면서도 태고종을 떠나지 않고 꿋꿋하게 수행하는 모습을 기억할 때 후학들이 감히 따라 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스님께서 의리를 목숨같이 지키는 분이라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그 일례로 소승이 1992년 덕암 큰스님의 분부를 받들어 법륜사 주지를 할 때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스님께서 오셔서 격려를 해 주신 것을 저는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때 저는 속으로 ‘사형께서 참으로 의리가 있는 분’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소승이 잘못을 하면 가차 없이 저를 나무라셨던, 늘 사제에 대한 정으로 주지노릇 잘 하라고 힘을 주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일전에 덕암 큰스님께서 당신 스승을 잘 받들고 태고종조인 원증국사를 체계적으로 선양하기 위해 사단법인 ‘대륜불교문화연구원’을 스님과 저에게 만들라고 하여 어렵게 일을 마무리하고 허가 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을 때 숱한 방해가 있었지요,

그래도 스님과 저는 굴하지 않고 결국 사단법인 ‘대륜불교문화연구원’을 창립했습니다. 이 일은 덕암스님의 일이라면 어떠한 난관에 봉착해도 꼭 일을 완성시키겠다는 스님의 굳은 의지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스님께서 3대와 4대 이사장으로 재직할 때 어려운 살림살이에도 불구하고 출판한 <태고사상>과 <덕암스님 평전> <대륜대종사 법어> <태고보우국사 논총> <태고보우국사 법어> 등은 스님의 헌신과 열정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태고스님의 행적을 돌아보기 위해 덕암 큰스님을 모시고 활안 스님 등과 같이 국내외를 많이 다니시며 자료를 찾아 나섰던 그 행적이 얼마나 힘든 여정이었는지 중국행에 동참했던 소승은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가 지금 이사장을 맡고 보니 그 일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형님! 존경합니다.

사형께서 너무나 많은 활동을 하셨기에 제가 감히 따라가기가 버겁습니다. 일을 하는데 있어 자기 희생 없이는 불가능 하다는 걸 저희들도 잘 알기에 스님의 희생이 얼마나 값진 것이었는지 가슴이 메여 옵니다. ‘대륜불교문화연구원’에 정신과 물질을 쏟아 부으며 오늘날의 연구원을 있게 한 것은 오롯이 스님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었습니다.

사형님, 이렇게 큰 족적을 남기고 홀연히 어디로 가셨습니까? 저희 문형제들은 스님의 높으신 행적을 본받아 수행 잘하고 종단을 지키며, 종조 태고보우 국사를 비롯하여 대륜 큰스님과 덕암 큰스님의 유지를 받들어 흐트러짐 없이 살아가겠습니다.
사형님, 아직도 ‘대륜불교문화원’은 할 일도 많고 갈 길도 멉니다. 스님께서 반드시 길잡이가 되어 이끌어 주시리라 믿습니다.

사형님! 우리 종단은 지난 7월 18일 제 25대 총무원장을 여법하게 선출했습니다. 소승이 중앙선거관리위원장 소임을 맡아 종책 토론회를 비롯한 선거관련 행사를 무사히 회향을 하면서 ‘사형님이 계셨으면 박수도 쳐 주고 응원도 많이 해 주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가졌습니다. 이 모두가 부질없는 일이지만 종단의 경사라 자랑을 아니 할 수가 없어 사형님 전에 보고 드립니다. 또한 소승은 지난 4칠재에 동참하면서 스님의 ‘법력(法力)’을 법륜사로 모시고 49재를 봉행해야겠다는 발원을 하였습니다.

스님께서는 지금 부처님 회상에서 대륜 큰스님과 덕암 큰스님을 만나셨겠지요. 이 두 분의 넋이 깃들어 있는 법륜사에 스님의 혼백을 모시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사형께서는 평생 두 스님의 발자취를 좇으며, 종단의 위상을 세우고자 큰 원력과 발원을 해 온 것을 소승이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형이시여! 부디 아미타 서방정토에서 극락왕생하시고 우리 종단과 문도들을 보살펴 주기를 간절히 발원합니다.
나무 아미타불! 나무 아미타불! 나무 아미타불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불기 2557(2013)년  8월



사제 혜일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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