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자연과 티베트인들의 순수함에서 깊은 불심 느껴

난주 보은사에 관세음보살상 전달
혜초·현장 스님 자취 서린 역사적 장소 답사

 
 7월 3일 실크로드의 교역지이며 감숙성(甘肅省)의 성도(省都) 난주(란저우)를 향해 인천공항을 떠났다. 중앙종회 수석부의장 혜공스님을 단장으로 22명의 스님들과 전법사들은 한국에서는 최초로 동방항공 직항 전세기로 난주에 도착하였다. 새벽에 도착한 성지순례팀은 오전 8시, 중국불교협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보정스님의 사찰인 보은사(報恩寺)를 참배하기 위해 출발했다.

난주 보은사 대웅전에서 예불을 올리고 있는 태고종 스님들.

한중일 불교우호교류대회의 실무 총괄을 하고 있는 보정스님은 불교협회 일로 출타중이라 다른 스님의 안내로 보은사 경내를 둘러보았다. 보은사 대웅전에서 예불을 올린후 다과를 공양 받았다. 단장 혜공스님은 준비해간 관세음보살상을 전달했고 보은사에서는 마답비연상을 선물했다. 보은사 경내는 불사가 한창이었는데 그 규모가 대단했다.

혜공스님(사진 왼쪽)은 보은사에 관세음보살상을 전달했고 보은사에서는 마답비연상을 선물했다.

보은사를 출발한 일행은 장액, 주천, 돈황과 함께 하서사군의 하나인 무위(武威)로 향했다.
난주에서 무위까지는 257km로 약 4시간이 소요되는 거리다. 무위는 신라 문무왕 비문의 ‘비밀’ 투후(투候) 김일제(金日제)와 고구려 출신 고선지(高仙芝) 장군의 고향이다. 고선지는 고려인으로 당(唐)나라의 장군이 되었다.

태자 김일제(B.C.134~86)는 흉노(匈奴) 휴도왕(休屠王)의 장남으로 한무제(漢武帝)의 명을 받은 곽거병(藿去病)이 흉노족을 정벌하면서 서안으로 끌려와 말을 기르는 노예가 되었다. 기마민족이라 말을 잘 돌보았으니 그 후 김일제는 한무제의 눈에 띄어 노예에서 해방되어 마감(馬監)으로 임명되었고, 이후에는 시중(侍中), 부마도위(附馬都衛), 광록대부(光祿大夫) 등의 벼슬에 올랐다.

또 한무제의 암살을 막은 공로를 인정받아 휴도왕이 금인(金人)을 모시고 하늘에 제사 지냈던 것에서 연유하여 한무제로부터 ‘김’씨 성을 하사 받았다. 한무제는 죽으면서 김일제를 어린 아들 유불릉(劉弗陵, 漢昭帝)의 후견인으로 삼을만큼 신임이 두터웠다. 한소제(漢昭帝)는 김일제가 죽기 전 그를 오늘날 산동성 일대를 다스리는 투후(투候)에 봉했고, 그의 후손들은 대대로 관직을 세습 하였다.

김일제는 사후 곽거병과 함께 한무제의 무릉 옆에 매장 되었다. 무위에서 북쪽으로 1시간 외곽의 작은 마을 김가장(金家庄)에는 800여명의 주민 중 자신이 김일제의 후손이라고 말하는 600여명의 김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한다. 산동성의 하택(荷澤)에는 투국(투國)의 표지석이 있는데 김일제의 성을 따라 투국의 성(城)을 ‘금성(金城)’이라고 하는데

신라의 ‘금성(金城)’과 명칭이 동일하다. 또한 신라 김씨의 무덤과 흉노의 무덤 양식도 동일한 적석목곽분이며, 흉노의 근거지에서 발견된 청동솥과 기마인물상 역시 신라의 것과 동일하다. 이것은 우연이라고 생각할 일이 아닌 것이, 김일제의 후손이 바다건너 한반도로 유입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고 가이드는 설명했다.

신라 김씨의 시조로 추측된다는 투후 김일제의 석상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면서 신라 성한왕이 투후 김일제의 7대 손이라는 설이 근거가 있다는 것과, 김수로왕국이 세운 가락국에서 흉노족의 유물이 발견된 점과, 문무왕비에 씌여진 바에 따르면 김일제는 신라 왕족의 조상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어 친근하게 느껴졌다.

김일제 석상 뒤에는 청동 분마상이 우뚝 솟아 있다. 말의 빠름을 강조하기 위해 제비를 밟고 있는 모습이어서 ‘마답비연상’이라고 하는데 역동적인 형상에 고대인의 재치가 느껴졌다.
혜초스님도 현장스님도 걸어서 다녔다는 역사적인 현장을 버스를 타고서도 몸이 힘든 것은 수행의 부족일까, 아니면 정신력의 부족일까?

공원에는 노소를 막론하고 놀러 나온 사람들로 북적거렸고, 먼 이국에서 온 스님들 행렬에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한 채 구경을 하고 있었다.
일몰을 감상하기 위해 일행은 칠채산으로 이동했다. 칠채산 전체가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단아지모 계곡에 물감을 뿌려 놓은 듯 화려한 산의 예술이었다. 화려한 자연의 예술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해가 어느 덧 서산을 넘어가면서 산 전체 색깔이 더욱 장관이었다.

오른쪽을 보다 한 컷, 왼쪽을 바라보다 한 컷! 민둥산 전체가 예술이었고 한 폭의 그림이었다.
그렇게 아름다운 칠채산을 감상하며 하루를 마감한 일행은 밤늦은 시간에야 호텔에 도착했다. 이번 성지순례를 추진한 원 트래블 여행사 이철희 대표는 감숙성의 협조로 한국 스님들을 초대했다.
옛 티베트의 영토로 장족이 많이 거주하여 ‘리틀 티베트’로 불리는 이곳은 실크로드로 가는 관문이다. 아름다운 고산초원과 티베트 본토보다 문명에 물들지 않은 순수함속에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티베트인들의 삶과 문화를, 그리고 부처님을 향한 불심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셋째날인 5일 아침, 기련산맥의 고산 초원을 조망하며 문원(門源)으로 이동하는데 4시간이 소요되고 거기서 청해성(靑海省)의 성도(省都) 서녕(西寧)으로 이동하는데 3시간이 걸려 모두 7시간을 버스를 타야 했다.
하루를 차안에서 보내야 하니 스님들은 돌아가면서 소개를 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버스안의 분위기를 바꿔 놓았다. 스님들을 소개하고 서로 인사하는 사이 차창 밖으로 기련산맥(祁蓮山脈)의 푸른 고산초원을 배경으로 황금빛 유채꽃이 눈에 들어 왔다. 길거리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찍고 꿀을 사고 일행은 눈앞에 펼쳐진 넓은 들판의 유채꽃에 취해 버렸다.

끝없이 보이는 유채꽃밭의 길이가 백리나 된다고 해 ‘백리유채화해’라 불린다고 했다. 7월에 유채화가 만개하는데 시기를 잘 맞춰 방문해 유채꽃의 장관을 보게된 것이다.
서녕은 경제적으로는 낙후된 지역이지만 티베트 장족, 사라족, 토족, 회족 등 황하를 배경으로 소박하게 살아가는 다양한 소수민족들의 생활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고산지대라서 현기증이 나고 머리가 아팠다.

‘장의약 박물관’입구에 봉안돼 있는 탕카.

‘장의약 박물관’에 도착했다. 400여 스님들이 4년에 걸쳐 길이 618m로 완성해 기네스북에도 오른 세계 최대의 탕카가 전시돼 있었다. 탕카에는 티베트의 종교, 정치, 역사, 풍속, 천문, 의학, 과학, 우주관 등 폭넓은 소재가 담겨 있다.
또한 장의약박물관에는 티베트 고산지역에서만 자라고 있는 식물과 동물, 암석에서 채취한 약의 재료와 의약들이 즐비하게 전시돼 있었다. 자연의 신비함과 그것을 발견하는 사람의 뛰어난 능력에 경이로움이 일었다.

늦은 시간에야 호텔에 도착하였지만 낮에 본 유채꽃밭과 함께 그 많은 스님들이 조성한 탕카가 잊혀지지 않아 피곤함도 잊었다.

신라 김씨의 시조로 추측된다는 투후 김일제의 석상 앞에서 기념 촬영.


글·사진=현중스님(사진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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