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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고선찰 극락도량  성 보 사
휴 암 스님(성보사 주지) 

{우리절 법회}
·정기법회 : 매월 음력 초하루(오전 10시) 
·조상천도법회 : 매월 음력 보름(오전 10시 )
·철야 사경법회 : 매월 넷째주 토요일(오후 9시) 
·군부대 위문법회 : 매월 첫째주 일요일

<주지스님 법문>

허망한 상에 따라 고통과 행복 오고 가

오늘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날입니다.
이 귀한 날, 신도여러분과 함께 철야정진을 한 것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크나큰 선근공덕을 쌓았으며 깨달음의 경지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도 여러분, 만법회귀일(萬法回歸一)이라 했습니다. 즉, 모든 법이 하나로 돌아간다 하였는데 그 하나는 무엇입니까? 그것을 아신다면 오늘 이 산승의 말은 모두 뜬구름에 불과할 것입니다.
금강경에 이르기를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이니,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니라’ 했습니다. 즉, ‘무릇 상을 가진 모든 것은 허망한 것이니 모든 상이 상 아님을 안다면 곧 여래를 볼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순간순간 만들어지는 허망한 상에 따라 고통과 행복을 오고 갑니다.
이 움직이는 상이 허망한 것임을 깨닫는다면 영원한 행복이요, 적정열반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바로 이 허망한 상을 만들어 내는 물건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호흡과 호흡사이 찰라에 일어났다가도 없어지고 없어졌다가도 일어나는 마음이란 물건입니다. 바로 이 물건을 알지 못하고 도를 닦으면 헛수고만 하고 이익은 없게되는 것입니다. 여래의 깊고도 묘한 이치는 이 물건을 잘 다스려 참마음을 찾아냄이니 자세히 관찰하여 일어남을 끊어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관상즉멸(觀相卽滅)이라, 모든 상은 보는 즉시 사라지는 것이니 망념이 일어날 때마다 그 자체를 깨달아 觀하게 되면 뿌리 없는 허상인 망념이 즉시 소멸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생각마다 닦아 익히어서 살피기를 잊지 않고 미혹에 쌓인 물건이 근본 없는 것임을 깨닫는다면 허공의 꽃과 같은 허망한 삼계는 마치 바람이 연기를 걷어내듯이 순식간에 사라질 것이요, 허깨비와도 같은 육진(六塵)의 번뇌는 끓는 물에 얼음이 녹듯이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을 것입니다.
견문여허공(見聞如虛空)이요 각지담여수(覺知湛如水)이라, 보고 들음이 허공과 같고 깨달아 담담함이 물과 같습니다.
깨침에는 범부와 성인이 따로 없음이요 세간, 출세간이 따로 없음이니 오늘 성도절 법회에 성보사를 찾아주신 신도 누구든지 부지런히 본래면목 찾아서 청정하고 밝은 마음 끊임없이 낸다면, 진여의 꽃은 활짝 피게 될 것이고 적정의 본신은 구경열반에 들것입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 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하네 / 사랑도 벗어놓고 미움도 벗어놓고 / 물처럼 바람처럼 살다가 가라하네’
이것이야말로 참으로 지혜로운 삶입니다. 그 무엇에도 걸림 없는 삶을 살아가려면 번뇌, 망상 다 벗어 놓아야 하는 것이지요.
번뇌와 망상이란 본디 뿌리 없는 허공 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무명에 매달려 복락을 얻고자 하니 그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울 수밖에….
세계적인 의학지 「킨제이 보고서」에 따르면 인류의 적인 암과 각종 불치병에 걸리는 원인은 마음속에 침잠되는 스트레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스트레스란 것은 무엇입니까?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지 않아서 생기는 결과물 즉, 불만족스러운 결과에 대한 심리적 반응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우리를 불만족스럽게 하였는가를 찾아야만 합니다. 그것을 찾아 없앨 수 만 있다면 스트레스가 쌓이지 않을 것이요, 그리되면 불치병에 걸리는 일도 없을 것이니 늘 평온하고 안락함에 극락이 따로 없음은 자명한 일 아니겠습니까.
무엇이 문제인가를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을 뒤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혹시 우리는 지금까지 조금만 유리하면 교만심이 일으키거나 조금만 불리하면 비굴해지거나
아주 작은 일에 분노하거나 아주 작은 것에 애착하지는 않았던가요?
탐착의 그늘은 우리를 불행하게 합니다.
분노와 어리석음이 일어나는 모두의 원인은 바로 탐착을 떨쳐내지 못하여 일어나는 것입니다.
항상 혼탁한 마음을 지우고 깨끗한 마음으로 침묵하며 자비로운 마음은 불같이 뜨겁게 하되
터지는 분노는 어름처럼 차갑게 하며 치솟는 아상에는 누운 풀처럼 자신을 낮추고 탐욕을 버리는 데는 해우소에서 분변 쏟듯, 아낌없이 버린다면 이것이야말로 지혜로운 삶이요, 행복이 아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법구경 도행품에서 이르시기를 ‘탐음치노(貪淫致老)이니 진에치병(瞋喪致病)이요, 우치치사(愚癡致死)이니 제삼득도(除三得道)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탐욕 때문에 늙고 분노 때문에 병들며 어리석음 때문에 죽느니 이 세 가지를 없애면 도를 얻으리라’ 하셨습니다.
산다는 자체도 한 조각 뜬구름의 모임이요, 죽는다는 것도 알고 보면 모였던 뜬구름이 흩어짐 일진데 무얼 그리 탐착하고 분노하는 어리석음을 범하려 하십니까?
다 놓아버리고 흰 것은 희게 검은 것은 검게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걸림 없이 살아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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