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에 들어서면 긴 고샅이 나온다. 고샅 끝에 할머니의 집이 있다. 문을 열면 좁은 고샅이 확 트이는 너른 마당이 펼쳐진다. 마을 사람들이 탈곡을 하고, 고추를 말리고, 전통 혼례를 올리기도 하던 공동의 마당이다. 뒤란에 물맛 좋기로 이름 난 우물이 있어서 수도를 놓지 못한 몇몇 집들은 물을 퍼 나르기도 하였다. 고샅에서 놀던 아이들이 축구를 할 땐 어지간한 실내 축구장 부럽지 않은 운동장이 되어주기도 하였다.이 널찍한 마당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할머니는 대문에 자물쇠 대신 숟가락을 꽂아놓고 마실을 다녔다. 대처의 가족들을 만
계묘년,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달력의 첫 장 앞에 섰지만, 치솟는 희망과 용기보다는 올 한해는 또 어떻게 넘어갈까 하는 막막함이 더 앞선다. 이건 비단, 필자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리라. 지난 한해 우리는 참으로 어렵고 힘든 날들을 건너왔다. 코로나19의 기세는 여전하고 일촉즉발의 남북관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세계정세와 경제 불안정 속에서 우리 국민들은 오늘도 가슴 졸이는 삶을 살고 있다. 그 마음에 먼저 ‘새해 인사’를 전한다.“글쎄, 해님과 달님을 삼백예순다섯 개나/ 공짜로 받았지 뭡니까// 그 위에 수없이 많은 별빛과
미당 서정주는 ‘이차돈의 목 베기 놀이’라는 시편에서 예수와 이차돈의 순교를 대비했다.예수의 순교는 “대단히 처참하고 처량하고 또 아픈 데가 있는 데 반하여”, 이차돈의 순교는 “그렇지 않고 순전히 어린아이의 한때의 무슨 놀이와도 같아서 적당히 웃기기도 하면서 아주 연한 배나 먹듯이 사운사운 진행”되었다는 게 미당의 견해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예수의 순교는 “왈칵한 피비린내”를 풍겼지만, 이차돈의 순교는 “그저 어린애들이 꿀컥꿀컥 마시는 그 어머니의 젖 냄새 같은 것만 풍겨났다”는 데 있다. 미당은 이차돈의 하얀 피를 ‘어머니
얼마 전 KBS1 TV에서 본 다큐멘터리 한 편이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며칠이 지냈는데도 이따금씩 떠오른다. 평소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을 가져왔던 터라 잔상이 남는가보다. 제목은 ‘고양이들의 아파트’. ‘고양이를 부탁해’를 연출한 정재은 감독이 2020년에 만든 작품이다.재개발을 앞둔 대규모 아파트 단지 내에 사는 고양이들을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담았다. 아직 이주하지 않은 주민과 동물권단체 활동가, 캣맘 그리고 재개발 예정지에 사는 300여 마리의 고양이가 등장 인물과 동물이다.사람들이 사는 곳, 도시든 농산어촌이
최근 ‘보이스 피싱’ 등에 의해 사기를 당하는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골 노인들로부터 심지어는 젊은 학생들까지 ‘보이스 피싱’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매스미디어 시대에서 허위․과대광고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례도 즐비하다고 한다. 한국소비자보호원 등에 피해를 호소하는 인구가 한 해 수 만 명에 이른다는 게 정부 발표다.진실을 보지 못하면 눈이 어두워지게 마련이다. 진심과 진실을 보지 못하면 ‘가짜’에 현혹된다. 《대지도론》 13권에 이러한 말씀이 있다.“거짓말하는 사람은 먼저 자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이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신년 시무식에서 특정 종교의 찬송가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공수처는 공직사회의 특혜와 비리를 근절해 국가의 투명성과 공직사회의 신뢰성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설치된 사정기관이다. 그런 만큼 정치적 종교적 중립이 매우 중요한데도 공적인 시무식을 부흥회장 수준으로 만들어 버렸다. 여기에다 여당 대표 후보로 거론되는 김기현 의원의 발언은 참으로 가관이다. 지난해 5월 ‘제59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에서 “크리스천 정치인을 양성하여 하나님의 명
불교의 핵심적 가르침에 계(戒)․정(定)․혜(慧) 3글자가 있다. 이를 다른 말로 ‘삼학도(三學道)’라 부른다. 이 삼학도를 배우고 익히는 데 스님들은 평생을 수행정진한다. 3학도 이외 또 다른 중요한 수행법으로는 6바라밀이 있다. 바라밀은 ‘보살도’ 로 풀이된다. 이 여섯 가지 바라밀은 3학도인 계정혜가 세분화된 것으로써 엄밀하게 말하면 이 두 가지 용어는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삼학도와 육바라밀은 불교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해도 될 만큼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삼학도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말로도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계묘년 벽두, 겨울이 겨울을 껴입고 있다. 그 겨울 위에서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계묘년 올 한해, 우리 한국불교태고종단은 무슨 옷을 껴입고 또 한해를 나야 할까? 벽두에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은, 비단 필자 혼자만이 아니리라.이를 증명하듯, 총무원장 호명 스님은 신년사를 통해 “‘삶’보다 더 위대하고 존엄한 가치는 없다”고 단호히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그렇게 중요한 ‘삶’이기에 우리는 그 ‘삶’을 함부로 소비하며 내키는 대로 살 순 없다”며 “부처님이 부처님으로 오신 것도 그 ‘삶’의 가치와 목적을 우리에게 기꺼이 일러주기 위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맞이하면 누구나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동안 알뜰하게 아끼고 절약하여 모은 적금을 찾아 내 집을 마련한다는 벅찬 꿈도 있겠고, 결혼이나 승진을 꿈꾸기도 한다. 어린아이라면 한 살 더 먹어 상급생이 된다는 기대감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노령기에 이르러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은, 직장을 은퇴하고 제2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적잖은 부담감을 갖게 한다.그런가 하면 마땅히 즐길 거리가 없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고독감이 스멀스멀하거나 몸이 성치 않아 자주 병원을 들락거려야 하는 시간들이 늘어간
1년의 마지막 절기인 동지(冬至)는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다음날부터는 낮이 더 길어진다. 예부터 동지를 작은 설로 여겨 축하했다. 절에서는 이날 신도들에게 달력을 나누어준다. 팥죽을 쑤어 나누어 먹는다. 팥죽은 액운을 쫓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작은 설을 축하하며 나누는 음식이다. 많은 사찰에서는 거리에 나가 시민들에게 팥죽을 나누는 행사도 벌인다. 호호 불어 팥죽을 먹으면 추위가 싹 가신다. 이 따뜻함으로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는 힘을 얻기도 하니, 팥죽 나누기는 서로에게 온기를 전하는 따사로운 풍속이다.동지 즈음의 일출 시각은 오
임인년 (壬寅年)의 해가 저물고 계묘년(癸卯年)의 해가 떠오르고 있다.연말연시에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자신이 걸어갈 길을 계획해야 한다. 자신의 이력(履歷) 중 무엇이 부족한지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이력의 사전적 의미는 ‘신발이 겪은 일’이다.이윤기는 한 저서에서 모노산달로스(Monosandalos) 즉, ‘외짝 신 사나이’의 신화적 의미를 역설했다.불가(佛家)에도 모노산달로스가 있다. 달마 대사는 중국의 소림사에서 9년 동안 도를 닦으며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528년 열반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제자들은 달마 대사를
불기 2567(2023)년 계묘년 새해 태양이 힘차게 솟아올랐다. 새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가짐을 달리한다. 한 해를 설계하며 도약과 희망을 꿈꾸기도 하고 새해 소망을 기도하며 무탈없이 한 해를 잘 넘기기를 바란다. 이러한 속에서 인류 역사는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왔다. 실제로 인류의 발전과 진보는 사람들의 이러한 부푼 기대 속에서 비롯돼 왔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미래의 설계라 할지라도 과거의 반조를 통하지 않고는 훌륭한 성과를 내기 어렵다. 2023년 새해 아침도 그래서 마냥 기쁘고 들뜬 기분으로 맞을 일만은 아니다.
한 달 전 나는 고향집에 다녀왔다. 어릴 적 외가에 의탁했던 터라 나는 외가를 고향집으로 여기고 있다. 내가 마음이 몹시 울울할 때면 고향집을 찾는 이유는 고향집 앞에 너른 금강이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강가에 나가서 굽이치면서 흐르는 탁류를 보자 미당 서정주의 ‘신발’이 떠올랐다.“내 신발을 나는 먼 바다로 흘러내리는 개울물에서 장난하고 놀다가 그만 떠내려 보내 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마 내 이 신발은 벌써 변산 콧등 밑의 개 안을 벗어나서 이 세상의 온갖 바닷가를 내 대신 굽이치며 놀아 다니고 있을 것입니다.”어느 해 여름, 외조
지난 2월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전쟁이 터졌으니 10개월째다. 날마다 전쟁 관련 뉴스가 전해진다. 우크라이나 국민들은 죽음과 파괴 속에서 지옥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두 장면이 떠오른다. 하나는 러시아정교회 수장인 키릴 총대주교의 발언이다.키릴 총대주교는 9월 25일 예배 시간에 “병역 의무를 수행하다 죽는 것은, 타인을 위한 희생”이라며 “이 희생을 통해 자신의 모든 죄는 씻긴다”라고 말했다. 푸틴의 예비군 동원령을 두둔한 것이다. 러시아의 1억5천만 인구 중 1억 명이 러시아정교회의 신자일 만큼 그의 영향력이 크다.
더불어민주당 임오경 의원이 지난 10월 국정감사에서 한 발언이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임 의원은 충북도지정문화재로 등록된 우리 종단의 용운사 소장 백의관음후불도가 도난문화재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임 의원의 발언대로라면 용운사 주지가 사문서를 위조해 도난문화재를 편취해 가로챘으므로 이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이에 용운사가 소속된 한국불교태고종 충북교구종무원이 임 의원의 주장을 반박하는 성명서를 내고 즉각적인 공개참회를 요구했다. 충북교구종무원은 용운사가 소장한 백의관음후불도는 청주소재 모사찰에서 도난문화재라 이의제
필자가 처음 불교를 접한 건 어릴 적 어머니 어깨 너머로였다. 그 덕에 나이 들면서 대ㆍ소승경전 등 부처님과 부처님의 가르침에 관한 책을 꽤 섭렵했다. 하지만, 그렇게 불법(佛法)을 섭렵했다고 해서 마음의 '뾰쪽함'마저 완전히 떨칠 순 없었다. 그 뽀쪽함이 조금이나마 편해졌던 건 몇 십년 전, 어느 가을날 한 비구니 스님을 통해서였다.마침 고향을 가기 위해 서울역에서 목포행 기차를 탔다. 그런데 옆자리에 비구니 스님이 앉아 계셨다. 60대 초로의 스님이었다. 늦가을 햇살이 스님의 어깨를 지나 필자의 가슴께로 빛쳐 들었다. 하지만 필
가을이 되면 나무들은 마른 잎을 부는 바람에 날려 보낸다. 마치 누군가에게 보내는 엽서 같다. 그 엽서들은 바람을 타고 곳곳으로 날아간다. 하지만 그 엽서를 받고서 엽서에 적힌 메시지를 읽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마른 잎은 바닥에 뒹굴다가 다른 마른 잎들과 함께 수북하게 쌓인다. 길에 쌓인 낙엽들을 밟으면 그 나뭇잎들이 나뭇가지에서 피어나서 초록이 지쳐 단풍이 들기까지의 여정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이를테면, 봄볕을 받으며 하늘하늘 날아가는 나비 떼나 신록의 산그늘에서 들려오는 소쩍새의 울음이라든지, 무더운 여름날 미루나무 꼭대
한국불교태고종 양주 청련사가 11월 22일 장흥주민센터에서 김장김치와 연탄 등 나눔행사를 실시했다. 충북교구종무원도 11월 19일 청주시 청원구 내덕1동, 내덕2동에 거주하는 저소득층 10가구에 연탄 3천 장, 쌀 10kg 10포대, 휴지 10다발 등 생필품을 전달하는 ‘나눔 봉사’를 실시했다. 사단법인 나누우리는 11월 12일 창원 상곡문화체육센터에서 희망나눔 음악회를 갖고 이 자리에서 지역 각 기관의 추천을 받아 기초수급자, 한부모가정, 지적장애, 코스탈로 증후군, 심장장애 등의 청소년 6명에게 각 1백만 원씩 총 6백만 원의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하여 몇 년 전 일이 생각난다. 교육학 관련학회에 불교교육 관련 논문을 제출하고 심사를 받았는데, 심사위원 가운데 한 분이 불교는 종교인데 어떻게 교육에 관해 논할 수 있느냐라고 심사평을 하였다. 그래서 필자는 불교가 종교인 것은 맞으나 불교에는 인문사회학적 내용을 담고 있는 불교학이라는 학문이 있으므로 얼마든지 불교의 교육적 측면에 관한 논지를 전개할 수 있다고 답변하였다. 지금 왜 이러한 내용을 쓰고 있느냐하면 무엇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우리 사회에 이런 편견이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편견은 불교의 학문적
서울 한복판 종로3가엔 탑골공원이 있다. 예전에 이곳엔 조선의 일곱 번째 왕 세조의 명에 의해 건립된 원각사가 있었다. 꽤 큰 규모의 사찰이었다. 세조는 어린 조카인 단종과 사육신을 죽이고 왕위에 올랐다. 그런 그가 사찰을 건립한 것은 참회의 뜻이었다.그러나 원각사는 늘 아슬아슬했다. 성균관 유생들은 기회만 있으면 폐사를 주장했다. 왕이 지은 절일지라도 존립이 위태로웠다. 유학이 세상을 지배하던 시기였고, 그 지배력은 왕의 의지도 꺾을 기세였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성종 때부터 원각사의 운명은 아슬아슬했다. 유생들은 대종을 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