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보살이 “입춘법회 때 주셨던 휴대폰 보조배터리가 혹시 남아 있느냐”고 물었다. 몹시 떨리는 목소리였다. 왜냐 물으니 튀르키예로 보내겠다는 것이었다. 해마다 마산 신도가 휴대폰 보조배터리를 한 박스씩 보내주는데, 올해는 다행히 많이 남아 있다 하니 아이처럼 기뻐한다. 길거리에 즐비하게 늘어진 시체 사이사이로 울부짖는 가족들, 영하 10도의 혹한 속에 사상자를 찾는 구조요원들의 기사가 매일 보도되니, 그 참담함에 목소리라도 확인되고 소통이 된다면 작은 것이지만 도움이 되고 싶었다.필자도 작년에 돌이킬 수 없는 큰 산 하나를 잃었다.
개인이건 단체건 기념일을 두어 특별히 기린다. 걸맞은 의식을 갖추기도 한다. 의미가 없는 날이 있을까마는 기념일을 두는 것은 세상살이의 지혜이다. 불교에서는 기념일을 재일(齋日)로 이름을 붙여 치른다. 정진을 다짐하고 불자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신도들의 유대감과 소속감을 높여주는 역할도 한다.재일은 축제일이기도 하다. 재일에 담긴 또 다른 의미는 과거를 털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한다는 것이다. 축제는 전도(顚倒), 즉 뒤집힘에 그 의미가 있다. 높고 낮음, 길고 짧음, 옳고 그름 등 세속의 가치를 뒤집어 낮은 것이 높아지고, 긴 것과
필자는 최근 《무문관》28칙 ‘구향용담(久響龍潭)’ 대목을 읽다가 이청준 소설가의 작품이 떠올랐다.덕산스님이 가르침을 청하러 왔을 때 마침 밤이 깊어서 용담스님이 “그만 물러가라”고 했다. 덕산스님은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으나 너무 어두워서 다시 돌아왔다.“바깥이 깜깜합니다.”용담스님은 지등(紙燈)에 불을 붙여 건네주었다. 덕산스님이 지등을 받으려고 할 때 용담스님은 입김으로 불을 꺼버렸다. 순간 덕산스님은 깨닫고 용담에게 절을 올렸다. 《금강경(金剛經)》에 밝았던 덕산스님은 ‘마음이 곧 부처’라고 주장하는 남종선의 스님들을 교학
2월 6일 새벽 튀르키예와 시리아에 모멘토 규모 7.7의 강진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14일 현재 튀르키예 정부는 지진 사망자가 3만5천418명, 부상자가 10만5천505명으로 추가 집계됐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이번 지진은 1939년 12월 27일 동북부 에르진잔 지진 피해(3만2천968명 사망)를 뛰어넘어 튀르키예에서 일어난 최악의 자연재해가 됐다.튀르키예와 시리아의 강진으로 수많은 사상자 및 부상자와 피해 사례가 속출하자 세계 각국은 긴급구호활동에 뛰어들었다. 지진발생국가와 적대관계에 놓여있는 국가들도 정쟁을 접고 구호물품 전달
지방에 다녀오는 길이다. 늦은 귀갓길, 전철 막차 시간은 다가오는데 길까지 잘못 들었다. 햇살을 쏟아 붓던 오후가 진눈깨비를 퍼붓고 있다. 지금 남산은 숲의 냉대림이다. 일행과 헤어져 막차를 놓치지 않으려고 명동 전철역으로 뛰었다. 계단 아래로 겅중겅중 내려가는 도시의 중력들, 나도 그들 틈에 끼어 있다. 쇼핑백을 양팔에 잔뜩 걸친 외국인들이 계단 밑 외진 곳에서 웅성거리고 있다. 다행히 전철은 끊기지 않았다. 긴장한 탓인지 머리가 아팠다. 커피 한잔 마시면 나으려나 자판기에서 블랙커피를 빼서 마시는데 막차가 들어오고 있다.전철 안
설을 맞아 오랜만에 찾아뵈니 어머니가 많이 늙으셨다. 딱히 지병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머니는 걷는 것조차 힘에 부쳐 하셨다. 생로병사(生老病死)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누구나 늙으면 병이 찾아올 수밖에 없다.우리 주변에는 아픔에 신음하는 사람들이 많다. 불자 중에는 아픈 사람을 보고서 도움의 손길 대신 ‘전생의 업보’라며 혀를 차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러한 견해는 그릇된 견해이다.《열반경》에 이르길, “일체중생이 모두 부처님의 본성을 지니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 아니룻다는 눈이 멀었음에도 마음의 눈을
우리나라에서 반려동물과 함께 생활하는 사람의 수가 1530만 명이며, 가구로는 638만에 이른다. 농림축산식품부의 ‘2020년 동물보호 국민의식조사’ 결과이다. 3년 전의 조사이니 지금은 더 늘었을 것이다. 반려동물의 대부분은 개와 고양이이며, 관련 산업의 규모도 엄청나게 크다.불교에서 동물의 지위는 사람과 다르지 않다. 수행자의 도반이며 때론 외호의 역할을 했다. 나아가 성불의 가능성이 열려있는 존재이다. 단지 생명을 지녔기에 보호해야 한다는 것 이상의 지위를 지니고 있다.불교생태학을 연구한 서재영 박사는 불교의 동물관을 주제로
한국불교태고종 전국비구니회 제7대 집행부가 지난 1월 18일 회장 현중 스님 취임법회를 시점으로 새로이 출범했다. 이날 회장 현중 스님은 새로운 집행부로 부회장에 묘련 스님, 능인 스님, 예진 스님과 봉사단장에 일광 스님을 비롯해 총무부장 현담 스님, 교육부장 수진 스님, 문화부장 덕화 스님, 규정부장 대화 스님, 대외협력부장 화안 스님, 사회부장 성혜 스님, 홍보부장 정묘 스님을 각각 임명했다. 현중 스님은 이들 집행부 임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면서 임기동안 비구니회의 위상강화와 태고종단의 발전을 위한 각종 사업에 전력을 다해 나
마을에 들어서면 긴 고샅이 나온다. 고샅 끝에 할머니의 집이 있다. 문을 열면 좁은 고샅이 확 트이는 너른 마당이 펼쳐진다. 마을 사람들이 탈곡을 하고, 고추를 말리고, 전통 혼례를 올리기도 하던 공동의 마당이다. 뒤란에 물맛 좋기로 이름 난 우물이 있어서 수도를 놓지 못한 몇몇 집들은 물을 퍼 나르기도 하였다. 고샅에서 놀던 아이들이 축구를 할 땐 어지간한 실내 축구장 부럽지 않은 운동장이 되어주기도 하였다.이 널찍한 마당을 누구나 이용할 수 있도록 할머니는 대문에 자물쇠 대신 숟가락을 꽂아놓고 마실을 다녔다. 대처의 가족들을 만
계묘년, 새로운 시작을 알리는 달력의 첫 장 앞에 섰지만, 치솟는 희망과 용기보다는 올 한해는 또 어떻게 넘어갈까 하는 막막함이 더 앞선다. 이건 비단, 필자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리라. 지난 한해 우리는 참으로 어렵고 힘든 날들을 건너왔다. 코로나19의 기세는 여전하고 일촉즉발의 남북관계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인한 세계정세와 경제 불안정 속에서 우리 국민들은 오늘도 가슴 졸이는 삶을 살고 있다. 그 마음에 먼저 ‘새해 인사’를 전한다.“글쎄, 해님과 달님을 삼백예순다섯 개나/ 공짜로 받았지 뭡니까// 그 위에 수없이 많은 별빛과
미당 서정주는 ‘이차돈의 목 베기 놀이’라는 시편에서 예수와 이차돈의 순교를 대비했다.예수의 순교는 “대단히 처참하고 처량하고 또 아픈 데가 있는 데 반하여”, 이차돈의 순교는 “그렇지 않고 순전히 어린아이의 한때의 무슨 놀이와도 같아서 적당히 웃기기도 하면서 아주 연한 배나 먹듯이 사운사운 진행”되었다는 게 미당의 견해이다. 이러한 주장의 근거는 예수의 순교는 “왈칵한 피비린내”를 풍겼지만, 이차돈의 순교는 “그저 어린애들이 꿀컥꿀컥 마시는 그 어머니의 젖 냄새 같은 것만 풍겨났다”는 데 있다. 미당은 이차돈의 하얀 피를 ‘어머니
얼마 전 KBS1 TV에서 본 다큐멘터리 한 편이 여러 생각을 하게 했다. 며칠이 지냈는데도 이따금씩 떠오른다. 평소 반려동물에 대한 관심을 가져왔던 터라 잔상이 남는가보다. 제목은 ‘고양이들의 아파트’. ‘고양이를 부탁해’를 연출한 정재은 감독이 2020년에 만든 작품이다.재개발을 앞둔 대규모 아파트 단지 내에 사는 고양이들을 안위를 걱정하는 사람들의 움직임을 담았다. 아직 이주하지 않은 주민과 동물권단체 활동가, 캣맘 그리고 재개발 예정지에 사는 300여 마리의 고양이가 등장 인물과 동물이다.사람들이 사는 곳, 도시든 농산어촌이
최근 ‘보이스 피싱’ 등에 의해 사기를 당하는 일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시골 노인들로부터 심지어는 젊은 학생들까지 ‘보이스 피싱’에 속아 넘어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아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매스미디어 시대에서 허위․과대광고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례도 즐비하다고 한다. 한국소비자보호원 등에 피해를 호소하는 인구가 한 해 수 만 명에 이른다는 게 정부 발표다.진실을 보지 못하면 눈이 어두워지게 마련이다. 진심과 진실을 보지 못하면 ‘가짜’에 현혹된다. 《대지도론》 13권에 이러한 말씀이 있다.“거짓말하는 사람은 먼저 자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장이 전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신년 시무식에서 특정 종교의 찬송가를 부르며 눈물을 흘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났다. 공수처는 공직사회의 특혜와 비리를 근절해 국가의 투명성과 공직사회의 신뢰성을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설치된 사정기관이다. 그런 만큼 정치적 종교적 중립이 매우 중요한데도 공적인 시무식을 부흥회장 수준으로 만들어 버렸다. 여기에다 여당 대표 후보로 거론되는 김기현 의원의 발언은 참으로 가관이다. 지난해 5월 ‘제59회 전국목사장로기도회’에서 “크리스천 정치인을 양성하여 하나님의 명
불교의 핵심적 가르침에 계(戒)․정(定)․혜(慧) 3글자가 있다. 이를 다른 말로 ‘삼학도(三學道)’라 부른다. 이 삼학도를 배우고 익히는 데 스님들은 평생을 수행정진한다. 3학도 이외 또 다른 중요한 수행법으로는 6바라밀이 있다. 바라밀은 ‘보살도’ 로 풀이된다. 이 여섯 가지 바라밀은 3학도인 계정혜가 세분화된 것으로써 엄밀하게 말하면 이 두 가지 용어는 같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삼학도와 육바라밀은 불교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해도 될 만큼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삼학도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뿐더러 말로도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계묘년 벽두, 겨울이 겨울을 껴입고 있다. 그 겨울 위에서 눈을 감고 생각해본다. 계묘년 올 한해, 우리 한국불교태고종단은 무슨 옷을 껴입고 또 한해를 나야 할까? 벽두에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은, 비단 필자 혼자만이 아니리라.이를 증명하듯, 총무원장 호명 스님은 신년사를 통해 “‘삶’보다 더 위대하고 존엄한 가치는 없다”고 단호히 밝히고 있다. 그러면서 “그렇게 중요한 ‘삶’이기에 우리는 그 ‘삶’을 함부로 소비하며 내키는 대로 살 순 없다”며 “부처님이 부처님으로 오신 것도 그 ‘삶’의 가치와 목적을 우리에게 기꺼이 일러주기 위
새해가 밝았다. 새해를 맞이하면 누구나 기대에 부풀어 있다. 그동안 알뜰하게 아끼고 절약하여 모은 적금을 찾아 내 집을 마련한다는 벅찬 꿈도 있겠고, 결혼이나 승진을 꿈꾸기도 한다. 어린아이라면 한 살 더 먹어 상급생이 된다는 기대감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노령기에 이르러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은, 직장을 은퇴하고 제2의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적잖은 부담감을 갖게 한다.그런가 하면 마땅히 즐길 거리가 없이 무료한 시간을 보내야 하는 고독감이 스멀스멀하거나 몸이 성치 않아 자주 병원을 들락거려야 하는 시간들이 늘어간
1년의 마지막 절기인 동지(冬至)는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다음날부터는 낮이 더 길어진다. 예부터 동지를 작은 설로 여겨 축하했다. 절에서는 이날 신도들에게 달력을 나누어준다. 팥죽을 쑤어 나누어 먹는다. 팥죽은 액운을 쫓는다는 의미도 있지만, 작은 설을 축하하며 나누는 음식이다. 많은 사찰에서는 거리에 나가 시민들에게 팥죽을 나누는 행사도 벌인다. 호호 불어 팥죽을 먹으면 추위가 싹 가신다. 이 따뜻함으로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는 힘을 얻기도 하니, 팥죽 나누기는 서로에게 온기를 전하는 따사로운 풍속이다.동지 즈음의 일출 시각은 오
임인년 (壬寅年)의 해가 저물고 계묘년(癸卯年)의 해가 떠오르고 있다.연말연시에는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자신이 걸어갈 길을 계획해야 한다. 자신의 이력(履歷) 중 무엇이 부족한지 살펴봐야 하는 것이다. 이력의 사전적 의미는 ‘신발이 겪은 일’이다.이윤기는 한 저서에서 모노산달로스(Monosandalos) 즉, ‘외짝 신 사나이’의 신화적 의미를 역설했다.불가(佛家)에도 모노산달로스가 있다. 달마 대사는 중국의 소림사에서 9년 동안 도를 닦으며 제자들을 가르치다가 528년 열반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제자들은 달마 대사를
불기 2567(2023)년 계묘년 새해 태양이 힘차게 솟아올랐다. 새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마음가짐을 달리한다. 한 해를 설계하며 도약과 희망을 꿈꾸기도 하고 새해 소망을 기도하며 무탈없이 한 해를 잘 넘기기를 바란다. 이러한 속에서 인류 역사는 성장과 발전을 거듭해왔다. 실제로 인류의 발전과 진보는 사람들의 이러한 부푼 기대 속에서 비롯돼 왔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미래의 설계라 할지라도 과거의 반조를 통하지 않고는 훌륭한 성과를 내기 어렵다. 2023년 새해 아침도 그래서 마냥 기쁘고 들뜬 기분으로 맞을 일만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