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12일 경기 양주 청련사에서 열린 한국불교태고종 제27·28대 총무원장 이·취임식에서 제28대 총무원장 상진 스님은 첫 일성으로 “태고종의 법통과 법맥을 전승하고 수호하며 본종의 정통성과 전통성의 위상과 가치를 굳건히 확립하여 종도 여러분들께서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퍽, 상식적’인 말이었다. 그런데 ‘퍽, 상식적’인 그 말이 ‘퍽, 상식적’인 말로 들리지 않고 ‘퍽, 참신한’ 말로 들린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결론은 간단하다. 그동안 적통 정통 장자종단임을 자임하면서도 태고종은 적통 정통 장
복(伏)날은 음력 6월에서 7월 사이에 들어 있는 세 번의 절기를 말한다. 복날은 열흘 간격으로 온다. 그러나 해에 따라서는 중복과 말복 사이가 20일 간격이 되기도 한다. 이를 월복(越伏)이라고 하는데 올해가 그런 경우다. 7월 11일 초복에서 입추(立秋)를 지나 8월 10일 말복까지 꼭 한 달이다.《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에 따르면 복날에는 보신(補身)을 위해 개장국 같은, 특별한 음식을 장만해 먹는 풍습이 있었다. 요즘에는 흔히 닭백숙이나 삼계탕을 보양식이라는 이름으로 잘 만들어 먹는다. 또 더위를 먹지 않고 질병에도 걸리
우란분은 범어이다. 한자로는 ‘해도현(解倒懸)’ 즉, ‘거꾸로 매달린 것을 풀어준다’는 것이다. 거꾸로 매달린 것은 살아생전에 죄를 많이 지은 중생들이다.우란분절은 목련존자 설화에서 기인한 것이다.부처님의 제자인 목련은 천안(天眼)으로 우주의 모든 현상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효심이 지극한 목련은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천상과 인간계를 두루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어머니가 보이지 않아 혹시나 하는 생각에 지옥계를 살펴보았다. 어머니는 아귀도에 떨어져 고통을 받고 있었다.슬퍼하는 목련존자에게 부처님이 어머니를 지옥에서 벗
만년설(萬年雪)은 영험한 풍경이다. 아침 햇살을 받은 거대한 순백의 산이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빛나는 모습은 가히 장관이다. 자연의 위대함 앞에 저절로 겸허의 세계로 들어간다. 종교적 경험을 자연에 빗대어 설명하곤 하는데, 만년설의 풍경을 보면 그 까닭을 알 수 있다.만년설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 아프리카의 킬리만자로 만년설이 녹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널리 알려졌다. ‘세계의 지붕’으로 불리는 히말라야 설산도 녹아내리고 있다. 얼마 전의 뉴스에 따르면, 현재의 추세대로 온실가스가 배출될 경우 21세기 말에는 히말라야의 빙하 중 80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고 있는 추억의 장소에서 빠지지 않는 곳이 동물원이다. 누구나 한 번은 다녀갔을 것이다. 나도 아이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을 때에 과천의 서울대공원 내의 동물원으로 가족 나들이를 갔다. 즐거운 시간을 보낸 장소로 기억된다.최근 서울어린이대공원에서 살던 얼룩말 ‘세로’의 탈출을 계기로 동물원 논란이 다시 불거졌다. 언론은 물론 개인 블로그와 유튜브에서도 관련 주제들을 다루고 있다. 동물원 존폐 논란은 꽤 오랜 주제다.이런 가운데 시사주간지 은 최근호에서 ‘얼룩말 탈출 그 후, 동물원의 존재 이유를 묻다’는
6월은 호국보훈의 달이다. 6월에는 애국선열과 국군장병들의 충절(忠節)을 추모하는 6월 6일 현충일이 있고,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진 6월 25일이 있다.흔히 근대화의 3요소로 산업화, 민족주의, 자유인의 출현을 꼽는다. 근대화의 3요소 중 민족주의는 파시즘의 사상적 근간이 됐다. 2차 세계대전은 서구 열강의 식민지 쟁탈 과정에서 야기된 것이고, 그 사상적 기반이 된 것이 바로 민족주의이다. 독일은 게르만우월주의를 내세우면서 홀로코스트를 자행했고, 일본은 대동아공영을 내세우면서 난징 대학살을 자행했다.2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민족주의
부처님오신날을 치렀다. 전국 방방곡곡에서 수많은 불자들이 사찰을 찾아 등을 밝혔다. 건강과 평화를 기원했고, 그늘진 곳에도 햇살이 따사로이 비추기를 염원하며 거룩하신 부처님 전에 두 손을 모았다.부처님오신날에 앞서 지난 20일에는 서울과 부산을 비롯한 전국 주요 도시에서 제등행렬을 펼쳤다. 그야말로 온 나라가 흥겨운 잔칫날이었다. 서울 동대문에서 종각에 이르는 거리에는 10만의 불자들이 동참했다. 연도의 시민들은 박수로 행렬을 맞이했으며, 각색의 장엄등을 바라보며 탄성을 지르며 시름을 내려놓았다. 부산의 불자들은 특히 엑스포 부산
노예제, 여성참정 제한, 장자상속, 제국주의자들의 식민 지배와 선주민 몰아내기. 이런 행위들이 한때 세상을 활보했다.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던 관행, 관습, 문화의 일부가 실은 기득권 유지를 위한 장치로 기획되어 작동되었던 적이 있었다.엄밀한 사실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자연과학에서도 거짓이 지배하던 때가 있었는데, 지동설을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겠다. 자연과학은 여전히 미지의 세계가 더 넓다. 그러니 우리가 상식 또는 사실이라고 여기는 것들에 대해 계속 의심의 눈길을 주어야 한다.사실이 아니거나 삶을 억압하는 것이라면 과감
책 읽는 작은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데, 올해 초 새 주제를 ‘자연의 권리’로 정했다. 이 주제의 책과 논문을 읽고 느낌과 생각을 나누고, 이 내용을 많은 이들에게 알려 자연의 권리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것이 이 모임의 취지이다.애초 이 모임은 가축 살처분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시작했다. 2020년이었다. 이해 12월 발생한 조류인플루엔자로 수천만 마리의 닭과 오리가 살처분되었다. 조류인플루엔자는 2003년 우리나라에서 처음 발생한 이후 1~2년 주기로 발생하고 있으며, 그때마다 정부는 전염병이 발생한 농가는 물론 인근 농가의 닭과 오리
하루 세 번 식탁을 마주할 때마다/ 내 몸 속에 들어와 고이는/ 인간의 성분을 헤아려 보는데/ 어머니 지구가 굳이 우리 인간만을/ 편애해야 할 까닭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주를 먹고 자란 살 한 톨이/ 내 몸을 거쳐 다시 우주로 돌아가는/ 커다란 원이 보입니다/ 내 몸과 마음 깨끗해야/ 저 쌀 한 톨 제자리로 돌아갈 텐데// 저 커다란 원이 내 몸에 들어와/ 툭툭 끊기고 있습니다이문재의 ‘지구의 가을’일부이다. 이 시편은 2003년 소월시문학상 당선작이다. 이문재 시인은 1연의 끝에 “지리산 실상사 공양간(식당) 배식대 앞에 붙어
며칠 전 내린 비에 꽃잎이 흐트러졌다. 때아니게 바람까지 거칠다. 봄이려니 했는데 낙화가 분분하다. 분홍의 꽃잎이 마치 눈처럼 흩날리는 풍경을 보았다. 가슴이 뛴다. 절정의 시간이 찰나처럼 지나가듯 꽃의 시간은 짧고, 그 시간이 가는 것이 내내 아쉽다. 짧은 인생에서 봄의 정취를 만끽하는 일은 복되다. 다시 1년을 기다려야 봄꽃의 황홀함에 겨울 수 있다. 먼지를 뒤집어 쓴 것처럼 부였던 산이 어느 날은 연둣빛이더니 며칠 지나는 사이에 초록으로 갈아입었다. 이제 눈부신 햇살을 받아 저 산은 녹음으로 치달을 것이고, 꽃 진 자리에서 열
도시 문명의 이기를 누리면서부터 봄이 와도 아지랑이를 볼 수 없게 되었다. 어릴 적 필자는 저 멀리 불꽃같이 아른거리는 아지랑이를 보면서 삶이 한낱 꿈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어림짐작할 수 있었다.오현 스님은 ‘아지랑이’라는 시편에서 “끝내 삶도 죽음도 내던져야 할 이 절벽에/ 마냥 어지러이 떠다니는 아지랑이들/ 우습다/ 내 평생 붙잡고 살아온 것이 아지랑이더란 말이냐.”라고 일갈하였고, 공초 오상순은 ‘꿈’이라는 시편에서 “꿈에 나서 꿈에 살고 / 꿈에 죽어가는 인생/ 부질없다 깨려는 꿈/ 꿈은 깨어 무엇하리”라고 노래했다.오현 스
봄이 오면 펼쳐보는 시가 있다. 최영미의 ‘선운사에서’이다.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어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 한참이더군마지막 연의 두 행, ‘꽃이 지는 건 쉬어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은 실로 절창이다. 찰나의 사랑이 영원의 그리움으로 승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시인들이 선운사의 동백꽃을
잊혀질 듯하면 종교와 관련된 대형 사건이 터진다. 이번에는 일명 JMS라 불리는 기독교복음선교회에서 벌어진 것이다. 3월 초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나는 신이다’가 업로드되면서 종교의 이름 아래 벌어진 추악함이 많은 이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지난해 7월에는 아베 신조 전 총리를 총격해 살해한 사건을 계기로 통일교와 일본 정계의 유착이 일본은 물론 한국 사회에도 큰 충격을 던졌다. 두 집단의 유착은 뿌리 깊었다. 기시다 내각에서 통일교와의 관계가 드러난 이들이 적지 않았다. 기시다 총리는 지지율이 급락하자 통일교와 관련 있는 7명의 각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한 경제전문가가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게 누구냐. 돈이거든요.” 그의 말이 내내 걸렸다. 수긍하면서도 동의할 수 없고, 부정할래야 전적으로 부정할 수 없는, 그래서 불편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돈에 매몰시킨 신자유주의는 우리 생각의 밑바닥까지 지배한다.그러나 세상은 돈이 있어도 얻을 수 없고, 돈으로 해결할 수 없는 가치들이 아직은 많다.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더 글로리’에서 재벌가 자녀의 학교폭력과 그것을 덮는 더러운 짓은 돈의 힘이었지만, 끝내는 파멸을 맞는다. 우정, 자비, 사랑, 친절,
애인이여/ 너를 만날 약속을 인젠 그만 어기고/ 도중에서/ 한눈이나 좀 팔고 놀다가기로 한다./ 너 대신/ 무슨 풀잎사귀나 하나/ 가벼히 생각하면서/ 너와 나 사이/ 절간을 짓더라도/ 가벼히 한눈파는/ 풀잎사귀 절이나 하나 지어 놓고 가려한다.위 시는 미당 서정주의 ‘가벼히’이다. 이 시편의 모티브는 아마도 부처님의 일화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부처님께서 수행공동체를 둘러보다가 이전에 없던 나무로 잘 지어진 요사채를 보고서 아난존자에게 물었다.“저 집은 누가 지은 것이냐?”“목수 출신의 수행자가 지은 것입니다.”“당장 저 집을 허물어
최근 필자는 소설집 《검은 입 흰 귀》와 장편소설 《염주》를 출간했다. 소설집에 실린 의 주인공 명정 스님은 벗이라곤 붓밖에 없는 화승(畵僧)이다.“불화를 그릴 때는 꿈속에서도 불보살님을 만났다. 꿈속에서 명정은 불화를 그리다가 불화 속으로 들어가곤 했다. 영산회상도 속으로, 아미타후불도 속으로, 비로자나후불도 속으로, 약사여래후불도 속으로, 지장시왕도 속으로, 관세음보살도 속으로 들어가 자신은 사리지고, 그리하여 종내는 그림만이 오롯하게 남게 됐다. 단청을 그릴 때도 마찬가지였다. 꿈을 꿀 때마다 명정은 단청 속
“법은 인간이 만든 것이므로 인간중심적인 편향성을 띨 가능성이 있다. 야생동물의 권리는 흔히 부차적인 중요성을 부여받곤 한다. 그러나 우주에서 인간과 동물은 동등한 위치에 있다.”“우리가 절멸 위기종을 지키고자 힘쓰는 이유는, 그들이 인간과 마찬가지로 이 지구상에서 살아갈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인간의 이익이 자동적인 우위를 차지하지 않으며, 인간은 제 이익과 무관하게 비인간 생명체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위에서 인용한 문장은 생태주의자의 주장이 아니다. 세계적인 종교지도자의 권고도 아니다. 영성활동가나 이상주의자의 생각도 아니다
개인이건 단체건 기념일을 두어 특별히 기린다. 걸맞은 의식을 갖추기도 한다. 의미가 없는 날이 있을까마는 기념일을 두는 것은 세상살이의 지혜이다. 불교에서는 기념일을 재일(齋日)로 이름을 붙여 치른다. 정진을 다짐하고 불자임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신도들의 유대감과 소속감을 높여주는 역할도 한다.재일은 축제일이기도 하다. 재일에 담긴 또 다른 의미는 과거를 털어버리고 새롭게 출발한다는 것이다. 축제는 전도(顚倒), 즉 뒤집힘에 그 의미가 있다. 높고 낮음, 길고 짧음, 옳고 그름 등 세속의 가치를 뒤집어 낮은 것이 높아지고, 긴 것과
필자는 최근 《무문관》28칙 ‘구향용담(久響龍潭)’ 대목을 읽다가 이청준 소설가의 작품이 떠올랐다.덕산스님이 가르침을 청하러 왔을 때 마침 밤이 깊어서 용담스님이 “그만 물러가라”고 했다. 덕산스님은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갔으나 너무 어두워서 다시 돌아왔다.“바깥이 깜깜합니다.”용담스님은 지등(紙燈)에 불을 붙여 건네주었다. 덕산스님이 지등을 받으려고 할 때 용담스님은 입김으로 불을 꺼버렸다. 순간 덕산스님은 깨닫고 용담에게 절을 올렸다. 《금강경(金剛經)》에 밝았던 덕산스님은 ‘마음이 곧 부처’라고 주장하는 남종선의 스님들을 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