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이다. 먼 달빛으로 사막을 사자 한 마리가 가고 있다. 무거운 몸뚱어리를 이끌고 사구(砂丘)를 소리 없이 오르내린다. 매우 느린 걸음이다.쉬르르쉬르르. 명사산의 모래가 미끄러지는 소리인가. 사자는 아랑곳없이 네 발만 차례차례 떼어놓는다. 발자국도 모래에 묻힌다. 달이 더 화안히 밝자, 달빛이 아교에 이긴 은니(銀泥)처럼 온몸이 끈끈하게 입혀진다. 막막한 지평선 끝까지 불빛 한 점 반짝이지 않는다. 사막의 한복판에 사자의 그림자만 느릿느릿 느릿느릿 움직이고 있다.〈중략〉누란(樓蘭)을 지났는가.돈황(敦煌)을 지났는가.가도 가도 끝없
원로회의가 12월 5일 한국불교전통문화전승관 1층 대회의실에서 금년도 2차 회의를 갖고 이 자리에서 한국불교태고종 제21세 종정에 백련사 회주 운경 큰스님을 만장일치로 추대했다. 이에 앞서 총무원장 상진 스님, 중앙종회의장 법담 스님, 호법원장 혜일 스님은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고심 끝에 운경 큰스님을 차기 종정으로 원로회의에 추천하기로 최종합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3원장이 운경 큰스님으로 의견을 집약하게 된 데에는 교학을 통달하고 부종수교의 행장 등으로 덕망을 쌓음으로써 종단에서 폭넓은 신망을 얻고 있다는 점이 원인으로 꼽히고 있
한국불교태고종 전국교임전법사회가 11월 20일부터 21일까지 1박2일간 대전 계룡파스텔에서 총회를 갖고 전법사로서의 자질향상과 종단발전을 위해 적극 단결하고 협력키로 다짐했다고 한다. 전국교임전법사회는 이번 총회에서 △애종심을 갖고 종단 행사에 적극 참여 및 협조 △종단 육부대중의 하나인 전법사로서의 소양 및 자질향상을 위한 노력 등을 결의했다고 전해지고 있다.총무원장 상진 스님도 20일 총회에 참석해 격려사에서 종단발전과 대외적 위상 확립을 위한 한 축으로서 전법사들이 제 역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전국교임전법사회 회장
부처님 법을 믿고[信] 행하는 불제자(佛弟子)들은 오직 불법을 널리 전하는 포교가 대(代)를 이어주는 생명이라고 보아도 될 것이다.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 뿐만 아니라 과거 역대조사님들의 한결같은 유훈(遺訓)을 보면 전법도생(傳法度生)은 반드시 빠뜨리지 않았다. 부처님 당시 영산회상(靈山會上)에서도 법을 펴는 모습이 그러하였다. 교조이신 석가세존께서 성도하신 후 잠시도 쉬지 않고 49년 동안 많은 제자는 물론 바라문, 거사, 장자,, 국왕, 대신, 외도들에게 법을 설교하시어 제도하셨고, 석가 세존 앞에서는 어떠한 이류(異類)라도 설교
뜨거운 모래밭 구멍을 뒷발로 파며/ 몇 개의 알을 낳아 다시 모래로 덮은 후 / 바다로 내려가다 죽은 거북을 본 일이 있다/ 몸체는 뒤집히고 짧은 앞 발바닥은 꺾여/ 뒷다리의 두 발바닥이 하늘을 향해 누워 있었다// 유난히 긴 두 발바닥이 슬퍼 보였다//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 마취실을 향해/ 한밤중 병실마다 불꺼진 사막을 지나/ 침대차는 굴러간다/ 얼굴엔 하얀 마스크를 쓰고 두 눈은 감긴 채/ 시트 밖으로 흘러나온 맨발/ 아내의 발바닥에도 그때 본 갑골문자들이/ 수두룩하였다— 송수권의 〈아내의 맨발−갑골문(甲骨文)〉전문 송수권은
초겨울의 숲길은 쓸쓸하고 으스스하다. 이파리가 다 떨어진 나무들은 이제 엄동의 추위를 기다리고 있다. 얼마 전까지 나뭇가지 사이를 넘나들며 지저귀던 이름 모를 새들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18일 기간을 정해 개방하는 태릉강릉 숲길을 맨발로 걸었다. 차가운 땅의 기운은 맨발을 타고 올라와 몸을 움츠리게 한다. 살짝 얼어 있는 땅의 습기는 따뜻한 내 몸의 열기를 대지로 끌어내린다. 모래가 되지 못한 굵은 돌부스러기들이 주는 자극은 아프기만 하다. 익숙하지 않은 맨발 걷기는 내겐 고통이자 고행이다.석가모니부처님은 출가한 이후 진리를 찾아
이석준 / 소설가요즈음 ‘길’이라는 소재로 글을 쓰다가 문뜩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 배웠던 프로스트의 ‘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떠올랐다. 현대 미국 시인 가운데 순수함과 고전적인 시풍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그는 이 시에서 소재로 숲 속에 난 두 갈래 길을 삼고 있으며 주제로 삶의 선택과 그로 인한 인생의 변화를 담고자 했다. 시인은 보통사람이라면 그냥 스쳐 지나갈 소박한 자연의 일들에서 지나온 인생을 되돌아보는 깊은 사색의 의미를 추구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시인이 자신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이지범 / 북한불교연구소 소장처음 만나는 이에게 건네는 말이 인연이라면, 자신의 곁에 마지막까지 있어 준 사람에게 전하는 말은 운명이라고 한다. 좋은 인연(善緣)과 나쁜 인연(惡緣) 그리고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얽매이지도 않는 인연(无緣)이 있다. 반면에 운명은 자신이 직접 만든 인연의 결과다. ‘운은 돌아온다’라는 뜻으로 반복된다는 의미다. 원인이 있으면 원인으로 인한 결과가 있다는 인과응보의 법칙을 따른다.우리 현실에서 펼쳐진 무수한 삶의 편린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많다. 그럴수록 운명의 편린은 마음속에 그려 놓은 청사진을
방일(放逸)은 산스크리트어로 쁘라마다(Pramāda)다. 선법(善法)을 닦지 않으려는 마음작용을 말한다. 부처님은 법을 성취하기 위해선 부지런히 갈고 닦을 것을 강조하셨다. 열반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던진 말씀도 “모든 것은 무상하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였다.부처님의 말씀처럼 자신을 담금질하며 억척스레 노력한 대표적 인물이 서암언(瑞巖彦 850~910) 선사다. 덕산 스님의 법손(法孫)인데 전하는 바로는 천성이 매우 둔하여 스승인 암두전할 선사도 깨달음에 이르긴 어렵다고 보고 잘 돌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서암언
한국 리서치가 조사한 2021년 우리나라 종교인구 비율을 보면 개신교 20%, 불교 17%, 천주교 11%, 기타 종교를 믿는 사람은 2%이고, 종교가 없는 사람이 50%라고 한다.연령대가 낮을수록 믿는 종교가 없다는 응답이 높은 반면 60세 이상 응답자 중 믿는 종교가 없다는 응답이 적게 나타났다. 젊은 세대는 종교인구가 늘어나는 반면 나이가 들수록 줄어드는 양상도 보였고 3대 종교 중 개신교와 불교에서만 종교 없음으로 돌아선 인구가 많았다.3대 종교의 종교활동인구는 개신교 천주교 불교의 순서로 개신교의 경우 51%가 매주 교회에
11월 2일 태고총림 순천 선암사에서 엄수된 한국불교태고종 제48기 합동득도 수계산림에서 외국인 행자 5명이 사미 수계를 받고 예비승려가 되었다. 이들은 각각 영국 핀란드 이스라엘 체코 중국에서 왔다. 한국불교태고종이 가르치는 선불교에 매료되었다는 점과 결혼을 허용하고 있어 태고종으로 출가를 결심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이들의 향후 계획도 분명했다. 이들은 정식으로 구족계와 대승보살계를 수계하고 나면 각자 자국으로 돌아가 전법교화에 매진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부처님의 평화에 대한 가르침과 불교의 사상을 앞세워 전쟁없는 지구촌,
온갖 원(願) / 앉힌 자리 / 꿈을 태운 화중삼매(火中三昧) // 이제는 / 연지(燃指)로도 / 갈 수 없는 서역만리(西域萬里) // 향연(香煙)은 / 빈 성터에 남아서 / 꽃잎으로 피고 있다. // 살포시 / 유성(流星)을 앉혀 / 저 궁전(宮殿) 지등(紙燈) 밝히면 // 쉬었던 / 구름도 이젠 / 용이 되어 비천(飛天)하고 // 먹물 빛 / 차가운 가슴도 / 빛을 안아 사리(舍利)런가정휴스님의 ‘오동향로(鳥銅香爐)’ 전문 오동향로의 빛깔은 검붉다. 구리의 빛깔에 세월의 더께가 더해진 까닭에 천년바위에 푸른 이끼가 낀 것처럼 고
‘Single malt whisky’란 싹을 틔운 맥아(보리)를 원료로 하여 단일 증류소에서 만든 몰트 위스키로, 줄여서 ‘싱몰’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발렌타인 30년(이하 ‘발삼’)이나 조니워커 블루와 같은 면세점용 고급 블렌디드 위스키는 이런 싱글몰트 위스키들을 모은 블렌디드 몰트 위스키에 싱글그레인 위스키를 섞은 것이다.이 가운데 블렌디드 위스키의 베이스가 되는 중요한 원료로, 맛의 핵심을 담당하는 싱글 몰트를 키 몰트(Key Malt)라고 부른다. 이런 키몰트로 선정되는 싱글몰트는 위스키가 만들어지는 지역과 증류소
얼마 전 TV 문화 탐방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불교왕국이라 불리는 스리랑카 편에서의 일이다.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던 작가의 순례기였는데 이 내용을 보며 한 편으로는 부러움을, 다른 한편으로는 환희심과 함께 공양의 의미를 다시 새겨 보게 되었다. 이 탐방 작가가 스리랑카의 외곽의 시내 지역을 지나가고 있을 때, 갑자기 교통 경찰들이 도로 곳곳을 막기 시작했다. 이 작가는 아마도 스리랑카의 정치 고위 지도층이 이 지역을 지나가게 되어 도로를 통제하는 줄 알았다. 10여 분을 기다리던 작가의 눈에 들어온 대상은 바로 수십 마리의 코끼리 떼였
이병두 / 종교평화연구원장‘세계의 화약고 중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지난 10월 7일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 이스라엘’ 사이에 유혈 충돌이 일어난 뒤 그 기세가 수그러들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강도가 심해지고 있다. 서로 “저 놈들 때문”이라며 ‘거칠다’는 표현만으로 담아낼 수 없는 독기毒氣 가득 찬 말을 쏟아내고 한 발짝도 물러설 태세를 보이지 않는다.이 지역의 분쟁은 이곳을 수백 년 동안 지배했던 오스만 터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위임 통치(1920~48)했던 영국이 전쟁 초기
미당 서정주는 가장 겨레의 말을 잘 구사하고 겨레의 고운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시인이기도 하지만, 불교교리를 운문에 가장 잘 용해한 시인이기도 하다.노래가 낫기는 그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로 잡은 산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소납이 태고총림 선암사 주지 소임을 맡고 처음으로 신도회 정기법회와 일요 불교대학에서 특강을 하였는데 입과 말조심하라는 내용으로 시작과 끝을 맺었다.인간은 날마다 수천수만의 말을 하고 산다. 그중 참되고 아름다운 말을 하면 금구성언(金口聖言)이 되고, 잘못된 말이나 남의 마음을 상하게 하면 악구악담(惡口惡談)이 된다.불교에서 업장과 악습을 참회하고 소멸하는 진언들이 있는데 구업(口業)보다 더 큰 업들이 많이 있는데도 말과 입을 깨끗이 한다는 ‘정구업진언’이 맨 먼저 등장하는 것은 그만큼 구업을 쉽게 또 많이 지어서 그런 게 아닌 가
한국불교태고종 총무원장 상진 스님이 취임식을 가진 7월 12일을 기점으로 10월 20일이 취임 100일이 된다. 총무원장 상진 스님은 취임 100일을 맞아 연합뉴스와 교계기자들을 상대로 인터뷰 및 간담회를 가졌다. 이 자리를 위해 미리 준비한 100일간의 행적을 살펴보면 총무원장 상진 스님이 얼마나 많은 거리와 시간을 할애하며 전국을 다녔는지 알 수 있다. 일반인이 자동차 주행거리를 2만㎞까지 도달하려면 일반적으로 2~5년이 소요된다. 그런데 상진 스님은 100일 간 그 거리를 뛰었다. 광폭행보라는 표현이 틀리지 않는 말이다. 총무
우리 불자들이 절에서 치르는 모든 행사에서 가장 먼저 올리는 의식은 삼귀의(三歸依)이다. 이는 불교의 가잘 성스러운 세 가지 보배인 부처님(불), 가르침(법), 제자(승)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따라서 그 삼보에게 돌아가 의지하겠다는 서원이요, 다짐이다.삼보에게 지극한 예경을 올리며 돌아가 의지하는 불자들의 몸과 마음은 지극히 고요하고 청정하게 가라앉는다. 세간(世間)에서 일어났던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심(三毒心)은 삼보께 예경을 올리면서 서서히 사라짐을 알아차리게 된다.이것은 우리가 절에 와서 삼귀의를 올리며 얻는 크나
한국불교태고종 제20세 종정을 지낸 지허당 지용 대종사가 10월 2일 주석처인 순천 금둔사에서 입적해 8일 선암사에서 종단장으로 영결식을 봉행했다. 지허 대종사는 만 15세에 만우 스님을 은사로 출가한 이후 경남 합천 해인사 용탑선원과 양산 통도사 극락선원, 통영 미래사 토굴 등지에서 용맹정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종파를 초월해 고암, 경붕, 전강, 구산 스님 등 당대 제방의 큰스님들을 찾아 불법을 물을 정도로 수행과 구도의 열정이 남달랐다. 이러한 구도열정은 폐허가 된 비로암에 토굴을 짓고 3년간 두문불출하며 수행에 매진한 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