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범 / 북한불교연구소 소장처음 만나는 이에게 건네는 말이 인연이라면, 자신의 곁에 마지막까지 있어 준 사람에게 전하는 말은 운명이라고 한다. 좋은 인연(善緣)과 나쁜 인연(惡緣) 그리고 좋지도 나쁘지도 않고 얽매이지도 않는 인연(无緣)이 있다. 반면에 운명은 자신이 직접 만든 인연의 결과다. ‘운은 돌아온다’라는 뜻으로 반복된다는 의미다. 원인이 있으면 원인으로 인한 결과가 있다는 인과응보의 법칙을 따른다.우리 현실에서 펼쳐진 무수한 삶의 편린을 운명처럼 받아들이는 것이 많다. 그럴수록 운명의 편린은 마음속에 그려 놓은 청사진을
방일(放逸)은 산스크리트어로 쁘라마다(Pramāda)다. 선법(善法)을 닦지 않으려는 마음작용을 말한다. 부처님은 법을 성취하기 위해선 부지런히 갈고 닦을 것을 강조하셨다. 열반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던진 말씀도 “모든 것은 무상하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였다.부처님의 말씀처럼 자신을 담금질하며 억척스레 노력한 대표적 인물이 서암언(瑞巖彦 850~910) 선사다. 덕산 스님의 법손(法孫)인데 전하는 바로는 천성이 매우 둔하여 스승인 암두전할 선사도 깨달음에 이르긴 어렵다고 보고 잘 돌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나 서암언
온갖 원(願) / 앉힌 자리 / 꿈을 태운 화중삼매(火中三昧) // 이제는 / 연지(燃指)로도 / 갈 수 없는 서역만리(西域萬里) // 향연(香煙)은 / 빈 성터에 남아서 / 꽃잎으로 피고 있다. // 살포시 / 유성(流星)을 앉혀 / 저 궁전(宮殿) 지등(紙燈) 밝히면 // 쉬었던 / 구름도 이젠 / 용이 되어 비천(飛天)하고 // 먹물 빛 / 차가운 가슴도 / 빛을 안아 사리(舍利)런가정휴스님의 ‘오동향로(鳥銅香爐)’ 전문 오동향로의 빛깔은 검붉다. 구리의 빛깔에 세월의 더께가 더해진 까닭에 천년바위에 푸른 이끼가 낀 것처럼 고
‘Single malt whisky’란 싹을 틔운 맥아(보리)를 원료로 하여 단일 증류소에서 만든 몰트 위스키로, 줄여서 ‘싱몰’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발렌타인 30년(이하 ‘발삼’)이나 조니워커 블루와 같은 면세점용 고급 블렌디드 위스키는 이런 싱글몰트 위스키들을 모은 블렌디드 몰트 위스키에 싱글그레인 위스키를 섞은 것이다.이 가운데 블렌디드 위스키의 베이스가 되는 중요한 원료로, 맛의 핵심을 담당하는 싱글 몰트를 키 몰트(Key Malt)라고 부른다. 이런 키몰트로 선정되는 싱글몰트는 위스키가 만들어지는 지역과 증류소
얼마 전 TV 문화 탐방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불교왕국이라 불리는 스리랑카 편에서의 일이다. 동남아시아를 여행하던 작가의 순례기였는데 이 내용을 보며 한 편으로는 부러움을, 다른 한편으로는 환희심과 함께 공양의 의미를 다시 새겨 보게 되었다. 이 탐방 작가가 스리랑카의 외곽의 시내 지역을 지나가고 있을 때, 갑자기 교통 경찰들이 도로 곳곳을 막기 시작했다. 이 작가는 아마도 스리랑카의 정치 고위 지도층이 이 지역을 지나가게 되어 도로를 통제하는 줄 알았다. 10여 분을 기다리던 작가의 눈에 들어온 대상은 바로 수십 마리의 코끼리 떼였
이병두 / 종교평화연구원장‘세계의 화약고 중의 화약고’라고 불리는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지난 10월 7일 ‘이스라엘 - 팔레스타인’, ‘팔레스타인 - 이스라엘’ 사이에 유혈 충돌이 일어난 뒤 그 기세가 수그러들기는커녕 시간이 흐를수록 강도가 심해지고 있다. 서로 “저 놈들 때문”이라며 ‘거칠다’는 표현만으로 담아낼 수 없는 독기毒氣 가득 찬 말을 쏟아내고 한 발짝도 물러설 태세를 보이지 않는다.이 지역의 분쟁은 이곳을 수백 년 동안 지배했던 오스만 터키가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뒤 위임 통치(1920~48)했던 영국이 전쟁 초기
미당 서정주는 가장 겨레의 말을 잘 구사하고 겨레의 고운 마음을 가장 잘 표현한 시인이기도 하지만, 불교교리를 운문에 가장 잘 용해한 시인이기도 하다.노래가 낫기는 그중 나아도/ 구름까지 갔다간 되돌아오고,/ 네 발굽을 쳐 달려간 말은/ 바닷가에 가 멎어 버렸다./ 활로 잡은 산돼지, 매로 잡은 산새들에도/ 이제는 벌써 입맛을 잃었다./ 꽃아. 아침마다 개벽하는 꽃아./ 네가 좋기는 제일 좋아도,/ 물낯바닥에 얼굴이나 비취는/ 헤엄도 모르는 아이와 같이/ 나는 네 닫힌 문에 기대섰을 뿐이다./ 문 열어라 꽃아. 문 열어라 꽃아./
우리 불자들이 절에서 치르는 모든 행사에서 가장 먼저 올리는 의식은 삼귀의(三歸依)이다. 이는 불교의 가잘 성스러운 세 가지 보배인 부처님(불), 가르침(법), 제자(승)에게 지극한 마음으로 믿고 따라서 그 삼보에게 돌아가 의지하겠다는 서원이요, 다짐이다.삼보에게 지극한 예경을 올리며 돌아가 의지하는 불자들의 몸과 마음은 지극히 고요하고 청정하게 가라앉는다. 세간(世間)에서 일어났던 탐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의 삼독심(三毒心)은 삼보께 예경을 올리면서 서서히 사라짐을 알아차리게 된다.이것은 우리가 절에 와서 삼귀의를 올리며 얻는 크나
세상을 살다보면 반갑지 않은 구설에 올라 망신 아닌 망신을 당하거나 낭패를 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때때로 감정에 휘둘려 남에게 해가 되는 말과 행동을 일삼다 법정으로까지 끌고 가는 세상의 일들이 어디 한 둘인가.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우바새계경≫에서 이렇게 말씀하셨다.“남의 착한 일은 드러내주고 허물은 숨겨주라. 남의 부끄러운 점은 감추어주고 중요한 이야기는 발설하지 말라. 작은 은혜라도 반드시 갚아야 할 것이며, 자기를 비판하는 사람에게도 항상 착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자기를 비판하는 자와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똑같이 괴로워
불교환경연대 사무총장 한주영연휴가 길었던 한가위가 지나고 이제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말이 있듯이 한가위는 일상의 고단함을 잠시 내려놓고 가족과 친지들과 함께 음식을 먹으며 수확의 기쁨을 나누고 몸과 마음을 재충전하는 때입니다.풍요로움의 원천은 감사함에서 나옵니다. 감사함이 없다면 아무리 물질적으로 풍요롭더라도 마음의 풍요는 오지 않습니다. 오늘날 과거에 비해 풍요러워졌음에도 사람들이 마음에 풍요를 느끼지 못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상품화 된 현대사회에서는 사람 사이
I was born요시노 히로시분명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은 무렵이었다.어느 여름날 저녁, 아버지와 함께 절 경내를 걷고 있을 때, 푸른 저녁 안개 속에서 떠오르듯이 하얀 여자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나른하고 천천히.여자는 몸이 무거워 보였다. 아버지의 눈치를 살피면서도 나는 그녀의 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머리를 아래로 향한 태아의 유연한 움직임을 배 언저리에서 연상하며 곧 세상에 태어날 그 신비에 사로잡혀 있었다.여자는 지나갔다.소년의 상상은 비약하기 쉽다. 그때 나는‘태어난다’는 것이 확실히 수동태인 의미를 불현
네 명의 한국 남자 수영 선수들이 이번 항저우 아시안 게임 수영 800미터 계영 결선에서 금빛 물살을 갈랐다. 그것도 2009년에 일본이 로마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작성한 7분 02초 26을 14년 만에 0.53초 단축한 눈물과 땀방울로 새긴 아시아 신기록이다.개최국이며 아시아 최강인 중국이 초호화 스타 4명으로 팀을 구성해 경쟁했지만 뛰어난 팀워크와 허를 찌르는 선수배치를 한 한국 팀의 자랑스러운 네 명의 선수들에 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사실 수십 년 동안 아시안 게임에서 육상과 수영 종목은 일본과 중국이 싹쓸이를 하고 우리 한국
사람을 만나면 으레 합장(合掌)하고 반배(半拜)한다. 불교계 생활에서 몸에 밴 습관이다. 상대가 내게 불교 신자인지 묻는 경우도 있다. 자연스레 그렇다고 답한다. 합장은 스스로 불자임을 나타내는 표시의 하나다.합장은 원래 부처님이 태어나신 인도의 전통 인사법으로 알려져 있다. 신성한 오른손과 부정한 왼손이 합쳐 일심(一心)으로 진실을 추구한다든지, 합장하는 한 손은 자기 자신을, 다른 한 손은 다른 사람을 의미한다는 이야기가 전해 온다. 두 손을 합쳤으니 너와 내가 둘이 아닌 자타불이(自他不二)이며, 타인을 나와 동일한 존재로 존중
이용성법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모임 풍경소리 사무총장2023년 9월 28일이면 공식적으로 풍경소리 활동을 시작한 지 만 24년이 되는 날이다. 어쩌다 보니 개인적으로 9월 28일 하고 여러 인연이 있는데 그 중에도 1983년 9월 28일이 입대일이다.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당시 전두환 군사독재정권하에서 학생운동(학내활동도 있었지만 대학생불교연합회 임원)을 했다는 이유로 강제로 징집당한 날이다. 세월이 흘러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 강제징집피해자로 인정받긴 했어도 인생에 있어 잊지 못할 고통스런 날로 기록되었다. 16
추석 무렵김남주반짝반짝 하늘이 눈을 뜨기 시작하는 초저녁나는 자식놈을 데불고 고향의 들길을 걷고 있었다. 아빠 아빠 우리는 고추로 쉬하는데 여자들은 엉덩이로 하지? 이제 갓 네 살 먹은 아이가 하는 말을 어이없이 듣고 나서나는 야릇한 예감이 들어 주위를 한번 쓰윽 훑어보았다. 저만큼 고추밭에서아낙 셋이 하얗게 엉덩이를 까놓고 천연스럽게 뒤를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이 들어서 그랬는지산마루에 걸린 초승달이 입이 귀밑까지 째지도록 웃고 있었다.(《김남주 시전집》, 창비, 2014)*과학기술의 발달은 이미지의 대중적 확산을 가능하게 함으
지금 9월의 연꽃 밭을 거닐고 있는 나의 시야에는 큼지막한 연잎들이 마치도 크나 큰 우산을 연상케 하고 있으며, 드문드문 피어 있는 몇 개의 연꽃만이 도량을 찾는 불자들을 맞고 있는 가을 초입의 풍광은 까맣게 변하고 있는 연밥과 누렇게 물들고 있는 연잎들이 자연의 무상(無常)함을 알려주고 있다.불과 한 달 전만 해도 이곳에서는 형형색색의 연꽃들이 그 찬연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나는 청, 백, 적, 황의 수려한 색감과 청아하면서도 고결함을 느낄 때마다 연꽃이 지니고 있는 네 가지 덕을 생각하곤 했다. 그러면서 한 편으로는 불교 수
두부유병록아무래도 누군가의 살을 만지는 느낌따듯한 살갗 안쪽으로 심장이 두근거리고 피가 흐르는 것 같다 곧 깊은 잠에서 깨어날 것 같다순간의 촉감으로 사라진 시간을 복원할 수 있을 것 같은데두부는 식어간다이미 여러 차례 죽음을 경험한 것처럼 차분하게차가워지는 가슴에 얹었던 손으로, 이미 견고해진 몸을 붙잡고 흔들던 손으로두부를 만진다지금은 없는 시간의 마지막을, 전해지지 않는 온기를 만져보는 것이다점점 사이가 멀어진다두부를 오래 만지면피가 식어가고 숨소리가 고요해지는 느낌, 곧 떠날 영혼의 머뭇거림에 손을 얹는 느낌이것은 지독한 감
요즈음 우리는 뉴스나 매스컴을 통하여 접하는 용어들을 보면서 상당히 혼란스러운 시대에 살고 있음을 절실하게 느끼고 있다. 예를 들면 나와 너, 남자와 여자, 여당과 야당, 진보와 보수, 부자와 빈자, 강자와 약자 등의 단어들이다.상대라는 것은 서로를 마주보면서 서로가 다름을 인정하는 가운데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중간 지점, 또는 더욱 수승한 사상인 중도(中道)를 이루어 내는 소중한 대상을 말하는 개념이다.만약에 이 넓은 세상에 나 홀로 존재하고 상대가 없다면 그 얼마나 외롭고 쓸쓸할 것인가? 결국 그 개인은 고독함을 견디지 못하고
우리 사회에서 영웅에 대한 비판은 일종의 넘사벽이다.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에는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대표적 예이다. 또 하나는 일제 강점으로부터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순국선열들이다.최근 사회적 통념을 단숨에 뛰어넘은 사건이 발생했다. 영웅에 대해 수준이 낮은 이념의 잣대까지 들이댔다. 현 정권에서 최근 독립군의 홍범도 장군이 레닌 공산당 가입을 문제 삼아 우리 역사와 기억 속에서 지우려 하고 있다.1920년 6월 중국 만주 봉오동전투를 승리로 이끌고, 그해 10월 백야 김좌진 장군과 연합작전으로 청산리대첩을
취임 100일째를 향해 가는 한국불교태고종 제28대 총무원장 상진 스님의 발길이 활발발하다. 특히 태고종의 외부 위상 정립과 외연확장을 위한 발길은 더더욱 활발발하다. 그 가운데서도 눈에 띄는 것은 지난 9월 2일 청주 백운사에서 태고종 총무원이 주최하고 충북교구종무원이 주관한 오송궁평지하차도 희생자 합동위령재(49재)다.지난 7월 15일 오송궁평지하차도 침수사고로 14명의 고귀한 생명이 희생되자 태고종은 종단 차원에서 이들 영가들과 유가족들을 위해 49재를 봉행하기로 하고 이 같은 방침에 따라 관할 교구인 충북교구종무원에서 매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