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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른쪽 볼에우물 하나 파여 있다물웅덩이 같다멍울 같다무지개 같다목마른 날은목마르게 그리운 날은저 우물에서물 한 두레박 길어 마시고 싶다시원한 물 한 두레박으로뜨거운 가슴식히고 싶다단풍나무 한 가지 꺾어그 속에 담그고 싶다우물에 비친 내 단풍 얼굴들여다보고 싶다잠기고 싶다그녀의 오른쪽 볼 한가운데우물 하나 파여 있다깊은우물 하나 파여 있다첫 같은 우물 하나파여 있다-착시(錯視)일까? 불상(佛像) 앞에 서면 나는 언제나 부처님 볼에 새겨진 우물을 본다. 친근하고 조용한 미소 속에 깃든 볼우물이 나를 자애(慈愛)로 감싸주시는 것을 본다.
기획연재
이 벽
2020.10.20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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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회에서 다루었던 승잔법 제 10조 파승위간계(破僧違諫戒)는 승가를 분열시키려는 비구가 최대 세 번의 충고를 듣고도 이를 받아들여서 뉘우치지 않고 승가 분열 행위를 계속했을 경우 승잔법이 성립된다. 승잔법 제 11조는 조파승위간계(助破僧違諫戒)로 승가의 분열을 도왔을 때 세 번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승가 분열을 돕는다면 승잔법이 적용된다.그렇다면 승가를 분열시킨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승가 분열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승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승가를 구성할 수 있는 비구의 수는 최소 4인 이상으로 화합을 그 근본으로 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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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능 스님
2020.10.20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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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본능(death instinct)을 제거하고 영원한 삶을 누리는 것이 열반의 일반적 해석이다. 따라서 선사들, '깨친 이'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영원한 삶'의 출발이다. 다시 말해 선사들의 죽음은 사바세계의 육신을 벗고 불멸법신(不滅法身)을 구가하는 축제다.그렇지만 세속의 눈으로 보자면 선사들의 죽음은 범상하지 않다. 분명 축제긴 한데 선사들에겐 이마저도 거추장스럽다. 평소 밥 먹고 차 마시며 오줌 누듯 죽음을 그렇게 맞아들인다. 선리(禪理)를 체득한 선사일수록 죽음을 맞는 자세가 평범하기 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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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도
2020.09.28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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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시집을 읽다가‘휜 것’을 ‘흰 것’으로 읽었다몇 번을 거듭 읽었지만‘휜 것’은 여전히 ‘흰 것’이었다도무지 이해가 안 돼어둔 머릴 탓하며잠시 먼 산 바라보았다가 다시 읽었다비로소 ‘흰 것’이 ‘휜 것’으로 보였다비로소 시가 환해졌다답답함이 길이 되었다그 길 걸으며말〔言〕에도끗발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한 끗발 차이인데도‘휜 것’과 ‘흰 것’의 차이는밤과 낮같은 차이였다죄와 용서 같은 차이였다그 차이 앞에서 나는 서늘했다그녀처럼 서늘했다내 삶의 내용이 그러지 않았을까내 삶의 주제가 그러하지 않았을까유리창과 파편죽창과 꽃깡통과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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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벽
2020.09.28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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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춰 서서 하는 명상 즉, 주선(住禪)에 행선을 하다가 “가려움, 통증, 뻐근함, 미움, 기쁨, 행복감, 외부의 큰 소리, 반복적인 생각, ……” 등 어떤 강한 현상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얼굴에서 강한 가려움이 발생할 경우, 멈춰 서서 그 가려움이라는 현상에 의식이 완전히 달라붙도록 주시해야 합니다. “가려움·가려움·가려움·가려움·가려움”이라고 촘촘히 명칭을 붙이면서 알아차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것을 알아차림 합니다. 가려움이 점점 강해지는지 약해지는지, 가려움이 약해지면 어떻게 약해지는지, 가려움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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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마 스님
2020.09.28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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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잔법의 10조와 11조는 승가를 분열시키는 파승(破僧)과 관련이 있다. 이 조문들은 데와닷따-한역으로는 제바달다(提婆達多)-와 그에 동조했던 4명의 비구들이 인연담에 등장한다.데와닷따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촌 동생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승가를 자신에게 물려줄 것을 부처님께 요구하였으나 거절당하자 승가를 분열시킬 목적으로 오사(五事)를 요구했다. 오사는 12두타행(頭陀行) 중의 하나로 고행에 가까운 수행이라 부처님의 승단에서는 이 수행법을 정식으로 채택하지는 않았다.오사는 다음과 같다.첫 번째는 진형수아란야주(盡形壽阿蘭若住)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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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능 스님
2020.09.28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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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거시라고 해서 모두 ‘깨침’을 바탕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중국의 시성(詩聖)이라고 일컬어지는 이백(李白 706∼762)의 작품을 감상해보자. 이백은 두보와 함께 문학의 양대 거성으로 불렸다. 두보가 몇 번의 퇴고를 거쳐 정제된 시를 내놓는 데 비해 이백은 천재적 재능으로 몇 줄 내려 쓰면 그것이 두보에 필적하는 명시였다고 한다. 이 시는 그가 산속에 은거할 때 지은 것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진 유명한 작품이다.왜 산에 사느냐고 묻는 그 말에대답대신 웃는 심정, 이리도 넉넉하네복사꽃 물에 흘러 아득히 가니인간세상 아니어라 별유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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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도
2020.09.08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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잎 진 당산나무 꼭대기에외딴집 한 채 걸려 있다무엇으로 동여맸는지아무리 바람 불어도 끄떡없다대들보 같은아버지의 삶 같다고독 같다저 안에 누가 살고 있는지종언(終焉) 같다과거는 왜 쓴가과거에는 왜 쓴맛이 더 많은가과거를 생각하면 왜 쓴맛들이 먼저떠오르는가까치집 같은 삶텅 빈 흉가의 삶잎 진 당산나무 꼭대기에외딴집 한 채 걸려 있다고향집 한 채 걸려 있다종말처럼 걸려 있다고향을 떠난 지도 어언 40년이 넘었다. 아무리 떠나도 고향은 고향이다. 고향은 왜 지워지지 않는 걸까. 유년의 아픔은 왜 내 기억의 상처를 자꾸 덧내는 것일까.동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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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벽
2020.09.0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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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장마가 한창인 어느 날, 내 법호가 익숙하지 않아 여전히 일공 스님으로 나를 부르는 한 도반에게 전화가 왔다. 내가 쓴 글을 잘 보고 있다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빨리어도 조금씩 삽입을 해서 글을 쓰면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 나는 단박에 거절했다. 솔직히 중앙승가대학교 역경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다니면서 6년 동안 산스끄리뜨어와 빨리어를 배웠고 수석과 차석을 놓치지 않으며 제법 높은 학점을 받고 졸업을 했다. 스리랑카로 유학 가서도 빨리어 수업을 들었지만 산스끄리뜨어와 빨리어도 외국어이기 때문에 계속 사용하지 않으면 영어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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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능 스님
2020.09.08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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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시는 산에 사는 이의 유유자적함을 기교와 꾸밈없이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는 대표적인 산거시다.한가로운 이 삶이여 시비에 오를 일 없거니한 가지 향을 사르며 그 향기에 취하네졸다 깨면 차가 있고 배고프면 밥 있나니걸으면서 물을 보고 앉아선 구름을 보네.閑居無事可評論 一炷淸香自得聞睡起有茶飢有飯 行看流水坐看雲중국 원대(元代)의 요암 청욕(了菴淸欲, 1288∼1363)선사가 지은 '산거'란 제목의 시다. 절강성 대주(臺州) 임해(臨海) 사람으로, 속성(俗姓)은 주(朱)씨고, 자는 요암(了庵)이며 호는 남당(南堂)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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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군도
2020.08.27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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