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정론』이나 『유석질의론』이 보여주는 삼교융합의 궁색함은 바로 조선전기의 불교계가 처한 딱한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그렇지만 좀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삼교융합에 내포된 문제의식은 선교융합을 확장 보강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도 볼 수 있다. 선교융합이 수행론의 범주에서 대두된 것이라면 삼교융합은 구원론의 범주까지 포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선중기에 이르면 전기의 조악한 형태의 삼교융합이 불교계에 더욱 체화되었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청허당 휴정(淸虛堂 休靜, 1520~1604)의 『삼가귀감』이다. 그는, “
이번 호에 살펴볼 계율은 부정법(不定法)이다. 부정법은 비구가 행한 행위에 대해 어떤 계율을 적용할지 아직 정하지 못한 경우가 이에 해당된다. 그러나 계율 적용이 미확정이라 해서 죄가 없는 것은 아니다.부정법의 조항은 단 두 개다. 첫째는 병처부정(屛處不定)이고 둘째는 노처부정(露處不定)이다. ‘병처’는 밀폐된 공간을 말하고 ‘노처’는 오픈되어있는 공간을 말한다. 병처가 밀폐된 공간이라고는 하나 남녀가 은밀히 앉아 음행을 할 수 있는 장소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이 두 조문을 만들게 된 주인공은 여인과 관련된 조문에 많이 등
復次 須菩堤야 隋說是經하대 乃至 四句偈等하면 當知此處는 一切世間天人阿修羅 皆應供養호대 如佛塔廟어늘 何況有人이 盡能受持讀誦이야다녀 須菩堤야 當知是人은 成就最上第一稀有之法이니 若是經典所在之處는 卽爲有佛과 若尊重弟子니라.세존 하나만 더 덧붙여 말해야겠구나! 수보리야! 앞의 인연따라 금강경 몇 구절만이라도 전한다면 말이다. 바로 그 곳[회상]은 온 세계의 천인·인간·아수라 모두가 과거 부처님들연등불 등의 전불의 사리를 모신 부도탑처럼 공경하게 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수보리야! 하물며 어떤 사람이 이 가르침 몇구절이 아니라 전부 통째로 다
Ⅰ. 들어가는 말이 논문은 한국불교의 특징으로 흔히 거론되는 선교융합의 기조가 어떤 과정을 거치며 한국불교의 특징 내지는 범형(範型)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그 과정을 되짚어 보기 위한 것이다. 한국인은 비빔밥을 좋아해서 종교도 비빔밥처럼 한다는 어느 외국인 불교학자의 농담끼짙은 통찰이 있기도 했지만, 선교융합의 기조가 한국불교에서 범형내지는 전통으로 굳어지기까지의 과정이 단순하지는 않았다. 이 연구는 선교융합으로 대표되는 한국불교의 정체성을 규명하는 과정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동아시아 역사 속에서 선(禪)이 등장한 이후부터 그
◎ 수보리의 상世尊하 佛說 我得無諍三昧人中에 最爲第一이라하시니 是 第一離欲阿羅漢이언만 我 不作是念하대 我是離欲阿羅漢이라하나이다. 世尊하 我 若作是念호대 我得阿羅漢道라하면 世尊이 卽不說須菩堤 是樂阿蘭那行者라하시려니와 以 須菩堤 實無所行일새 而名 須菩堤 是樂阿蘭那行이라하시나이다.수보리 [드디어 조금 깨친 바가 있어 수보리가 세번째로 세존께서 묻지도 않았는데 기분이 좋아서 한마디 더 합니다.]세존이시여! 부처님께서는 제가 다퉈야 할 일이 없어져야 생기는 삼매[무쟁삼매[無諍三昧]]를 얻은 사람들 중에 제일이라 하셨습니다. 이는 ‘욕심을 여
전 호에서 살펴 본 수산 성념의 임종게는 훗날 보본 혜원(報本慧元, 1037∼1091)과 부용 도개(芙蓉道楷, 1043∼1118)에서도 비슷한 류의 열반시를 남기게 하고 있다. 먼저 보본 혜원의 임종게를 살펴본다. 보본 혜원은 광동성에서 태어났다. 19세에 출가하여 각지를 편력하다가 황룡 혜남(黃龍慧南, 1002-1069)에 머물러 법을 구했다. 그는 고고하고 강경한 성품으로 풍모가 몹시 드높고 태도가 단정하였다고 한다. 스님이 동오(東吳) 땅에 불법을 펴자 귀의하는 자가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어느 날 선사가 대중들이 먹을 것을
부처님의 제자로 출가한 소나 스님은 공동묘지 근처의 수행처인 ‘차가운 숲〔寒林〕’ 시따와나(sitavana)에서 수행하였습니다. 그는 남보다 엄격하게 그리고 열심히 수행과 정진을 했습니다. 하지만 욕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소나 스님은 오랜 수행에도 불구하고 취착을 없애지 못하고, 번뇌로부터 해탈하지 못하는 것을 고민하다가, 차라리 세속으로 돌아가서 재물을 즐기고, 보시 공덕이나 닦아야겠다고 결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붓다께서는 이러한 마음을 아시고 소나 스님 앞에 나타나셔서 말씀하셨습니다. “소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
나만의 행복했던 시간들을 찾아 가본다.승려가 되기 위해 신새벽을 열어가는 행자님들의 발걸음.지금 후회 없는 출가의 길을 걷고 있겠지.아침예불과 저녁예불 시간에 108대참회를 겸한 3백 배를 하며 행복해했던 참선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도량석을 하는 소리가 들린다.염불을 하고 경을 외우던 행자님들의 모습, 수행자로 살아갈 틀을 하나하나 다져가던 그들의 모습이 문득 죽비소리가 되어 나를 때린다.하지만 나는 행자가 아니다. 그렇지만 나도 행자님들처럼 생활 속에서 스스로 소임을 다하며 살아야하지 않겠냐고, 어떤 상황에 부딪치더라도
삶이 수치스러울 땐선암사 뒷간에 가자선암사 뒷간에 가 쪼그리고 앉아서판자 틈으로먼 산 바라보자먼 나무 바라보자찬바람 맞아보자판자 틈으로 새어든 햇살이어떻게내 살결로 스며드는지 느껴보자삶이 서러울 땐선암사 매화꽃 보러 가자무우전(無憂殿) 담장길 매화나무아래 앉아서홍매 백매 사이로희고 붉게 물든새소리 들어보자홍매 백매 사이로새들이희고 붉게 꽃잎 따먹는 소리들어보자희고 붉은 꽃잎이어떻게근심 없이 떨어지는지 바라보자삶이 부끄러울 땐삶이 서러울 땐선암사 가자선암사 가보자선암사 가서뒷간에도 쪼그려 앉아보고매화나무 아래도 앉아보고만세루 옆에서시
승잔법 제 12조는 악성거승위간계(惡性拒僧違諫戒)이다. 글자 그대로 의미는 비구가 악한 성품이어서 승가의 충고를 거부한다는 뜻이다. 이 조항은 석가모니께서 출가할 당시 마부였던 찬나비구가 인연담의 주인공이다. 찬나비구는 갖가지 여법하지 못한 행동으로 비구들의 충고를 받았으나 자신이 세존과 같은 석가족임을 내세워 다른 비구들의 충고를 무시하였다. 승가 내에서는 세존께서 설하신 율에 의하여 생활하는 것이 당연하지만 여법하지 못한 행동을 저지르고 난 후 고의로 혹은 자신이 미처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에 나쁜 말로써 자만심을 드러내며 승가의
철저한 지계정신으로 선암사를 비롯하여 한국불교 대중들로부터 존경받던 경운은 78세가 되던 1929년 1월 재기한 조선불교청년회가 한국불교를 통일할 수 있는 기관을 설립하려고 개최한 조선불교선교양종승려대회에서 교정으로 선출되었다.이 대회는 재기한 조선불교청년회가 당시 30본산이 중심이 되어 설립한 재단법인 조선불교중앙교무원은 친일적인 경향이 강했으므로 한국불교의 자주성을 지향한 불교청년들로서는 교무원을 대표로 인정하기 어려웠다. 그런 분위기에서 일제의 통제를 벗어나 천 개에 이르는 한국사찰을 통일시킬 기관의 필요가 날로 간절해졌다.
선사들은 대개 자기의 '갈 날'을 미리 알고 있다고 한다. 다음의 임종게는 후대 열반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열반시의 한 전형으로 자리 잡고 있는 대표적인 시다.금년에 나의 나이 예순 일곱늙고 병든 몸이 연 따라 살아가되금년에 내년의 일 기억해두라내년되면 오늘의 일 기억나리라.今年六十七 老病隨緣且遣日今年記取來年事 來年記著今朝日임제종의 대종사 수산성념(首山省念, 926∼993)이 임종을 1년 앞둔 12월 4일 대중을 모아놓고 설한 게송이다. 내년이 되면 오늘의 일이 생각날 것이라니 대체 무슨 뜻일까 모두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잃어버린 동요를 불러본다. 저 스님도 지금 모래 위에 앉아서 그 동요를 부르고 있지 않을까?이젠 나 스스로 망각하고 싶다, 현실을. 어마어마한 일들이 나에게 닥쳐왔는데 이젠 그저 어제와 조금 다른 오늘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담담해진다.아직도 나에겐 버려야 할 것들이 많다. 저 파도에 쓸려 보내고 싶은 것들이 많다. 가을하늘도 흘러가고 구름도 흘러가고
처음 위빳사나를 하는 경우 주선에 있어서, ‘섬’이라는 동작에 대한 강한 의도와 그 후에 일어나는 여러 마음현상을 알아차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숙련된 수행자는 서는 의도와 동작이 일치하고, 주시하는 대상과 주시하는 마음이 일치하여 다른 마음이 틈을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다양한 마음현상이 없습니다. 그러나 초보자의 경우 대부분 다양한 마음현상이 있습니다. 그것을 알아차림 하자마자 마음은 현재의 관찰대상인 섬이라는 발바닥에 돌아오게 됩니다.“섬섬섬섬섬섬” 하면서 발바닥을 주시합니다. 그리고 다른 강한 현상(어깨의 강한 긴장, 호흡
오른쪽 볼에우물 하나 파여 있다물웅덩이 같다멍울 같다무지개 같다목마른 날은목마르게 그리운 날은저 우물에서물 한 두레박 길어 마시고 싶다시원한 물 한 두레박으로뜨거운 가슴식히고 싶다단풍나무 한 가지 꺾어그 속에 담그고 싶다우물에 비친 내 단풍 얼굴들여다보고 싶다잠기고 싶다그녀의 오른쪽 볼 한가운데우물 하나 파여 있다깊은우물 하나 파여 있다첫 같은 우물 하나파여 있다-착시(錯視)일까? 불상(佛像) 앞에 서면 나는 언제나 부처님 볼에 새겨진 우물을 본다. 친근하고 조용한 미소 속에 깃든 볼우물이 나를 자애(慈愛)로 감싸주시는 것을 본다.
지난 회에서 다루었던 승잔법 제 10조 파승위간계(破僧違諫戒)는 승가를 분열시키려는 비구가 최대 세 번의 충고를 듣고도 이를 받아들여서 뉘우치지 않고 승가 분열 행위를 계속했을 경우 승잔법이 성립된다. 승잔법 제 11조는 조파승위간계(助破僧違諫戒)로 승가의 분열을 도왔을 때 세 번의 충고에도 불구하고 승가 분열을 돕는다면 승잔법이 적용된다.그렇다면 승가를 분열시킨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승가 분열을 알기 위해서는 먼저 승가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승가를 구성할 수 있는 비구의 수는 최소 4인 이상으로 화합을 그 근본으로 삼
했다는 상이 없는 법세존 須菩堤야 於意云何오. 如來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耶아. 如來 有所說法耶아.수보리야! 여래께서 ‘가장 세고 최고로 좋지만 정말 얻기 어렵다는 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거나 아니 그보다는 그 아뇩다라삼먁삼보리법이 있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고 여기느냐?수보리 須菩堤 言하사대 如我解 佛所說義하야는 無有定法名阿耨多羅三藐三菩提며 亦無有定法如來可說이니 何以故오. 如來 所說法은 皆 不可取며 不可說이며 非法이며 非非法이니 所以者何오. 一切賢聖이 皆以無爲法으로 而有差別이니이다.제가 부처님 말씀의 큰 뜻을 헤아려 보건대,
죽음의 본능(death instinct)을 제거하고 영원한 삶을 누리는 것이 열반의 일반적 해석이다. 따라서 선사들, '깨친 이'들에게 있어서 죽음은 '영원한 삶'의 출발이다. 다시 말해 선사들의 죽음은 사바세계의 육신을 벗고 불멸법신(不滅法身)을 구가하는 축제다.그렇지만 세속의 눈으로 보자면 선사들의 죽음은 범상하지 않다. 분명 축제긴 한데 선사들에겐 이마저도 거추장스럽다. 평소 밥 먹고 차 마시며 오줌 누듯 죽음을 그렇게 맞아들인다. 선리(禪理)를 체득한 선사일수록 죽음을 맞는 자세가 평범하기 이를
어느 날 시집을 읽다가‘휜 것’을 ‘흰 것’으로 읽었다몇 번을 거듭 읽었지만‘휜 것’은 여전히 ‘흰 것’이었다도무지 이해가 안 돼어둔 머릴 탓하며잠시 먼 산 바라보았다가 다시 읽었다비로소 ‘흰 것’이 ‘휜 것’으로 보였다비로소 시가 환해졌다답답함이 길이 되었다그 길 걸으며말〔言〕에도끗발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한 끗발 차이인데도‘휜 것’과 ‘흰 것’의 차이는밤과 낮같은 차이였다죄와 용서 같은 차이였다그 차이 앞에서 나는 서늘했다그녀처럼 서늘했다내 삶의 내용이 그러지 않았을까내 삶의 주제가 그러하지 않았을까유리창과 파편죽창과 꽃깡통과 무
성큼,다가온 가을하늘처럼내게도노년이다가왔다.멀리 있어서나와는전혀 관계없을 줄 알았다.그런데,벌써인생 가을이시작되었다.하지만높고 푸른 가을하늘처럼맑고 싱그러운 가을하늘처럼아름다운 고향하늘처럼그렇게 살고 싶다.가을하늘이포근하다.빛도 포근하다.마음도포근하다.-형정숙(전 문화재청 헤리티지 사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