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설법하시던영취산(靈鷲山)진달래꽃 같다.미당의 「무등을 보며」처럼저 봉우리들을 보노라니가난도 한낱남루에 지나지 않는다는생각이 든다.그 자존감이,부처님의 설법이,지금 무릎 아래진달래꽃을 키우고 있다.나를 키우고 있다.사람들은 왜산봉우리를 오르는가.부처님은 왜진달래꽃 핀 산정에서설법을 하셨는가.인류의 자존을 위해서다.인간의 사랑을 위해서다.인간의 행복을 위해서다.이 산봉우리와 함께이 진달래꽃과 함께나는 지금 벅차게자존하고 있다.세상을사랑하고 있다.-형정숙 전 문화재청 헤리티지 사진기자
-달마의 심인전법달마가 법을 전할 때의 기록은 많은 점을 시사한다. 『경덕전등록(景德傳燈錄)』에 전하는 기록을 살펴보자.9년이 지나 서쪽 천축으로 돌아가고자 문인들에게 명하였다.“때가 되었으니, 너희들이 각자 얻은 바를 말해보라.”그때 문인 도부(道副)가 대답했다.“제가 본 바로는 문자에 집착하지도 않고 문자를 떠나지도 않고서 도의 작용을 삼으려 합니다.”“너는 나의 가죽을 얻었다.”다음으로 니총지(尼總持)가 대답했다.“제가 이해한 바로는 경희(慶喜) 보살이 아축불국을 본 것처럼 한 번 보고 다시는 보지 않았습니다.”“너는 나의 살
선암사 선암매(仙巖梅)는올봄에도 가장 먼저 폈다.봄이 오면선암사 선암매는왜 가장 먼저 펼까.겨울 때문일까.더 더는 못 견딜사랑 때문일까.알싸하다.알큰하다.새악시 같다.님 같다.덮어버릴 수 없다.저 붉은 향기,저 붉은 마중물,나는 왜 선암매 앞에만 서면붉어질까.외로워질까.그리워질까.내 가슴속 저 붉은홍매화 송이들.-전 문화재청 헤리티지 사진기자
길 차고 바람 서늘하다그 끝에색신(色身) 하나 무릎 포개고 앉아 있다귀 닫고입틀어막았는가아무리 불러도응답이 없다무념인가무상인가아무리 소리쳐도돌아보지 않는다저 색신 나와 같아서나와 닮아서나는 서러워진다저 차고 뻣뻣한 것을저 냉하고 무딘 것을나는 미륵이라 이름 짓는다돌부처라 중얼거린다길 차고 바람 서늘하다숲 적막하고돌집 포근하다그 길 끝에귀 닫고입 틀어 문색신 하나 앉아 있다앉아서미륵으로 재생하고 있다 어릴 적, 절골에 자주 놀러갔다. 골짜기 끝에 절이 하나 있어, 우리들은 절골이라고 불렀다.절골엔 돌이 많았다. 어떤 돌덩이엔 부처님이
김은호 위원장과의 차담은 늘 나라를 걱정하는 거시론적인 차이야기로 시작된다. 차를 마시면서 무슨 ‘나라’걱정이냐고 되묻겠지만, 김 위원장에게 ‘차’는 나라를 발전시키고 ‘국민’을 건강하게 만드는 물질문화의 상징이기 때문이다.이런 이야기를 전하는 김은호 위원장은 50대말에 이어지는 폭음으로 간 기능을 손상한 적이 있다. 건강이 심대한 위기에 처했을 때, 한약보다는 보이차가 더 맞을 것 같다는 친구의 조언을 들었다. 오장육부를 튼튼하게 할 기초대사의 획기적 전환을 할 수 있는 물질이 차이며 이것이 간 손상을 회복시킬 수 있는 지름길이라
바일제법 제62조는 음충수계(飮蟲水戒)로서 한자 그대로 풀이를 하자면 생물(벌레)이 있는 물을 마시면 안 된다는 뜻이지만 빨리어의 의미 등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물을 마시는 행위뿐만 아니라 발우를 씻는다던지 손과 발을 씻을 때도 본 조문이 적용된다. 즉 비구가 생물이 있음을 알면서도 사용한다면 바일제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본 조문을 보면 발우공양 때 염송하는 정식게(淨食偈)가 생각이 난다.오관일적수 (吾觀一滴水) 내가 한 방울의 물을 관찰해보니팔만사천충 (八萬四千蟲) 팔만사천의 생물이 있구나약불염차주 (若不念此呪) 만약 이 주문을
-5조 홍인의 전법게사랑으로 씨를 뿌리니사랑을 받을 땅이 있어 과실이 난다사랑이 없으면 씨 또한 없어불성도 태어남도 없으리라.有性來下種 因地果還生無情亦無種 無性也無生이 게송은 제5조 홍인대사가 6조 혜능대사에게 내린 전법게다. 스승 도신이 홍인에게 내린 전법게도 이와 비슷하다. “꽃의 종자에 생의 성(性)이 있고 땅을 인하여 꽃은 생생한다” 라는 전법게와 함께 달마 이래 전해 내려오는 전법의 의발을 홍인에게 주었다. 이 전법게 또한 3조 승찬이 도신에게 준 전법게 “꽃씨는 땅을 인하고 땅을 의지하여 꽃을 피운다 하나 만일 사람이 씨
바일제법 제58조 불괴색계(不壞色戒)의 조문은 다음과 같다.“새 옷을 얻은 비구는 세 가지 괴색 중 어떠한 한 가지의 괴색을 취해야 한다. 청색(靑色), 혹은 니색(泥色, 진흙색), 혹은 흑색(黑色)이다. 만약 비구가 세 가지 괴색 중 어떤 한 가지를 취하지 아니하고 새 옷을 사용한다면 바일제이다.”조문만 봤을 때는 부처님께서 왜 새 옷에 세 가지 괴색 중 하나를 사용하라고 하셨는지 알기 어려워 ‘혹시 새 옷에 대한 탐착을 경계하셨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빨리어 율장의 인연담을 보면 현실적인 상황이 드러난다. 한때 도적들
우리 차인들은 신라 이래로 우리와 깊은 교류를 해 온 일본의 차문화 역시 그 원조가 우리 한국이라는 자부심을 가져야 할 필요가 있다. 용장사로 찾아온 준 화상을 만난, 우리 차문화의 중시조격인 매월당 김시습이 일본의 대표적인 차문화인 와비차 즉 초암차에 영향을 주었다는 견해도 있다. 백제뿐만 아니라 통일신라와도 깊은 교류를 해 온 일본에게 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준 곳은 중국이 아니라 우리라는 것은 당연한 이야기이다. 검토의 여지가 있지만 여기서 차문화만 예외는 아닐 듯싶다.그렇다고 우리가 차문화에서 일본의 선조에 해당하며, 일본보다
경주 아사가 차관의 이름을 지어준 소천 박영호 선생. 그 기인이 차회에서 늘 한수 접는 차인이 있다. 글로벌 자가용내장재 전문회사인 동진이공주식회사의 대표이사 겸 회장인 김은호 씨(77)로 '경주세계차문화축제'의 조직위원장을 맡고 있는 분이다.경주 세계차 문화 축제는 경주를 찾는 국내외 관광객을 대상으로 차 문화 참여와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천년고도 경주의 아름다운 가을 하늘과 역사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소중한 문화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면서, 한국 차 문화의 역사와 그 특징을 부각시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특히 신라의 도
-전법게(傳法偈)‧시법시(示法詩)“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수많은 대중이 운집한 가운데 연꽃을 들어보였다. 이때 대중들은 모두 조용하였고 오직 가섭 존자만이 미소를 지었다. 부처님이 말씀하시길 ‘나에게 정법안장(正法眼藏) 열반묘심(涅槃妙心) 실상무상(實相無相)의 미묘한 법문이 있으니 불입문자 교외별전을 모두 마하가섭에게 부촉하노라’ 하셨다.”‘염화시중의 미소’로 일컬어지는 이 유명한 일화는 부처님이 무상대도를 성취한 이래 전법과 교화를 펼치시기 40여년. 교단이 바로 정립되고 출 재가를 망라한 제자들이 수 만 명에 이르렀다. 부처님의
바일제법 제54조는 불수간계(不受諫戒)이다. 먼저 인연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부처님께서 출가할 때 같이 성을 나왔던 마부 찬나(한역으로는 찬타 혹은 천타)가 비구가 되고 난 후 가끔 법다운 행위를 하지 못하였던 모양이다. 그런 행위를 비구들이 충고하였지만 찬나 비구는 부처님의 출가를 도왔다고 교만하여 불공경하고 그 충고를 무시하기 일쑤였다. 본 조항은 이 일이 부처님께 알려지고 난 후 제정되었다.현대 승가에서도 이런 일이 분명히 있고 재가자들 사이에도 비일비재하게 있을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혹은 스님이 높고 대단한 위치
「만복사저포기」의 무대인 남원 보련산 아래 보련사 옛터에 매월당이라는 초가집들이 들어 서 있다. 이 초가집의 지붕 즉 이엉을 직접 잇는 사람을 요즘은 보기도 어렵고 구하기는 더 어렵다. 새마을사업 이전에는 흔한 집이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변했다. 이젠 한번 고쳐 올리는데 수천만 원이 드는 까닭에 ‘초가집’에 대한 커다란 애착이 없이는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운 가옥형태가 되었다.이엉이란 짚, 풀잎, 억새 등으로 엮어 만든 지붕 재료로, 강진 다산 초당에도 없는 이엉이 여기 바로 남원 매월당에 있다. 황토 한옥에 억새지붕을 얹은 초당인
지난 회에 이어서 음주계를 조금 더 살펴보기로 한다. 빨리어 율장에서는 술을 수라(surā)와 메라야(meraya)로 나누고 있는데 수라란 곡물을 효모로 이용하여 만든 술이고 메라야는 주로 꽃이나 과일 등을 이용하여 만든 술이다.한국 승가는 음주에 대해 상당히 관대한 편이다. 이는 역대 선,조사 스님들의 음주와 연관된 일화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 한 예로 경허 스님과 만공 스님의 일화가 있다. 경허 스님은 제자인 만공 스님에게 단청 불사를 하기 위해 시주를 받으러 가자고 해놓곤 시줏돈으로 주막에서 술을 마셔 버렸다. 불만을 토
우리가 경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불상과 불경은 지금의 파키스탄 간다라로부터 384년 처음 전래됐다. 간다라지역은 기원전 500년과 기원후 500년 동안 동서양의 문화문명을 융합시켜 황금기를 구가했던 제국이었다. 그 곳에서 처음 만들어진 불상과 불경은 동서양 문화문명을 함축적으로 상징했다. 불상과 대승불교는 이민족, 이교도를 통합하고 체제 안정의 안전판 역할의 구심점이었다. 국제질서의 도모도 불교라는 사상과 종교를 앞세워 체제 안정과 민심 통합의 수단으로 이용됐다. 때문에 간다라와 간다라 불교의 이해 없이는 한국불교를 알 수 없다.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지은 『금오신화』안에 「만복사저포기」라는 소설이 있다. 최초의 한문소설이라고 하는데, 최초 치고는 구성도 탄탄하고 매우 재미있다. 매월당이 그 전에도 몇 편 습작을 썼든가 그 전에 다른 분의 좋은 소설도 읽었던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래서 잠정적인 ‘최초’가 아닐까도 싶다. 그러니 ‘최초’라기 보다는 ‘최고’ 즉 남은 것 가운데 최초라는 수식어가 더 적절할 듯싶다.이런 논쟁거리로 글을 시작하는 것은 우리 차계에서 ‘최초’라는 것이 사실 대부분 ‘최고’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지 않나 싶어서이다. 첫
대승불교와 불상 등 간다라 문화문명을 대한민국 고대사에 전한 간다라 출신 마라난타 스님의 모국 파키스탄과 대한민국간 큰 의미를 담은 회향식이 최근 있었다. 대한민국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문화재청은 파키스탄 문화유산청과 문화유산 공적개발원조(ODA) 양해각서를 지난 10월 21일 체결했기 때문이다. 회향식은 대한민국이 파키스탄 북부지역 간다라 유적 정비·활용과 기록화 사업을 5년간 지원한다는 각서이다. 이를 위해 400만 달러(47억원 규모)를 투입한다, 마라난타 스님이 불교와 불상이라는 불씨를 전한 1637년 만에 고향땅에서 그 업적
바일제법 제47조 과수사월약청계(過受四月藥請戒)는 우안거 기간에 재가자로부터 공양받는 약에 관한 조문으로 양이나 기간의 한도를 초과하여 약을 받으면 안 된다는 조문이다. 인연담을 보면, 재가자인 마하나마는 비가 많이 내리는 우안거 4개월 동안 비구들의 건강을 위하여 승가에 필요한 약을 보시하기로 하였는데 6군비구는 마하나마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았기에 고의로 많은 양의 약을 구해달라고 요청했다. 이에 마하나마는 지금 바로 구할 수 없으니 하루만 시간을 달라고 했으나 6군비구는 ‘약을 줄 마음도 없으면서 약을 보시하기로 한 것 아니냐
바일제법 제41조는 여외도녀식계(與外道女食戒)로 조문은 다음과 같다.‘어떠한 비구라도 나형외도(裸形外道)나 혹은 편행외도(遍行外道)의 남자 혹은 편행외도의 여인에게 자기 손으로 담식 혹은 작식을 주면 바일제이다.’여기서 나형외도는 나체 수행자를 말하고 편행외도는 집이나 정사를 가지지 않고 두루 떠돌아다니는 수행자를 말한다. 그런 외도 사문들에게 직접 음식을 주면 바일제라는 뜻으로 별로 어려운 부분은 없다.본 조문은 아난 존자가 편행외도 여인에게 실수로 떡을 2개 주어 비난받았던 것이 원인이 되어 제정되었는데 이 인연담에는 외도 사문
쿠샨왕조 카니시카왕 통치시절인 간다라 지역에서 이민족과 이교도들을 불상을 통해 화합과 통합을 도모하는데 불상이 처음 등장했다는 게 학계의 추정이다. 조로아스터교 신도였던 카니시카 왕이 불교로 개종하면서 본인 스스로 뿐만 아니라 이민족과 이교도 연합체 국가인 쿠샨왕조의 사상과 종교를 하나로 통합하려는 수단으로 그리스 조각 양식을 빌어 불상을 조성했다는 설이다. 초기 불교시절에는 부처님을 인간의 모습으로 형상화하지 않은 불상불가론(佛像不可論)이었고, 부처님 열반후 500년 동안이나 불상이 없었다가 카니시카왕 때 처음으로 불상이 등장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