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구니 바일제 불공계 제54조 수청불만족식계(受請不滿足食戒)는 비구니가 재가자의 공양청을 받아 그 집에서 음식을 충분히 먹지 않고 다른 재가자의 집에 가서 음식을 다시 먹으면 안 된다는 계율로 조문은 다음과 같다.“어떠한 비구니라 하더라도 [먼저] 초청을 받아서 만족할 때까지 음식을 받은 후에 [거듭] 단단한 음식을 먹거나, 혹은 부드러운 음식을 먹으면 바일제이다.”재가자가 비구나 비구니를 집으로 초청하여 공양을 대접할 때는 당연히 그 비구나 비구니가 음식을 충분히 먹기를 바란다. 굳이 출가사문이 아니더라도 친구나 친척을 초대하여
何名淸淨身佛 善知識 世人性本自淨萬法在自姓 思量一切事卽行依1)惡 思量一切善事 便修於善行知如是 一切法盡在自姓 自姓常淸淨어찌하여 청정한 법신(法身)이겠는가? 선지식아! 세인의 성품은 본래 스스로 청정하다. 만법은 자기 성품에 존재하는 것이다. 일체를 사량하는 일은 싫어하는 마음에 의지하여 행해지는 것이니 모든 선한 일을 사량하여 선행을 닦음으로써 익혀내야 한다.이와 같이 알지라, 일체법이 다하는 것이 자성이 나타나는 것이니 자성은 항상 청정하다. 청정한 법신(法身)인 비로자나 부처님에 대해 설명하시는 것은 중생 각자가 비로자나 부처임을
선재 동자는 바다에 머무르는 남쪽 해주성을 찾아가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여태 내가 만난 선지식들의 가르침을 보면 마치 봄 날씨 같아서 모든 착한 법의 씨앗을 자라게 하니 나의 스승이 되고, 연못에 비치는 해가 연꽃을 피우게 하고 푸근한 보름달과 같으니 모든 세상을 다 품어주는 나의 사랑이 되고, 온갖 지혜의 꽃과 열매가 되니 나의 희망과 마침내 보살도를 깨닫는 목적지가 될 수 있겠구나!’ 싶으니 그 고마움에 가슴이 벅차오르며 설레기까지 하였다. 그러자 보리도 데리고 잘 공부시켜서 보살도를 이루어줘야 하는 사명감이 생기자 보리의
비구니 바일제 불공계 제49조가 축생주를 배우는 금하는 계율이었다면 제50조교타주술계(敎他呪術戒)는 축생주를 가르쳐서도 안 된다는 계율로 조문은 다음과 같다.“어떠한 비구니라 하더라도 축생주를 가르치면 바일제이다.”전 조문에서 비구니는 축생주를 배워서 안 된다고 하였고 본 조문에서는 어떠한 방법으로든 타인에게 축생주를 가르치거나 같이 합송하는 등의 행위를 하면 안 된다는 내용으로 조문 해석의 어려움은 없다.비구니 바일제 불공계 제51조 유비구승원불문입계(有比丘僧園不問入戒)의 조문은 다음과 같다.“어떠한 비구니라 하더라도 비구가 있는
善知識 惣洎自體 與受無相戒 一時 逐惠能口道令善知識 見自三身佛 於自色身 歸依淸淨法身佛於自色身 歸依千百億化身佛於自色身 歸依當來圓滿報身佛 (已上三唱)선지식이여, 자신의 본체(體)에 스며드는 모양 없는 계를 받으시오. 동시에 혜능의 입의 도를[口道] 따라하라. 친애하는 선지식이여, 자신의 삼신불을 보아라! 자기 색신의 청정법신에 귀의하라. 자기 색신의 천백억화신에 귀의하라. 자기 색신의 당래 원만보신불에 귀의하라. (이상 삼창) 육조단경은 전통적인 수계(受戒)형식을 거부하여 위엄이 넘치는 계단(戒壇)의 격식을 과감히 생략하였다. 무상(無相
선재와 보리가 선견 비구를 만나 슌냐타의 이야기를 듣고 그의 혜안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보살의 넓고 크고 깊은 마음에 엎드려 절을 하였다. 선견 비구도 선재 동자의 무상보리심을 깨달은 것을 알고 칭찬하여 주었다.“착하고 훌륭하구나, 선재야. 이제 보살도를 구하러 가야 하니 내가 명문국의 자재주 동자에게 데려다주겠다. 자재주 동자는 옛날에 문수보살님께 남을 치료할 수 있는 의술과, 궁궐을 짓고 집도 지으며 동산을 만드는 기술을 배우고, 먹고 살 수 있는 농사짓는 법, 수리와 계산을 할 줄 아는 상술 등 온갖 기술을 두루 다 배운
비구니 바일제 불공계 제49조와 제50조는 외도(外道)의 주술(呪術)과 관련된 계율이다. 먼저 제49조 송학주술계(誦學呪術戒)의 조문은 다음과 같다.“어떠한 비구니라 하더라도 축생주(畜生呪)를 배우면 바일제이다.”여기서 말하는 ‘축생주(畜生呪)’란 빨리어 띠라차나윗자(tiracchānavijjā)의 한역으로 외도들이 배우는 무의미한 것을 뜻한다. 단어를 구분해서 보면 띠라차나(tiracchāna)는 ‘짐승’, ‘축생’이란 뜻이고, 윗자(vijjā)는 ‘밝은 지혜’, ‘명지(明智)’, ‘비법(秘法)’ 등의 뜻을 가지고 있는데 본 조문
삼안국에는 반달곰을 키우는 뿌르나와 그를 사랑하는 아내 반야가 살고 있었다. 뿌르나는 아내를 닮은 예쁜 딸이 생기기를 부처님께 항상 기도했다. 어느 날 기원정사에 계신 부처님이 선견 비구를 불렀다.“선견아, 네가 그동안 나를 도와주고 수행자로서의 모범을 보였으니 이제 너의 혜안으로 삼안국에 내려가 뿌르나의 딸을 구해주도록 하여라. 그리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그의 딸을 보살펴주도록 하여라.”“예, 그러하겠습니다.”오랫동안 부처님을 모셨던 선견 비구의 잘생긴 얼굴은 꼭 부처님을 닮아 있었다. 그는 삼안국 숲속을 거닐며 뿌르나의 반달곰 동
開口卽說人是非 爲道違背 着心着淨 却是障道因緣今記汝於一切 是此法門中 何名座禪 此法門中一切無碍 外於一切境界上 念不去爲坐 見本姓不亂爲禪입을 여는 즉시 사람의 시비(是非)를 말한다. 그러면 도(道)에 위배 된다. 마음에 집착하고 정(淨)에 집착하면 도리어 도(道)에 장애를 일으키는 인연을 짓는다. 이제 기억해 보라! 여러분은 모든 법문 중에 무엇을 선(禪)의 자리(:座)라 하겠는가? 이 법문에 일체의 걸림이 없어야 한다. 밖으로는 일체의 경계상에서 생각을 물리치려 하지 않는 것을 ‘좌(坐:앉다.)’ 라하고 본래 성품을 보기에 산란치 않음을
비구니 바일제 불공계 제45조 불영작화해투쟁사계(不令作和解鬪諍事戒)는 비구니들에게 분쟁이 생겼을 때 화해를 시켜야 한다는 계율로 조문은 다음과 같다.“어떠한 비구니라 하더라도 ‘오라, 존매(尊妹)여, 이 쟁사를 없애 주시오’라고 하는 말을 듣고, ‘낙(諾)’이라 동의하면서도 그 비구니에게 장애 없이 쟁사를 없애지 않거나 또한 없애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으면 바일제이다.”비구니 간 다툼이나 쟁사가 발생하여 승가에서 그 일을 중재해 주기를 요청하였을 때 허락[諾]을 하고 중재를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는 계율이다. 어떤 단체나 조직을 막론
世人離見 不起於念 若無有念 無念 亦不立 無者 無何事念者何物 無者離二相諸塵勞 眞如是念之體 念是眞如之用姓起念 雖卽見聞覺之 不染萬鏡而常自在세상 사람들이여, 견해를 여의면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다. 만약 생각을 짓지 않으면 생각은 없는 것이니 ‘무념’ 또한 세울 수 없다. ‘없음’은 무슨 일이 없다는 것인가! ‘생각’이란 어떤 물건인가? ‘없다.’는 것은 모든 번뇌에서 두 가지의 상을 여읜 것이다. 진여는 생각의 체(體:본체)이고 생각은 진여의 용(用:쓰임, 작용)이다. 본성이 생각을 일으켜 비록 즉시 보고, 듣고, 알더라도 만물 경계에 물
보리는 선재 동자의 꼭 잡은 손을 놓지 않으려고 힘을 꾹 주면서 말했다.“오빠, 나 무서워 죽는 줄 알았어. 그러니까 이제부터는 날 버리고 가지마.”선재가 하하하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널 버렸어? 죽지 않고 살아서 돌아온다고 했잖아.”“그 말을 어떻게 믿어? 나는 정말 가슴이 터지는 줄 알았다니까.”그러자 갑자기 선재가 가던 길을 멈추고 화난 표정으로 보리에게 말했다.“나를 믿지 않는다는 것은 네게 나를 소개해준 문수보살님이나 부처님도 못 믿겠다는 소린데,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부처님께서 네게 화엄경약찬게의 53 선지식
비구니 바일제 불공계 제41조는 관왕궁원림계(관왕궁원림계)로 조문은 다음과 같다.“어떠한 비구니라 하더라도 왕궁이나 회화당(繪畵堂), 원림(園林), 유원(遊園), 연지(蓮池)를 보기 위해 가면 바일제이다.”율장을 보다 보면 부처님께서 좀 심하셨다고 느낄 정도의 계율들이 보이는데 본 조문도 비슷한 생각을 가지게 한다. 비구니가 왕궁이나 회화당, 동산이나 연꽃이 핀 연못 등을 보기 위하여 가면 바일제를 범하게 되는 것으로 요즘 같으면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행동들이 범계행위인 것이다. 이를테면 우리나라의 옛 궁궐이나 수목원 심지어 불교의
無住者 爲人本性 念念不住 前念念念 後念念念相讀 無有斷絶 若一念斷絶 法身卽是離色身念念時中 於一切法上無住一念 若住念念卽住名繫縛於一切法上 念念不住 即無縛也 以無住爲本머무름 없음은 사람의 본래의 성품이다. 생각에 생각이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앞선 생각의 생각 생각이 뒤이은 생각의 생각 생각과 서로 셈을 하게 되어 단절됨이 없게 된다. 만일 한 생각이 끊어지면 법신은 곧 색신을 여읜다. 생각에서 생각이 일어나는 과정에서 볼 때 모든 법에는 한 생각도 머무를 수 없는 것이다. 만일 생각에 생각으로 머무르면 즉시 이름에 계박 된다. 모든 법에
선재 동자와 보리가 이사나촌 화취산에 다다르자 사면에 불덩이 무더기가 큰 산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 속에는 여기저기 비죽비죽 칼산들이 높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때 승열 바라문이 가파른 산꼭대기로 올라가더니 몸을 날려 산아래 불구덩이로 들어가고 있었다.“앗. 오빠! 저기, 저기….”보리가 깜짝 놀라 선재의 팔을 잡아당겼다.선재는 보리 때문에 몸이 흔들렸지만, 순간 생각했다. ‘승열 바라문께서 보살도를 훌륭히 수행하셨다 했는데 저렇게 불구덩이로 뛰어드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이다. 혹시 마귀의 장난이 아닐까? 아니면 마귀가 승열 바
비목다라구사 선인이 있는 나라소국으로 가는 길에는 전단나무가 줄지어 있고 침수향나무의 그윽한 향기는 침향의 재료가 침수향나무임을 말해주었다. 선재 동자는 은은한 향기가 코로 들어오는 게 기분이 좋아 한발로 깡충깡충 뛰면서 보리에게 물었다.“보리야. 이번에 비목구사 선인은 53선 지식 중 몇 번째 만나는 거지?”“글쎄, 안 세어 봐서 잘 모르겠는데. 나는 그냥 오빠만 따라다녔잖아.”선재는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보리가 귀여워 이마를 살짝 손가락으로 튕기려다가 깜짝 놀라 멈춘다. 지금 보리는 꿈속에
비구니 바일제 불공계 제38조는 변경공포처유행계(邊境恐怖處遊行戒)로 제37조가 국내 유행일 경우에 해당되지만 본 조는 국외를 유행할 때로 규정되고 조문은 다음과 같다.“어떠한 비구니라 하더라도 국외에 위험이 있다고 여겨지고, 공포를 동반하는 나라에 대상(隊商)을 동반하지 않고 유행하는 것은 바일제이다.”본 조문을 보니 스리랑카에 있을 때 유학을 왔던 한국 비구니 스님이 생각난다. 그 스님은 동학사 강원 출신으로 인도에서 꽤 오랫동안 공부를 하고 스리랑카로 와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지금은 동국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하루는 불상
善知識 又見有人教人坐 着心着淨 不動不起 從此置切迷人不悟 便執成顛 即有數百盤 如此教道者 故之大錯善知識 定惠猶如何等 如燈光 有燈即有光 無燈即無光燈是光知體 光是燈之用 卽有二 體無兩般此定惠法 亦復如是선지식아! 다른 어떤 이가 사람에게 좌선을 가르침을 볼진대, 마음에 집착하고 고요함에 집착돼 있다. 움직이지도 않고 일어나지도 않는다. 이렇게 되면 마침내는 그 가치를 잃게 된다. 사람은 미혹하여 깨닫지 못하고 곧 집착하여 전도된 것을 이루려하는데 경우가 수도 없이 많다. 이렇게 가르치는 도인이라는 자들 때문에 크게 그르친다. 선지식아! 정(定
善知識 此義卽是惠等 學道之人作意 莫言先定發惠先惠發定 定惠各別 作此見者 法有二相 口說善 心不善惠定不等 心口俱善 內外一種 定惠即等 自悟修行不在口諍 若諍先後 即是迷人 不斷勝負却 生法我不離四相선지식아! 이 뜻은 지혜는 평등하다는 말이다. 도를 배우는 자는 마음을 지어 먼저 선정(禪定)에 들어야 지혜를 발현된다고 하거나 혜(慧)가 우선하여 정이 발현된다고 정혜(定慧)를 구분 짓는 말을 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견해를 짓는 자에게는 법에 두 가지 상이 있게 되는 것이어서 입으로는 선(善)을 설하지만 마음에는 선(善)이 아니기에 정혜(定慧)가
선재와 보리는 꽃향기가 은은하게 풍기는 보장원 동산에서 휴사보살을 만났다. 휴사보살은 바닷가의 금모래와 은모래에 황토를 섞어 보장원 동산의 담을 계속 이어서 쌓고 있다가, 선재와 보리를 발견하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아이고, 기다리고 있었는데 잘 왔구나. 어제저녁에 문수보살님이 너희들이 온다고연락을 주셨어. 좀 있으면 부처님도 우리 보장원 동산에서 ‘두려움을 없애는 방법’에대한 법문을 하러 오신다니까 그때까지 열심히 꽃과 나무를 예쁘게 가꿔야 해. 너희들이 도와줄 거지?”보리는 부처님께서 오신다는 소리에 좋아서 선재에게 물어보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