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산성념의 임종게

선사들은 대개 자기의 '갈 날'을 미리 알고 있다고 한다. 다음의 임종게는 후대 열반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을 뿐 아니라 열반시의 한 전형으로 자리 잡고 있는 대표적인 시다.

금년에 나의 나이 예순 일곱
늙고 병든 몸이 연 따라 살아가되
금년에 내년의 일 기억해두라
내년되면 오늘의 일 기억나리라.

今年六十七 老病隨緣且遣日
今年記取來年事 來年記著今朝日

임제종의 대종사 수산성념(首山省念, 926∼993)이 임종을 1년 앞둔 12월 4일 대중을 모아놓고 설한 게송이다. 내년이 되면 오늘의 일이 생각날 것이라니 대체 무슨 뜻일까 모두 어리둥절했다. 이듬해 12월 4일 시각도 어김없는 오시(午時). 그는 대중들에게 작별인사를 고한다. 이 뒤를 이어 설한 것이 다음의 게송이다.

백은세계의 금색의 몸에서는
유정 무정도 하나의 진여
명암이 다할 때엔 함께 안 비추나니
해가 정오 온 뒤에 전신을 보이노라.

白銀世界金色身 情與非情共一眞
明暗盡時俱不照 日輪午後示全身

선사의 품격을 유지하며 대중들에게 교시하고 있는 이 시는 평생의 선리를 함축해 단 한 번에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수산성념이 비록 임제종의 법맥을 이었다고는 하나 임제종이 다른 종파의 설시(說示)를 비교적 편견 없이 대했고 그런 가풍이 수산으로 하여금 조동종의 오위정편을 자기 것으로 소화했던 것으로 여겨지게 하는 게송이 바로 이것이다.

'금색신'은 최상의 황금에 비유되는 부처님의 몸을 말하는 것으로 진여야 말로 부처님의 본신이라는 의미다. 금색의 몸이라 할망정 ‘명암이 다할 때엔 함께 안 비추나니’다. 다만 해가 정오에 이르렀을 때 전신을 보인다 했으니 수산성념은 이미 금색신을 갖추었다는 것을 표현하고 있다.

본래 명암의 문제를 깊이 파고 든 것은 조동종이다. 이는 참동계를 지은 석두희천 이래의 전통이다. 명은 밝은 대낮에 삼라만상이 각각 제 모습을 드러내니 차별적 현상계라 하여 편위(偏位)라고 하고, 암은 어둠 속에서 모두 무로 돌아가니 평등의 진리 자체를 나타낸다고 해 정위(正位)라고 한다. 이 논리를 들어 구도자들의 수행이 얼마나 진척되었는지 파악함에 있어서 비유적 방법으로 대비시킨다. 수산 역시 이 방법으로 자신이 금색의 몸을 이루었음을 은연중 비유해 설명한다. 바로 이러한 경지를 수산은 게송을 통해 대중들에게 설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에게 자신의 죽음은 어떤 뜻을 지니는가. 당시 조동종을 중심으로 한 선사들이 자주 썼던 말에 일륜당오(日輪當午)가 있다. 해가 정오에 와 있다는 뜻이다. 이 순간은 어떠한 사물도 그림자 없이 광명 밑에 놓이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수산은 '일륜오후'라 해 '일륜당오'마저 벗어난 시간, 다시 말해 깨달음의 흔적조차 남지 않는 경지에서 그의 열반을 맞고 있음을 대중들에게 암시하고 있다.

-불교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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