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분들의 도움을 받아 국제구호개발활동을 하는 NGO 나마스떼코리아를 함께 하고 있다. 히말라야 산골 오지 마을의 어린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 위해서는 가끔 지인들에게 기부를 부탁할 때가 있다. 대부분 흔쾌히 회원 가입을 해주거나 기부금을 내주거나 재능기부를 해 준다. 가끔 따로 돕는 곳이 있고 여력이 되면 더 하고 싶다며 양해를 구하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더러 지금 어려우니 돈을 많이 벌게 되면 하고 싶다는 분도 있다. 마음속으로는 지금 곤궁하니 선업을 쌓는 선행은 지금 당장 시작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말을 못 건넨다.

간혹, “충분히 도와줬다”라고 거절하는 사람도 만난다. 흥미로운 것은 불과 몇 안 되는 분들이지만, 이들이 공교롭게도 남들이 부러워할만한 직업을 갖거나 건물주인데다, 모두 자타가 인정하는 신실한 신앙인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도움을 주는 곳이 어딘지 궁금하기도 하고 좋은 일이면 동참할 의향으로 물었던 기억이 있다. 몇 번을 물어서야 비로소 결국 교회나 성당 등에 헌금을 하거나, 방송매체 등에서 불쌍한 아이들을 보고 전화로 몇 천원을 기부한다고 한다. 아울러, 언젠가 버스에서 차비를 못 내던 사람의 교통비를 대신 내줬다는 이야기와 편의점 계산대에서 돈이 부족해서 과자를 물리려는 아이에게 차액을 지불했다는 미담과 함께 날마다 남을 위한 기도도 빠뜨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러한 선행을 들었는데도,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게 좋은 일이긴 하지만 정말 진정한 도움을 줬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을 정도인가?’라는 생각도 들었다. 평소의 벌이나 씀씀이를 보면 혹시 선행도 장식구처런 쇼핑을 하는 ‘착한 사람 코스프레’가 아닌가 하는 마음까지 들어, 스스로에 대한 반성의 기회를 갖기도 한다. 이런 선행도 물론 안하는 것보다는 낫다. 하지만 ‘조금을 주고 짧은 시간을 할애해서 기도하며 잘되라고 한마디 던지는 것으로 정말 충분한가?’라는 의문은 계속 남는다.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인 수준 등을 고려해 볼 때, 부족하게 보이는 자그마한 선행이나 잠시의 기도를 하고는 ‘충분히 도와줬다’며 추억으로 남기는 것은 어쩌면 선행이 아닌 자신의 허위의식에 가깝지 않을까. 아니면 죄책감을 채운 것이나, 스스로에게 훈장을 붙이거나 표창장을 발부한 것에 불과할지 모르겠다. 남을 도운 게 아니라 스스로를 착한 사람으로 위장시키고 위안하고 있는 것으로 해설될 여지도 있다. 이는 우리 불교에서 말하는 허망한 망상이다. 이에 대해 자기암시를 통해 스스로를 왜곡시키는 최면일 수 있다는 한 상담심리가의 말도 일리가 있다.

스스로의 힘이 부족하거나 혼자서는 도저히 할 수 없을 때 간절한 마음을 담은 염원으로서의 남을 위한 기도는 매우 중요하다.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가슴에 가득차서 넘칠 때, 그런 마음은 남을 위한 기도에 커다란 원동력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서 새로이 힘을 내고 오래된 미래를 기약하는 것 역시 남은 물론 스스로를 돕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이 아님에도 ‘충분히 했다’는 상을 가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로 ‘셀프면죄부’의 발행과 다르지 않다.

선행 특히 보시(바라밀)는 한 두 번이나 조금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며 한도도 정해져 있지 않다. 몇 번 했다고 해도 충분히 다한 것이 아니다. 평생을 해도 부족하기에, 우리 불자들은 몇 생에 걸쳐서라도 선업을 지속하겠다는 다짐을 해야 한다. 늘 같은 수준으로 정한 만큼만 하는 것이 아니라 여력을 늘려서 조금씩 더 해나가야 하는 그런 것이다. 왜냐하면, 그냥 그 자리에 멈춰 있는 것은 유지가 아니라 퇴행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성장에 맞춰 주변의 어려운 분들도 함께 동반 성장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 짐작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충분히 했다는 상이 없는 무주상보시로 늘 향상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향상일로(向上一路)] 그것이 바로 보살의 길로서 우리가 바로 걸어야 할 길이다.

-나마스떼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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