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을 주장자라고 하는데 “이걸 주장자라고 해도 맞지 않고, 주장자가 아니라고 해도 맞지 않다”고 조사스님들이 그렇게 말씀을 했습니다. 주장자를 이렇게 들어 올리면 들어져 보이고, 주장자를 이렇게 내리면 내렸다고 합니다.

그 보이는 것은 무엇이 보았느냐, 나도 보고 여러분도 보았는데 그 보는 것은 눈이 본 것입니다. 눈이 보았는데 눈 안에 뭐가 있다는 겁니다. 눈에 보인다고 하는 그놈이 있다는 말입니다. 보이고 안 보이고 하는 것은 보이고 안 보이게 느끼는 주인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자성이라고도 하고, 본성이라고도 하고, 부처라고도 하고, 마음이라고도 하고, 또 마음이 아니라고도 하고, 자성이 아니라고도 하고, 본래 한 물건이 아니라고도 하고 그렇습니다. 마음 앞에 모든 것은 다 평등합니다. 대자대비라고 하는 것은 일체중생 실유불성이다, 모든 생명은 다 불성이 있다 이겁니다. 그 불성앞에 누가 높고 낮음이 있겠습니까.

수상니우경월색(水上泥牛耕月色)이요,
운중목마체풍광(雲中木馬掣風光)이로다.
위음고조허공골(威音古調虛空骨)하니,
고학일성천외장(孤鶴一聲天外長)이로구나.

물결 위에 진흙소가 달빛을 갈아엎네.
구름 가운데 나무로 된 말이 풍광을 빚어낸다.
위음왕불의 옛 곡조가 허공의 저 뼈다귀이네.
외로운 학 한 마리가 하늘 밖에서 울고 가네.

이 소리를 알아들으면 눈이 있고 이 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면 눈이 어두운 것이라, 봉두유안(棒頭有眼)이다 하는 것은 주장자에 눈이 있다, 주장자에 눈이 있는데 그 눈을 보았느냐 이겁니다.
불교의 궁극적인 목적은 생사해탈입니다. 불교가 불교다워지려면 생사해탈을 한 사람이 많아야 되고, 생사해탈을 한 사람이 나와야 합니다. 생사해탈을 하려면 마음을 내야 됩니다.
생사해탈 하려는 그 마음 세 가지 중 하나는 대신심(大信心)입니다. 신심이라는 것은 무슨 말이냐, 나도 생사해탈을 할 수 있다, 나도 부처님같이 될 수 있다, 나도 가섭존자같이 될 수 있다는 그런 자신을 가지라는 겁니다. 우리가 이 생명을 받을 때 이 생명이 얼마나 귀중합니까. 다음 세상에 사람이 될지 안 될지도 모르고 이 다음 세상에 불교를 만날지 못 만날지도 모릅니다. 지금 만났으니 지금이 기회입니다.
둘째는 대분심(大憤心), 대분심이라는 것은 다른 사람은 다하는데 나는 왜 못하느냐 이겁니다. 셋째는 대의심(大疑心),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 一歸何處)니라, 화두를 드는데 그 화두를 활구 화두를 들어라 이겁니다. 그래서 깨달아야 한다 이겁니다.
여러분이 산 신심을 일으키고 산 분심을 일으켜 언젠가는 여러분들 중에서도 도인이 나와 세상을 일깨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약인수도도불행(若人修道道不行)이나
만반사견경두생(萬般邪見競頭生)이로다.
지검출래무일물(智劍出來無一物)이나
명두미현암두명(明頭未現暗頭明)이로다.

누가 도를 닦는다 하면 닦아지지 않는다.
온갖 그릇된 소견만 다투어 일어날 뿐
지혜의 칼을 빼내 아무것도 남기지 말고 베어버려야
밝음이 나타나기 전에 어둠이 밝아지리라.

나무아미타불.

불기 2564(2020). 8. 3.

한국불교태고종 종정 지허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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