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 바람이 스산히 흩어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하나 둘 의미 있는 결실을 위해 당신의 신께서는 마지막 햇살을 주고 계십니다. 정녕 활짝 핀 들국화의 애절한 모습을 머지않아 보게 될 것입니다. 당신께서 떠나신 지도 벌써 여러 계절이 지났습니다. 당신의 체취가 아직도 가득한 이 방 다른 곳에 앉은 부처님은 아직도 온화한 눈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언제나 변함없는 모습으로 목탁을 울리시던 당신의 모습이 저에겐 한때 역겨운 도시의 소음으로 들리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저 하늘이 파랗게만 보이고 세상의 모든 것이 설렘과 희망으로 저에게 안기기만 했을 때, 그땐 정녕 속세를 버리신 당신의 뜻을 바로 알지 못했습니다. 세상의 모든 고뇌를 혼자 짊어진 듯 한 그 모습을 똑바로 바라볼 눈이 저에겐 없었던 까닭입니다.

당신은 정말 외로운 길을 가셨습니다. 젊음의 힘찬 열기가 충만하던 때 당신은 어떤 결심을 하셨기에 스스로 인간세계를 포기하셨는지요? 어차피 잊혀질 일들이 두려워 당신의 신을 모시었습니까? 부모를 버린 자식, 사람들이 이해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하지만 어차피 인간이기에 서로 죄를 지으며 또 그 죄를 속죄하기 위해 몸부림치며 살아가는 것이 인간일진데, 스님은 왜 그런 진리를 보려 하지 않으셨습니까?

세상은 그리 어둡지만은 않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비록 자연의 법칙에 맞추어 살아가는 수레바퀴 같은 생활이지만 그 속엔 순수한 꿈과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스님! 스님이 그다지도 아끼시던 글 한 점을 주시면서 하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 글을 고이 간직하라고. 그리고 너는 언젠가는 승려가 되어 여기로 올 것이라고. 그때 저는 그냥 웃어넘기고 말았습니다. 그때 스님께서는 또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하는 일을 그만 했으면 좋겠다고.

스님! 스님 말씀대로 저는 지금 승려가 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많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습니다. 지금 시대는 모든 것이 빠르게 움직여야만 생활할 수 있는 초문명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좋았던 그 시절, 그 때의 모습, 그 때의 생각을 잊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사람들은 스님께 묻곤 했습니다. 순수함을 잊은 사회의 한 구석에서 왜 외길만 걷고 있느냐고. 넓고 편안한 길도 많은데 왜 험한 길을 스스로 걷느냐고. 그러나 세상에서 뭐라고 하건 당신은 오로지 침묵만 지키셨습니다. 그것은 어쩌면 당신의 편안한 육체에 대한 속죄였는지도 모릅니다.

스님, 저도 오늘 묻고 싶습니다. 인생이란 그 멀고 험한 외길이 당신의 인생이었느냐고. 스님! 계절은 깊어가고 있습니다. 푸르른 신록이 훗날의 인연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마냥 어리기만 했던 제 앞에도 이젠 나이의 계단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풋풋하고 덜 채워진 가슴이지만 이제는 드넓은 세상을 돌아보며 새로운 세계로 발걸음을 내딛어 가고 있습니다.

당신의 뜻을 깨달았을 때의 모습이 어떨지는 모르지만 눈앞에 어렴풋이 그려지기도 합니다. 그때는 마냥 외로이 걸어온 들판 길을 고즈넉이 되돌아봐야 할 때일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작고 외롭고 험한 길일지라도 말없이 헤쳐 나가겠습니다. 그리고 탄탄대로를 거쳐 온 발길에도 맞추어 갈 수 있는 꿋꿋한 승려가 되겠습니다.

스님! 스님은 언제나 빛을 비추는 거울이었습니다. 이제야 세상도 당신의 뜻을 알아가고 있습니다. 스님, 이제 열락 속으로 돌아가십시오. 그리고 당신의 인연의 꿈을 마음껏 펼치며 세상을 다시 한 번 돌아보십시오. 풍요로운 소망의 결실을 위해 다사로이 두 손 모은 스님을 생각하며 눈물어린 마음에 애처로이 가슴 아리는 절규가 있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가녀린 흐느낌에 떨쳐버릴 수 없는 마음으로 밤새 가슴 않던 영혼이 있습니다. 그 영혼의 가슴으로 불러도 불러도 돌아오지 못할 스님을 그리워합니다. 저린 아픔을 들이마시며 이젠 다시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을 되돌아봅니다. 그리움과 슬픔으로만 살아왔던 세월이 이제는 바람에 실려 먼 마음의 공간으로 떠나려 합니다. 스님! 부디 극락왕생하시길 빕니다.

-김제 연꽃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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