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Non-Governmental Organization)란, 정부(기관)와 관련된 단체가 아니라 순수한 민간조직을 총칭하는 말로, ‘비(非)정부기구’나 ‘단체’를 지칭한다. 국제활동을 벌이는 단체뿐만 아니라 국내 시민단체도 이에 해당된다. 1863년 스위스에서 시작된 국제적십자사 운동이 효시로, 입법·사법·행정·언론에 이어 ‘제5부(제5권력)’ 또는 정부와 기업에 대응하는 ‘제3섹터’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1903년 YMCA가 들어왔으며, 1913년 안창호가 설립한 흥사단이 국내 최초가 된다.

NGO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보통 임직원이나 활동가 또는 자원봉사자들로 구성된다. 최소한의 교통비와 식비, 그리고 활동비가 지급되며 충분한 자원봉사자들이 많으면 좋겠지만, 지속 가능성의 측면에서 부득이 활동가들은 임직원으로 정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급 직원이 없거나 최소화하는 작은 NGO를 지향하는 활동가들은 스스로 자원봉사자로 남아 활동을 지속하기도 한다. 네팔 산골 오지 마을 어린이들의 꿈과 희망을 함께 하는 NGO 나마스떼코리아 역시 이런 이상을 가지고 유급 임직원 하나없이 활동을 지속하고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 모든 임원은 자기 직업이 있는 사람으로 겸직만 하게 하며 월급 등은 지급하지 않는다.

우리가 보통 1만원의 (지정)기부금을 내면 실제로 어려움에 처해 고통을 받는 사람들은 얼마나 받을까? 홈페이지를 분석해보면 7~25% 정도가 대부분으로 조직이 방대해질수록 그 비율은 작아지는 듯하다. 결국 만원을 내면 적으면 고작 7백 원, 많아도 2천5백 원밖에 못 간다는 말이 된다. 일부 회원가입을 조건으로 길거리 회원 모집 아르바이트에게 몇 달치의 기부금이 건네지기도 하고, 유명 국제 NGO에게 돈을 지불하고 그와 무관한 별개의 국내 법인을 만들어서 활동한다는 극단적인 예도 있나보다. 그런 경우를 제외하더라도 대부분의 NGO는 인건비와 경상비(사무실 임대료, 유지비 등), 나아가 내년이나 내후년 사업을 위한 예비금격인 적립금으로 75% 이상을 사용하고 있다.

배보다 훨씬 커진 배꼽이 문제가 되는 순간이다. 본래의 목적은 점점 더 이뤄지기 힘들어지기에 경쟁적으로 TV 등을 이용한 광고에 매진하는 NGO들도 늘고 있다. 반복되는 광고에 사람들은 점점 더 고통에 익숙해지고 까닭에 광고는 더 자극적인 ‘사진’ 등을 통해 전체 기부금 사용 내역을 정당화하는 데 이용하고 있다. NGO가 이런 식으로 광고를 막해도 되는 걸까? 일부는 회계 내역을 불투명하게 처리하거나 극히 일부는 개인 통장으로 기부금을 받기도 한다는데 수십 년간의 공적은 인정하더라도 처음 NGO를 시작했을 때의 이타심의 마음은 도대체 어디로 간 것일까? 정말 진실한 마음으로 한 번이라도 봉사한 적은 있었는가?

『금강경』에서는 “보리심을 낸 선남자와 선여인들은 그 어떠한 곳에도 머물지 말고[應無所

住] 그런 머물고자 하는 마음을 항복 받고[降伏其心] 보시로 가야 하며[行於布施] 그 역시 상(相)에 머물러서는 안 되며[不住於相], 나아가 이를 잘 지키고 잘 부촉하라[善護念 善付囑]”라고 했다. 이는 머무는 바 없이 바른 마음을 내야 한다[應無所住 而生其心]로 요약되기도 한다. 모두들 『금강경』의 요체가 ‘공(空)’이라고 하는데 그건 부처나 돼야 떠들 말일 뿐이다. 실천하는 부처인 보살은 그 보살행의 전제조건이 바로 상에도 머물지 않는 허공과 같은 보시[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가 아닐까 싶다.

우리 불교의 육바라밀 가운데 하나인 ‘보시’가 바로 NGO 활동가들의 근본 정신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는 봉사한 반대급부로 명예나 재물을 바라는 마음은 부정(不淨)보시가 되므로 철저히 배격해야 한다고 배웠다.

요즘 코로나19로 어려운 시기에 종교집단은 물론 NGO 등의 운영도 곤란한 지경에 처하게 되었다. 이 어려운 시절이야말로 거꾸로 초심으로 돌아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은 아닐까? 우선 나부터 먼저 무주상보시의 마음을 잘 지키고 이 글을 통해 잘 전하며 함께 잘 하자고 부탁해야겠다.

-나마스떼코리아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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