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현 듯,  
설렘과 기다림의 가슴 어디쯤에 짧은 달이 떴다

긴 낮이 너무 더웠기에 초저녁까지
소나기를 기다렸지만
기다리던 소나기는 오지 않았다

아직도 하루치의 적막이 너무 많이 남아서
양재천변 의자에 오래 앉아
밤늦도록 일어서지 못하는 당신

밤이 깊을수록 더욱 새파래지는 당신의 가슴

당신 가슴의
그 시퍼런 무소유의 적막을
누가 알까

그 밤
당신 가슴이 가져온 그 시퍼런 적막의 비중이
얼마나 큰지
깊은지
누가 알까

요리저리 물속을 유영하는 잉어들
당신은 적막 몇 주먹을 쥐어
잉어들에게 던져주지만
잉어들은 그게 밥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고
다시 요리저리 유영해가고

양재천변 의자에 밤늦도록 앉아서
오래 펼친 적막을
쉽사리 거둬들이지 못하고 있는 당신

짧은 별
하지의 그 적막 속으로, 내가 간다

-사랑은 기쁨인가, 슬픔인가. 기다림인가, 그리움인가.
불자(佛子)에게, 크리스천에게 부처님은, 하나님은 기쁨인가, 슬픔인가. 기다림인가, 그리움인가.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다는 하지(夏至) 날, 더위를 피해 밤 양재천변 벤치에 나가 앉아 있는 그녀를 상상해본다. 그녀를 상상하고 있는 나를 상상해본다.

그녀는 나의 기쁨일까, 슬픔일까. 기다림일까, 그리움일까.
아니면, 아니면, 부처님일까, 하나님일까.
그녀도 알까. 이 밤, 나도 잠들지 못하고 양재천 잉어처럼 요리저리 유영하고 있는 것을.

문득 한 깨달음이 온다. 기쁨과 슬픔은 이퀄이라는 것을.
기다림과 그리움 또한 이퀄이라는 것을. 부처님과 하나님 또한 이퀄이라는 것을. 그녀와 나 역시 영원한 이퀄이라는 것을.

오늘 밤엔 나도 양재천변에 나가 시퍼런 적막이 되고 싶다.
시퍼런 적막 옆에 앉아 시퍼런 적막이 되어 시퍼런 적막의 별을 오래 세고 싶다.

-시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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