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설(大雪)에 눌려

하늘을 날던 까마귀 떼가

들판에 내려앉았다

새까맸다

공즉시색!

팔만(八萬)의 바다,

그 눈밭을 걸어,

하염없이 걸어,

가릉빈가* 같은 그녀가

지평선을 넘어갔다

사라졌다

색증시공!

하늘도 땅도 없었다

눈뿐이었다

✽가릉빈가: 이 새는 티베트 불경에 나타나는 상상의 새로서 그 형상이 인두조신상(人頭鳥身像)인데, “자태가 매우 아름다울 뿐 아니라 소리 또한 아름답고 묘하다”고 해 묘음조(妙音鳥)·호음조(好音鳥)·미음조(美音鳥)라고도 하며, “극락에 깃들어 산다”고 해 극락조(極樂鳥)라고도 부른다.

-나는 「여승(女僧)」이라는 제목의 시 두 편을 알고 있다. 백석 시인의 「여승」과 송수권 시인의 「여승」이다. 먼저 백석 시인의 「여승」부터 살펴보자.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쓸쓸한 낯이 옛날같이 늙었다./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평안도의 어느 산 깊은 금전판/ 나는 파리한 여인에게서 옥수수를 샀

다./ 여인은 나어린 딸아이를 때리며 가을밤같이 차게 울었다.(…하략…)

다음은 송수권 시인의 「여승」이다.

‘어느 해 봄날이던가, 밖에서는/ 살구꽃 그림자에 뿌여니 흙바람이 끼고/ 나는 하루 종일 방안에 누워서 고뿔을 앓았다./ 문을 열면 도진다 하여 손가락에 침을 발라가며/ 장지문에 구멍을 뚫어/ 토방 아래 고깔 쓴 여승이 서서 염불 외는 것을 내다보았다./ 그 고랑이 깊은 음색과 설움에 진 눈동자 창백한 얼굴/ 나는 처음 황홀했던 마음을 무어라 표현할 순 없지만/ 우

리 집 처마 끝에 걸린 수그린 낮달의 포름한 향내를/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하략…)

각각 다르면서도 비슷한 향취가 난다. 계보를 잇는 것 같기도 하다. 나도 거기에 「여승」이라는 제목으로 시 한 편을 얹어 보았다. 위 시가 그것이다. 그러나 나의 「여승」은 백석의 계보와는 확실히 다르다. 착상부터가 완전히 다르기 때문이다. 나는 산과 절간이 아니라 하얗게 대설(大雪)이 쏟아진, 그래서 화엄(華嚴)의 죽음 같은 벌판에서 그 벌판길을 외로이 걸어가는여승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내 마음속 대설의 눈밭 길을 외로이 걸어가는 한 여인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지금이 내 손이 가 닿지 못하는 곳에 있는 그 여인, 그래서 더욱 사랑하고 존경하고 보고픈 그 여인. 그 여인의 성불(成佛)을 진정으로 빈다.

이벽(시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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