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운 원기 대선사 진영.
경운 원기 대선사 진영.

조선시대 숭유배불 정책 속에서도 18~19세기 불가(佛家) 독서인(讀書人)들과 유가(儒家) 사대부(士大夫)들은 서로 교류하며 조선 사상계를 풍요롭게 만들었다. 이 당시 승려들 중에 독서인 출신이 아닌 고승(高僧)은 없었다. 선문(禪文)을 쥐고 흔들지 못하고 교학(敎學)의 행상(行相)을 가르지 못하는 ‘큰스님’은 없었다. 이름 석 자라도 써야 양반 행세를 하듯이, 축문 정도는 지을 줄 알아야 어른 노릇을 했다. 이런 전통의 중심에서 활동하던 거물 중 한 명이 바로 경운 원기(擎雲元奇: 1852~1936)다. 구한말을 거치면서도, 또 일제강점기 동안에도, 선암사의 화엄종주 경운 스님의 인기는 대단했다. 고종 황제와 갑장이었던 스님은 왕실로부터도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당시 불교계에서도 스님을 조선불교선교양종(朝鮮佛敎禪敎兩宗)을 대표하는 교정(敎正)으로 추대하기도 했다. 이에 본지는 화엄교학의 중흥지인 선암사의 ‘화엄 4대 강사’(침명-함명-경붕-경운)로서 ‘화엄종주’로 대표되는 경운 원기 대선사의 생애와 사상을 이번 호

부터 차례로 연재한다. 한국불교태고종의 적통성은 물론 화엄교학의 뿌리를 더듬어나가는데 많은 보탬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 주>

Ⅰ. 머리말

선암사는 전라남도 순천시에 있는 명찰이다. 일천여 년의 역사 속에서 다양한 문화와 사상의 산실이 되었으며, 현재도 수많은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 정신문화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더구나 필자가 늘 관심을 가지고 있는 대각국사 의천과 인연이 깊은 사찰이며, 현재 가장 오래된 대각국사의 영정이 모셔져 있기도 하다.

그렇다고 선암사가 천태종에 속하는 사찰은 아니다. 아니 천태종에 소속된 적도 없다. 대각국사가 화엄사상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화엄학의 전통과 유관하다고 말할 수 있다. 대각국사 이래 최근세에 이르기까지 선암사는 호남불교계를 주도하는 한 축이었으며, 그 중심에 선과 화엄사상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대각국사와의 인연도 우연은 아니라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본고는 대각국사 의천에 관한 글을 발표하려는 것은 아니다. 근대에 선암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고승들의 학풍을 중심으로, 어떠한 전통이 계승되고 있었는가를 살

펴보는 것이 목적이다. 대략 18세기에서 20세기 초엽에 걸쳐 활동했던 고승들 중에서 선암사와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강백 내지 선사들을 중심으로 그 사상적 특징과 흐름을 파악하려는 것이다.

물론 19세기에서 20세기에 걸쳐 형성되는 선암사의 강맥(講脈)은 함명 태선(1824~1902), 경붕 익운(1836~1915), 경운 원기(1852~1936), 금봉 기림(1869~1916) 등으로 사자상승되고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사상적 특징을 살펴보는 한편, 이러한 강맥이 형성되는 과정과 사상적 배경에 대해서도 살펴보려고 한다. 그러한 것이 선암사라는 사찰의 학풍과 문화적 정체성을 보다 명확하게 밝혀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현재 선암사는 한국불교태고종(이하 태고종)의 사상적 본산이라 평가할 수 있다. 해방 이후 전개되는 조계종과 태고종의 분열 속에서도 태고종이 사수한 유일한 본산이기도 하다. 태고종의 강원과 선원이 이곳에 있

다. 태고종 승려들은 언제나 이곳에서 수행할 수 있으며, 사찰을 에워싸고 있는 조계산의 풍광과 어우러져 천년의 전통을 자랑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년의 자태 속에 얼룩진 근대화의 상처는 현재진행형이다. 모습은 예전과 다름이 없건만 활발발했던 승풍(僧風)과 전통은 현대사회의 흐름에 뒤처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점에서 아쉬움을 느끼게 된다.

필자는 선암사가 새로운 승풍을 진작하고, 현대사회를 주도하는 사상적 진원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지니고 있다. 더하여 졸고가 선암사의 정체성을 재확립하고 발전하는데 조금의 보탬이라도 되었으면 한다. 지난 역사가 단순히 지식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선암사의 역사를 창조하는 동력인이 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 발원을 이면에 전제하고 본고를 서술하고자 한다.

선암사 전경.
선암사 전경.

Ⅱ. 근대 선암사의 법맥(法脈)과 강맥(講脈)

선암사의 사자상승 관계를 통해 그 사상적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로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첫째는 선암사의 법맥을 살펴보는 것이다. 불교의 전통 속에서 법맥은 피의 상속처럼 사자상승의 관계를 밝히는 것이다. 따라서 선암사의 계보나 전통을 살펴보는데 있어서 간과할 수 없는 사항이다. 둘째는 선암사의 강맥을 살펴보는 것이다.

강맥을 살펴보는 것은 사상적인 전통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가를 살펴보는 것이다. 법맥과 달리 강맥은 문중과 무관하게 사상적으로 적당한 인물이 아니면 전강(傳講)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일이라 생각한다. 물론 강맥과 법맥이 중첩되는 경우도 있지만 별도로 전승되는 경우도 많다는 점을 감안한 접근 방식이다.

1. 근대 선암사의 법맥

선암사에 대한 종합 조사보고서로 1992년도에 전라남도 승주군에서 발간한 『선암사』란 책이 있다. 이 책에 의하면 선암사와 유관한 고승으로 신라말기의 도선(道詵)(827~898)이 있으며, 고려 중기에 활동한 대각국사 의천(義天. 1055~1101)이 있다. 그리고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침굉 현변(枕肱懸辯. 1616~1684)과 백암 성총(栢庵性聰. 1631~1700), 확암 약휴(護岩若休(1664~1738), 상월 새봉(霜月璽篈. 1687~1767), 환허대사(1690~1742), 눌암 식활(訥庵識活. 1752~1830), 해붕 전령(海鵬展翎. ?~1826), 침명 한성(枕溟翰醒. 1801~1876), 금암 천여(錦岩天如. 1794~1878), 벽파 찬영(碧波贊英. 1807~1887), 경담 서관(鏡潭瑞寬. 1824~1904), 허주선사(虛舟禪師. ?~1888), 환월대사(幻月大師. 1819~?), 철경 영관(鐵鏡永寬. 1819~1889), 함명 태선(函溟太先. 1824~1902), 경붕 익운(景鵬益運. 1836~1915), 경운 원기(擎雲元奇. 1852~1936), 금봉 기림(錦峰基林. 1869~1910), 운악 돈각(雲岳頓覺. 1872~1922) 등이 있다. 이들이 선암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고승들이다.

물론 이상에 열거한 고승 이외에도 수많은 고승이 선암사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각종의 불화(佛畵)에 나타난 화기(畵記)나 상량문, 비문 등을 분석한 자료에 의하면 선암사를 중심으로 18세기 후반에 활동한 고승들의 법명이 나타나고 있다. 그렇지만 그 법맥은 동일하지 않다는 점을 알려준다. 조선 후기에는 특정한 계열의 승려들이 중심이 되고 있지만, 조선 중기에는 크게 두 계열의 승려들이 중심이 되어 활동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청허 휴정의 계열과 부휴 선수의 계열이다. 두 계열이라 했지만 청허 휴정과 부휴 선수의 스승이 부용 영관이란 점에서 본다면 동일한 계열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즉 태고 보우·환암 혼수·벽계 정심·벽송 지엄·부용 영관으로 이어지는 법맥이기 때문이다.

이상에 열거한 선암사의 고승들은 결국 부용 영관을 기점으로 분화된 청허 휴정과 부휴 선수의 계열에 속하며, 그 이래 번성한 가지에서 나온 법맥에 속한다. 다만 부휴 선수 계열은 선암사보다는 송광사를 중심으로 번성하고, 청허 휴정의 계열은 선암사를 중심으로 번성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특히 선암사에 화엄학의 전통이 수립되는 것은, 역사적으로 보면 대각국사 의천까지 소급될 수 있다. 그렇지만 조선시대에 들어오면 백암 성총이 선암사에서 화엄강회를 크게 열었으며, 뒤이어 상월 새봉이 화엄법회를 진작시켰다. 이후 선암사는 화엄과 선이 융합된 종풍을 형성하게 되었다.

먼저 부휴 선수 계열의 스님으로 대표적인 인물은 백암 성총과 해붕 전령, 침명 한성, 화산 오선 등이 있다. 특히 해붕 전령과 침명 한성은 대둔사의 연담 유일(蓮潭有一. 1720~1799)과 심성논쟁(心性論爭)을 전개하는 순천 송광사의 묵암 최눌(默庵最訥. 1717~1790)의 법맥에 속

한다. 해붕 전령은 묵암 최눌의 제자이며, 침명 한성은 묵암 최눌의 제자인 환해 법린(幻海法璘)의 법손(法孫)이고, 화산 오선은 침명 한성의 제자이다. 또한 침굉 현변의 제자였지만 그의 권유로 백암 성총의 제자가 된 무용 수연(無用秀演. 1651~1719)이 있다. 이들의 법계를 정리하면 영해 약탄(1668~1754)-풍암 세찰(1688~1758)-묵암 최눌(1717~1790)-[환해 법린, 해붕 전령]-영봉 표지-침명 한성-화산 오선으로 이어진다.

청허 휴정 계열의 스님으로는 부휴 계열의 스님을 제외하면 대다수가 여기에 속한다고 말할 수 있다. 다만 청허 휴정 이래 편양언기파(鞭羊彦機派)와 소요태능파(逍遙太能派)로 대별할 수 있는데, 소요태능파로는 침굉 현변과 그의 제자인 호암 약휴가 있으며, 침굉의 제자인 계음 호연(桂陰浩然. 1704년 선암사 중수비 음기 작성)의 문하이자 법손이 되는 동악 재인(東岳在仁. 18세기 초 활동)과 서악 등한(西岳等閒. 18세기 중반 활동)이 있다. 편양언기파는 선암사를 주도하는 세력이라 말할 수 있는데, 편양 언기의 제자인 풍담 의심(楓潭義諶)을 기점으로 분파하여, 그의 제자인 월저 도안(月渚道安)-설암 추붕(雪巖秋鵬)-상월 새봉으로 이어진다.

상월 새봉의 제자인 용담 조관(龍潭慥冠)에서 분파하여 (혜암 윤장)-눌암 식활-(성총 확준)-계봉 심정(溪峰心淨)-환월 시헌(幻月時憲. 1819~1881)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선암사의 4대 강맥을 형성하여 이름을 떨치게 되는 것은 용담 조관 아래로 (규암 낭성)-서월 거감-회운 진환-원담 내원-풍곡 덕인)-함명 태선-경붕 익운-경운 원기-[금봉 기림과 운악 돈각]으로 이어지는 법맥이다. 또한 풍담 의심 아래로 (월담 설제-환성 지안-호암 체정-설파 상언- 낭송 유화-연서 설환-연월 안평)-벽파 찬영-[청호 파일-월영 처관, 자암 경순-신봉 기정]로 이어지는 계열이 있어서 선암사 문중의 3대 법맥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환성 지안의 제자인 함월 해원(涵月海源) 아래로 (완월 궤홍-한봉 체영-화악 지요-화담 경화-수월 묘행-고경 성윤)-철경 영관-원경 연준으로 이어지는 법맥이 있다. 최근세까지 이상의 3대 계파가 선암사를 주도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에 속하지는 않지만 선암사의 고승으로 소개된 경담 서관은 설파 상언-백파 긍선-도봉 국찬-정관 쾌일-환응 탄영-호명 가성으로 이어지는 법맥에 속한다. 그는 백파 긍선의 3대 법손이었지만 선암사에서 고명을 날리고 있던 침명 한성을 찾아와 공부하고 전선(傳禪) 제자가 되었기 때문에 선암사의 일원이 되었다고 본다.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불교문예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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