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후한(동한) 때 번역, 백마사와 인연

불설 42장경
불설 42장경
중국 낙양 백마사에 있는 카샤파 마탕가(가섭마등).
중국 낙양 백마사에 있는 카샤파 마탕가(가섭마등).
백마사에 소장된 담마라타나(축법란).
백마사에 소장된 담마라타나(축법란).

《불설사십이장경(佛設四十二藏經)》은 인도에서 중국에 전한 초기 경전의 하나로서, 후한(後漢)의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이 함께 번역한 것이다. 불교의 요지를 42장으로 나누어 간명하게 한 것이며, 우리나라에서는 학문승(學問僧)들의 지침서로 활용되었다. 이 경은 인도 소전이라기보다는 중앙아시아에서 제작된 경이 아닌가 할 정도이다. 그것은 가섭마 등이나 축법란이 중앙아시아 월지(쿠샨제국) 출신이다. 중국에 불교가 들어 올 때 인도에서 발호 직수입된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중앙아시아에서 실크로드를 타고 중국에 전해졌다.

불설42장경이 인도 소전이냐 아니냐를 떠나서 이 경이 월지국에서 중국으로 전해진 것에 대해서 주목해야 한다. 중국에 불교가 전해진 것은 후한 명제 때이다. 후한 명제 유장(漢明帝劉莊 재위 28년 6월 15일〜 75년 9월 5일)이다.

한 나라는 전한(서한 202 BC–9 AD)과 후한(동한 25 AD–220 AD)으로 나뉜다.
한 나라는 전한(서한 202 BC–9 AD)과 후한(동한 25 AD–220 AD)으로 나뉜다.
중국 최초의 불교사원 낙양 백마사
중국 최초의 불교사원 낙양 백마사

전한 시기에도 불교와의 접촉은 있었지만, 불교란 존재를 확실하게 인식을 못했고, 불교 전도승들이 확실하게 전한(서한)에 불교 전파를 못했다. 후한(동한) 때에 이르러서야 불교란 존재와 금인(金人=부처님)을 알아보게 됐고, 중국에 최초로 백마사(白馬寺)가 건립됐다. 백마사는 후한(後漢) 명제(明帝) 때의 불교의 중국 전래와 관련된 감몽구법(感夢求法) 설화를 토대로 낙양(洛陽) 교외에 지어진 절이다. 낙양 교외 동쪽 12km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승 및 문헌으로 확인되는 중국 최고(最古)의 절이기도 하다.

후한 명제 11년(68년), 가섭마등(迦葉摩騰)과 축법란(竺法蘭) 두 승려가 대월지(쿠샨제국,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경내에서 만난 왕준, 채음(蔡愔) 등 후한의 사신을 따라 흰 말에 《사십이장경》(四十二章経)과 불상을 싣고 수도 낙양에 왔다는 전설에 따라 백마사(白馬寺)라는 이름을 얻었다. 백마사는 두 승려들이 머무르면서 가지고 온 불경을 번역했던 홍려관(鴻臚館) 자리라고 한다.

양현지의 《낙양가람기》(洛陽伽藍記)권4에 따르면 중국 북위(北魏) 시대에는 후한(後漢)의 명제(明帝)가 세운 절로 알려져 있었으며 낙양성(洛陽城) 서쪽, 서양문(西陽門) 밖으로 3리 되는 지점에 있었다고 기술되어 있다. 북위 시절에는 절에 안치된 경함(経函)에 대한 신앙이 퍼져 있었다고 한다. 다만 그 경함 안에든 경전이 과거 가섭마 등과 축법란이 가져 왔던 것과 같은 《사십이장경》인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지 않다.

주(周)를 선포한 당(唐)의 무측천(武則天)은 자신이 총애하던 승려 설회의(薛懷義)를 백마사의 주지로 삼았고, 수공(垂拱) 원년(685년)에 백마사를 대대적으로 증축하고 주변 국가들로부터 오는 불교도들을 모아 백마사에서 조회하게 하였다고 한다. 이후 몇 차례의 중흥과 쇠락을 겪었고, 명(明) 가정(嘉靖) 34년(1555년)과 청(清) 강희(康熙) 52년(1713년) 두 차례에 걸쳐 중수되었다.

안사(녹산)의 난 당시, 당 왕조의 요청을 받은 위구르족에 의해 낙양이 약탈당했을 때 백마사도 불탔다. 당시 백마사에는 난을 피해 숨어든 낙양의 처자들이 있었다고 한다.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 백마사에 있던 요(遼) 시대에 만들어진 18나한상과, 2천 년 전 인도의 고승이 가져왔다는 패엽경(貝葉經)을 비롯한 많은 불교유물들이 홍위병들에 의해 파괴되거나 불타는 등의 피해를 입었다. 1961년 중화인민공화국의 전국중점문물보호단위(全国重点文物保護単位)로 지정되었다.

마섭가등과 축법란은 6권의 경전을 번역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법해장경(法海藏經), 불본행경(佛本行經), 십지단결경(十地斷結經), 불본생경(佛本生經), 260계합리(二百六十戒合異=계율조목) 등이다.

42장경이 중국에서 많이 읽히고 환영받는 것은 중국에 일직 번역됐기 때문일 것이다. 42장경은 42개의 장으로 되어 있어서 42장경이라고 이름이 붙었다. 중국에 한역된 초기경전이기 때문에 불교의 내용이 그렇게 심오하다거나 어려운 것은 아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42장으로 나눠서 번역한 것이다 한국에서는 지암 이종욱 스님이 한글로 번역한 것이 유명하다.

지금 까지 중국에서 가장 많이 읽고 불자들이 애용하는 13경을 소개했다. 유교 13경에 대비해서 중국불교에서 가장 많이 읽히는 13경을 선정해서 불교13경이라고 불러오면서 독경 연구해 오고 있다. 한국에는 특별히 13경이라고 부르는 경이 없지만, 한국불교 13경이라면 어던 경전들이 있는지 한번 선정해 볼 필요가 있다고 할 것이다. 한국에서는 제일먼저 반야심경, 천수경 금강경 화엄경 법화경 아미타경 지장경 등이 선정되지 않을까 한다. 중국에서 화엄경이 13경에서 바진 것을 보면 이상하다. 한국에서는 화엄경을 대교(大敎)라고 해서 가장 최고의 경으로 치는데, 중국에서는 화엄경을 경이라기보다는 논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정현<불이성 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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