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 삼부경의 하나, 고려시대에 널리 유포

티베트족계 탕구트족이 세운 서하에서 번역된《금광명경》.
티베트족계 탕구트족이 세운 서하에서 번역된《금광명경》.
1111년경 서하 영토(녹색부분).
1111년경 서하 영토(녹색부분).

《금광명경 Suvarṇaprabhāsa Sūtra 》은 ⟪금광명최승왕경(金光明最勝王經)》 또는 《금광명제왕경(金光明帝王經)》으로 부르고 있다. 《인왕호국경(仁王護國經)》、《법화경(法華經)》과 함께 호국 삼부경으로 통한다.

금광명경은 한국불교에서도 인기가 있었다. 그것은 고려시대이야기다. 고려시대에는 ⟪금광명경⟫을 외면서 호국법회의식을 많이 가졌다. ⟪금광명경⟫은 ⟪인왕경⟫과 함께 호국경전으로 채택되어 신라시대부터 이 경전에 의한 호국법회가 성하게 개설되었다.⟪금광명경⟫을 읽으면 사천왕(四天王)이 국왕과 국토를 수호하고 여러 가지 어려움을 퇴치하며, 이 경을 선포하는 자는 대변재천(大辯才天)이 지혜와 변재를 부여한다고 하여 널리 신봉되었다. 또한, 이 경의 내용에 따라 법회를 열어 불심을 깨우치는 도량을 열면, 국왕과 나라가 보호받게 된다고 하여 호국의 목적으로 이 도량이 널리 성행하게 되었다. 한편, 고려시대에는 기우(祈雨)의 목적에서 이 도량이 개설되기도 하였다.

이 도량은 1041년(정종 7) 5월과 1047년(문종 1) 8월, 1048년 8월, 1052년 6월, 1083년 (선종 즉위년) 10월, 1085년 2월과 5월, 1087년 4월, 1106년(예종 1) 6월, 1107년 5월, 1110년 9월, 1120년 2월 등에 개최된 것을 비롯하여, 명종 때 11회, 고종 때 2회, 원종 때 4회, 공민왕 때 1회, 공양왕 때 1회 등 총 31회에 걸쳐서 열렸음이 ⟪고려사⟫에 기록되어 있다. 특히, 1085년 5월에 7일 동안 건덕전(乾德殿)에서 비 오기를 기원하며, 이 도량을 개설한 것이 대표적인 예이다. 조선시대에는 이 도량이 열렸다는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에서는 중세시대에 인기 있는 경이지만, 조선시대나 근세에는 소수의 전문가들만이 읽는 경전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인기가 많은 경전이다.

금광명경은 인왕경, 법화경과 아울러 호국삼부경(護國三部經)으로 불리는 경전으로 원명은 금광명최승왕경(金光明最勝王經)이다. 인왕경을 근거로 인왕백고좌회를 열었듯이 금광명경을 근거로 금광명도량(金光明道場)을 열었다. 한역본으로는 담무참(曇無讖)의 금광명경 4권 19품이 가장 유명하다. 아울러 보귀(寶貴)의 합부금광명경(合部金光明經) 8권 24품, 의정(義淨)의 금광명최승왕경(金光明最勝王經)이 남아 있다.

부처님의 수량이 영원무궁함을 밝힌 수량품(壽量品), 참회를 권장하는 참회품(懺悔品), 부처님을 찬양하는 찬탄품(讚歎品), 공사상(空思想)을 밝혀 대상에 대한 집착을 버릴 것을 권면하는 공품(空品)등이 핵심이라 할수 있다. 특히 '참회품'을 바탕으로 송나라 지례(知禮)가 만든 금광명최승참의(金光明最勝懺儀)는 불교의식의 하나로 유명하다.

하지만 호국경전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오히려 5품 이하의 내용 때문이다. 사천왕품(四天王品)에선 사천왕이 정법을 수호하고 국가를 진호해준다고 강조하고 있다. 바로 사천왕품이 사천왕신앙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사찰의 사천왕이나 사천왕문도 이를 바탕으로 만든 것이다. 신라의 사천왕사도 이런 사유에서 건립되었다. 정론품(正論品)에서는 국왕에게 치세(治世)의 요도(要道)를 가르쳐주고 있다.

⟪금광명경⟫은 인도에서 대개 4C경 성립되었다고 추정된다. 대승경전의 하나의 특성인 경전의 서사(書寫) 청문(聽聞) 수지독송(受持讀誦)에 의하여 재난을 면하는 등의 공덕을 설하는 부분이 금광명경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데, 이러한 내용은 초기 대승경전에 많이 들어 있는 공통점이다. 4C경의 북인도는 집권적인 굽타 왕조(320-500)가 통치하고 있었다. 아마 이러한 왕권의 영향을 받아 대승경전의 특징을 많이 담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금광명경⟫의 한역은 북양 원시(元始 412~427)때에 담무참(曇無讖 385~433)에 의해 4권으로 번역된 것을 필두로 하여 진(陳)의 진제眞諦 번역, 후주(後周)의 那多 번역, 수(隋)나라 대흥선사(大興善寺)의 보귀(寶貴) 언종(彦琮) 비장방(費長房) 등이 597년에 번역한 <합부금광명경(合部金光明經)> 8권, 당(唐)나라 의정(義淨)이 번역한 <금광명최승왕경(金光明最勝王經)>의 다섯 본이 모두 현존한다.

이 경은 참회멸죄라는 내성적 종교적 인간으로서의 행동을 가르침과 동시에 호국안민 왕도 자기희생 이타利他 등의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담무참은 다르막 세마인데 번역하면 축법풍(竺法豐385〜433)이 된다. 담무참은 원래부터 중앙아시아와 인도에서 공부한 다음, 카시미르와 쿠처(구자 국)에서 가르쳤으며 후에 중국에 가서 불법을 펴고 역경을 한분이다. 그는 중국에 능통했으며 중국어를 구사할 수 있는 소수의 외국 승려였다.

승우(僧祐 445〜518 AD)의 전기는 《출삼장기집(出三藏記集)》에 실려 있다.

정현<불이성 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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