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하는 자세로 무도를 해야, 진정한 선무도 수련자

행자교육기간동안 선무도를 지도하고 있는 선무도 사범 공인 6단 진목스님의 날렵한 모습과 동작.
행자교육기간동안 선무도를 지도하고 있는 선무도 사범 공인 6단 진목스님의 날렵한 모습과 동작.
진목스님의 전성기 때의 모습.
진목스님의 전성기 때의 모습.

나는 선무도를 만난 것을 너무나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죽음 문턱에서 살아 난 것도 선무도 덕택이다. 누구를 공격하고 나 자신을 방어하기 우해서 선무도를 하지 않았다. 지나친 운동으로 몸이 망가졌을 때 삶을 포기하고 누워서 새우 잠을 잘 정도로 사경을 헤매던 차에 무심(無心)이란 말에 나는 기운을 차렸다. 무심을 알고 나서, 만난 선무도는 무심을 표현하는 가장 적합한 무도(武道)였다.

나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게 되었고, 선무도의 진수를 터득하게 되었다. 동시에 마음 닦는 법을 배웠고, 남에게 말할 수 없는 경험을 하게 되고 득력(得力)을 했다. 또한 선무도는 단순히 불교에서 나온 무술 정도가 아닌 무도로서 불교수행의 완성이라고까지 할 정도로 선무도는 마음과 몸의 결합으로써 심신 합일의 경지에 올라야 비로소 선무도를 닦는 무도인이라고 할 수 있다.

선무도의 정신을 나는 양익대선사님에게서 배웠다. 생전에 친견은 못했지만, 은사스님으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배워서 양익 대선사님의 정신을 은사 설적운 선사로부터 전수받았다고 할 수 있다. 양익 대선사님은 속세의 길을 걸어도 이 세상을 멋있게 살 분이었지만 그는 초월의 이상세계에 몸을 맡기고 사문으로서의 출가의 삶을 살았다.

타고나면서부터 부여받은 무인의 기질은 그로 하여금 가만히 있게 놔두지를 않았다. 가만히 앉아서 좌선만 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금강영관에서 불무도를 창시하셨다. 양익 대선사님의 제자 설적운 선사는 불무도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서 선무도를 창시하셨는데, 양익 대선사님의 불무도를 불(佛)자(字) 대신 선(禪)과 대중화시키면서 선무도를 창시하셔서 누구나 접근할 수 있도록 현대화 하신 것이다. 양익 대선사-설적운 선사-진목으로 이어지는 무보(武譜)를 형성했다.

나는 선무도를 더욱 발전. 계승시키는 작업에 매진하면서 노력할 따름이다. 선무도는 신라시대의 원광법사에게서 맥이 이어 진다. 화랑도들의 수행법이기도 했다. 고려시대에는 여진족과 몽고족을 물리치기 위하여 정식 관군 외에 별기군을 두었는데, 승가에는 항마군이 있었다. 조선 시대에는 서산, 사명, 영규 대사가 의승군으로 활약했다. 의승군은 한동안 유지되다가 갑오경장(1894년)이후에는 신식군대로 인해서 승군은 폐지됐다.

선무도는 지관(止觀) 수행법을 수련이론의 근거로 삼는다. 설적운 선사는 양익 대선사로부터 ‘대금강문(大金剛門)’ 이란 문호(門號)를 하사 받고 1980년부터 선무도로 이름을 바꾸고 세계선무도 총본산 골굴사를 창건, 활동하고 계신다.

선무도는 요가, 명상, 호흡을 바탕으로 한 이론과 실기를 단계적으로 수행한다. 좌관(坐觀) 입관(入觀) 행관(行觀) 수련법을 통하여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침이 없는 정중동(靜中動)의 조화로 정신과 육체를 양성하고 함양함으로써 불교의 팔정도, 육바라밀,중도사상을 체득하고 실천 수행법을 통한 즉신성불의 길로 향하는 수행법이라 할 수 있다. (끝)

진목스님 약력

원광대학 요가명상학과 졸업

골굴사 출가, 설적운 스님으로부터 사사(선무도 공인 6단)

사단법인 세계선무도 총연맹 수석 지도법사(부회장)

경주 정국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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