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차 경전결집은 버마에서

쿠샨제국 출신 불교승려인 로카세마(지루가참)가 중국에 와서 한역하는 장면(기원후 170년경)
쿠샨제국 출신 불교승려인 로칵세마(지루가참)가 중국에 와서 한역하는 장면(기원후 170년경)
초기대승불교 3존불: 미륵존불, 석가모니불관세음보살(2〜3세기 간다라)
초기대승불교 3존불: 미륵존불, 석가모니불관세음보살(2〜3세기 간다라)

쿠샨제국은 인도-그리스 왕국의 그레코 불교의 전통을 물려받았다. 말하자면 이 땅에 박트리아 같은 그리스 식민지국에서 행해졌던 불교전통을 그대로 계승하여 발전시킨 왕조가 바로 쿠샨 제국이다. 쿠샨제국은 기원후 1세기에서 3세기 사이에 급속도로 발전했다. 쿠샨제국의 후원을 받은 불교는 동서사방으로 확장되었지만, 특히 중국으로 실크로드를 타고 동점했다. 아무래도 서쪽으로는 불교가 서진하는데 다소 장애에 부딪혔다. 페르시아란 문명권과 그리스 그리고 기독교 등의 종교와 문명이 불교의 서진을 호락호락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지만 서역과 중국에는 불교가 큰 저항 없이 흘러갔다.

이런 쿠샨제국의 불교가 흥성하게 된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이 카니슈카 대왕이었으며, 카시미르에서 불교경전 대 결집회의 개최가 추동의 폭발점이 되었다. 불교역사에서는 인도-그리스 왕궁의 메난더 1세(밀린다 왕), 아소카 대왕, 하샤 바르다나, 카니슈카 대왕을 불교 대 후원 왕들 이라고 말한다.

이들 가운데 짧은 기간이지만 하르샤(Harsha)는 카냐크부자의 왕(606-647 통치)이며, 산스크리트 극작가였다. 그는 시라디티야(戒日王)라는 아호를 가지며, 불교에 귀의하여 그 전도(傳道)에 힘썼고, 문예 흥륭(興隆)에 뜻을 두어 그 스스로도 희곡 3편을 남겼다. 〈프리야다르시카〉와 〈라트나발리〉는 다 같이 우다야나 왕의 연애사건을 주제로 하고 있으며, 〈나가난다〉(용왕의 기쁨)는 불교극으로서 널리 알려져 있다. 왕의 사적(事跡)은 당(唐)나라 현장의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와 궁정 시인 바나의 〈하르샤 차리타〉속에 기술되어 있다.

하르샤 왕의 주화
하르샤 왕의 주화
카니슈카 대왕이 코끼리를 타고 불상에 경배하는 상상도
카니슈카 대왕이 코끼리를 타고 불상에 경배하는 상상도

카니슈카 대왕은 카시미르(Kashmir)에서 위대한 불교경전결집회의를 소집했다. 불교역사나 전통에서 매우 중요한 모임이다. 이 모임을 제4차 경전결집이라고 부른다. 기원후 1세기경, 당대의 승려들은 유력한 불교신자들의 후원으로 이런 모임을 갖고자 했다. 카시미르 경전결집회의가 있고나서 본격적으로 중앙아시아와 중국에 사원이 건립되기 시작했다. 간다라어로 불교경전이 기록되기도 했다.

역사상의 부처님인 석가세존께서 열반한 이후, 출가공동체에서는 교리상의 이견이 생겼다. 제1차 경전결집은 부처님 열반 후에 바로 소집됐다. 1차 경전결집회의는 기원전 400년경에 실시됐다. 왕사성의 아자타사투루 왕(Ajatashatru) 의 후원으로 상수제자 마하가섭의 지도로 라자그리하(왕사성)의 동굴에서 행해졌다. 1차 경전결집회의는 율장에 기록되어 있다. 제2차 불교경전결집회의는 바이샬리에서 개최됐으며, 이 회의도 율장이 쟁점이었다. 이때부터 보수주의와 개혁파의 분열이 시작됐다.

 

제1차 경전결집회의.
제1차 경전결집회의.
아소카 대왕의 후원으로 제3차 경전결집회의가 개최되고 있다.
아소카 대왕의 후원으로 제3차 경전결집회의가 개최되고 있다.
제4차 경전결집이 이루어졌던 하르완 사원 터
제4차 경전결집이 이루어졌던 하르완 사원 터

제3차 경전결집회의는 불교역사상 엄청난 사건이었다. 3차 이후부터 불교가 인도동부 지역에서 사방으로 확장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4차 경전결집회의는 상좌부와 대승불교가 다른 곳에서 개최하게 된다. 대승불교권에서는 이른바 카니슈카 대왕의 후원으로 개최한 카시미르 불교경전 결집을 제4차로 간주한데 반해서 상좌부 권에서는 제4차 회의가 스리랑카에서 개최된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대승권의 제4차 경전 결집회의는 카시미르의 수도 스리나가르의 교외인 하르완 사원에서 열렸다고 한다. 설일체유부파가 주도한 총회였다. 기원후 1∼2 세기 쿠샨제국 권내에서 카니슈카 대왕의 후원으로 개최되었으며, 이 경전결집은 중앙아시아와 중국불교의 원천이 되었다. 오늘날 중국 한국불교가 남방불교와 다른 전통을 갖게 된 것은 이 제4차 경전결집에서 비롯된다. 또한 이곳에서는 나가르주나(용수)가 공사상(순야타)을 확립한 곳이기도 하다.

스리랑카 아누라다 뿌라 마하 비하라(대사)에서 열린 제4차 경전결집(상좌부 전통)
스리랑카 아누라다 뿌라 마하 비하라(대사)에서 열린 제4차 경전결집(상좌부 전통)
제5차 경전결집을 후원한 버마의 민돈 왕
제5차 경전결집을 후원한 버마의 민돈 왕

제5차 6차는 버마에서 개최됐다. 제5차 경전결집회의는 1871년 버마 만달레이에서 열렸다. 2400여명의 비구들이 모여서 5개월 동안 경율론 삼장을 암송하면서 확인하였고, 이 모든 내용을 이미 석판에 새겨진 석장경을 확인하여 승인하는 총회이기도 했다.

제6차 경전결집회의가 열리고 있는 카바예 동굴. 버마 양곤
제6차 경전결집회의가 열리고 있는 카바예 동굴. 버마 양곤
카바예 동굴(사원) 버마 양곤
카바예 동굴(사원) 버마 양곤
인도 왕사성 사타파니(칠엽굴) 동굴
인도 왕사성 사타파니(칠엽굴) 동굴

제6차 경전결집회의는 5차 회의가 만달레이에서 개최 된 지 83 년이 지난 1954년 양곤의 카바예 파고다 동굴에서 열렸다. 그 당시 우누 (U Nu) 총리가 이끄는 버마 정부가 후원했다. 그는 불교최초의 경전결집회의가 열렸던 왕사성 사타파니(칠엽굴) 동굴을 모방하여 인공적으로 만든 카바예 인공 동굴인 ‘큰 동굴’인 마하파사나 구하(Maha Passana Guha)의 건설을 승인했다. 제6차 경전결집회의는 1954년 5월 17일에 개최됐다. 6차 경전결집회의 주된 목적은 정법구현이었다. 8개 국가에서 2천5백 명의 상좌부 비구들이 참가했다. 미얀마, 태국, 캄보디아, 라오스, 베트남, 스리랑카, 인도, 네팔에서 왔으며, 서방에서는 유일하게 독일의 두 승려가 참가했다. 참가했던 나라들은 여기서 결집된 삼장을 자국어로 번역했다. 버마의 유명한 명상스승인 마하시 사야도 비구가 참가 했으며, 스리랑카에 있던 독일 출신 냐냐티로카와 냐나포니카 비구가 참석했다.

보검<세계불교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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