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곡(山谷)과 봉운(峯雲)은 옛 그대로인데 인심은 시절인연 따라서 손바닥 뒤집듯 때때로 변하니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

혜초 종정(방장) 예하
혜초 종정(방장) 예하

종문(宗門)과 회상(會上)이 어지럽고 시비(是非)가 부절(不絶)하니 무리(宗徒)들이 불안해하고 불법홍포에 장애가 많으니, 명색(名色)이 종문의 수장(首長)으로서 체통(體統)이 말이 아닙니다.

산곡(山谷)과 봉운(峯雲)은 옛 그대로인데 인심은 시절인연 따라서 손바닥 뒤집듯 때때로 변하니 참으로 애석한 일입니다.

본래 납승(衲僧)은 잡사(雜事)에 초연하여야 본분종사(本分宗師)의 도리입니다. 불조(佛祖)의 혜명(慧命)은 벼락이치고 폭풍이 몰아쳐도 물 흐르듯 여여 하게 상속(相續)되는 법, 하여서 금선석가(金仙釋迦)께서 연꽃을 들어 보이신 이심전심(以心傳心)은 시공을 초월하는 불변의 진리입니다.

동토(東土)의 명안종사(明眼宗師)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공문(空門)의 도를 닦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조당집 祖堂集>에 보면 옛 선사들의 명언절구(名言絶句)가 너무나 많습니다.

 

사공산(司空山) 본정(本淨) 화상의 사대무주게(四大無主偈)에

 

4대 무심하기가 저 물과 같아서

굽어진 곳에 이르든 곧은 곳에 이르든 이것이다 저것이다 함이 없다.

깨끗하고 더러운 두 곳에 마음 내지 않으니

막히고 뚫림에 언제 두 뜻이 있은 적이 있으리오.

경계에 닿으매 다만 물같이 무심하면

세상에서 종횡(縱橫)한들 무슨 일이 있으리오.

四大無心復如水 遇曲逢直無彼此

淨穢兩處不生心 雍決何曾有二意

境觸但似水無心 在世縱橫有何事

 

견문각지게(見聞覺知偈)에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것 걸릴 데 없고

소리, 냄새, 맛, 닿음 늘 삼매라네.

새가 공중에서 다만 힘써 나는 것과 같이

가질 것도 버릴 것도 없고, 미워할 것도 사랑할 것도 없어라.

만약 처소에 따라 본래 무심함을 알면,

바야흐로 관자재(觀自在)라 이름 할 수 있으리라.

 

見聞覺知無障礙 聲香味觸常三昧

如鳥空中只沒氣 無取無捨無憎愛

若會應處本無心 方得名爲觀自在

 

옛 본분납승들은 이처럼 갈고 닦아서 심전(心田)을 계발(啓發)했거늘, 종문도 불안하고 회상도 옛날 같지 않으니 부끄럽고 부끄러워서 두문불출(杜門不出)이 상책이나, 눈썹 떨어져 큰스님들 뵈면 질책(叱責)받을까 두려워 사지(四肢)를 부여잡고 가사(袈裟)입고 비로관(毘盧冠)을 정제하노라!

희(噫), 희(噫), 희(噫)로구나!

불기 2563(2019)년 기해년 음 7월 15일(양 8월 15일)

한국불교 태고종  종정    혜 초

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  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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