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투파 낙성식에 참석, 무려 3만 명

스리랑카 아누라다푸라에 소재한  루완웰리사야 스투파 스리랑카 역사서 《大史》에서 기원전 130년, 인도 북부 그리스 식민지에서 이 스투파의 낙성식에 무려 3만 명의 대표단이 왔다고 소개하고 있다.
스리랑카 아누라다푸라에 소재한 루완웰리사야 스투파 스리랑카 역사서 《大史》에서 기원전 130년, 인도 북부 그리스 식민지에서 이 스투파의 낙성식에 무려 3만 명의 대표단이 왔다고 소개하고 있다.
인도 북부 힌두쿠시산맥과 파미르고원 사이의 평야지대가 그리스 식민도시 알렉산드리아가 있었다.
인도 북부 힌두쿠시산맥과 파미르고원 사이의 평야지대가 그리스 식민도시 알렉산드리아가 있었다.

인도 아 대륙에서 아소카 대왕이 파견한 전도 승려들은 각지로 파견되어서 불교를 열심히 전도했다. 100여년이 지난 다음, 불교는 남북 사방으로 확장되었다. 북쪽으로는 코카서스 지방까지 퍼져 나갔다. 인도 북부 지역은 그리스 식민국이 세워져 있었고, 불교는 국교로 채택될 정도로 전도에 성공했다. 스리랑카 사서인 《마하왕서(大史)》에 따르면 북부 인도 지역의 그리스 식민국인 알렉산드리아(지금의 아프가니스탄 바그람)에서 실론 섬의 한 스투파(탑) 낙성식에 무려 3만 명이 참가했다고 한다. 기록이 단순해서 전체 참가 대중이 그렇다는 것인지, 아니면 요나(yona 그리스) 승려들이 3만 명이 왔다고 하는지 해석상, 다소 애매한 점이 있지만 많은 요나(그리스인) 승려들이 참가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고대 소아시아(아나톨리아)의 지방들 지도: 이오니아(Ionia, Ιωνία)는 왼쪽 가운데에 위치 한다. 오늘날 터키 지역.
고대 소아시아(아나톨리아)의 지방들 지도: 이오니아(Ionia, Ιωνία)는 왼쪽 가운데에 위치 한다. 오늘날 터키 지역.

인도에서는 빨리어로 그리스를 ‘요나’라고 불렀으며, 산스크리트어로는 ‘야바나’라고 했다. 이것은 그리스어 ‘이오니아’에서 유래한 것이다. 이오니아 인은 도리아인, 아이올리스인, 아카이아인과 함께 그리스 고전기 시대의 그리스인을 구성하는 4개의 주요한 부족 중의 하나이다. 이들이 사용했던 언어인 이오니아 방언은 도리아어, 아이올리스어와 함께 고대 그리스 세계의 주요한 세 언어의 하나였다. 인도문화권에서는 그리스인들을 ‘야바나’라고 했다. 인도의 3대 서사시 가운데 하나인 《마하바라타》에도 그리스를 ‘야바나’라고 표기했다. 하지만 실론의 역사서인 《마하왕서》에서는 빨리어 발음으로 ‘요나’라고 했다. 모두 다 ‘이오니아’에서 유래한다. 지금의 터키지역인 이오니아(그리스인)에서 주로 인도 북부 지역인 그리스 식민국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지금의 터키인들은 그리스인들이 아니다. 이들은 중앙아시아에서부터 서진하여 1453년에 동로마 제국을 멸망시키고 오스만 제국의 수도를 삼은 터키인들이다.

인도 북부 그리스 식민국과의 역사적 궤적은 너무나 많다. 그 중에서도 《밀린다왕문경》은 불교와 그리스 식민국 왕과의 관련된 경전이다.

밀린다 왕이 나가세나 비구에게 불교철학에 대한 많은 질문을 하고 있다.
밀린다 왕이 나가세나 비구에게 불교철학에 대한 많은 질문을 하고 있다.

《밀린다왕문경(Milinda王問經)》 또는 《미란다왕문경(彌蘭陀王問經)》은 《밀린다팡하(Milinda Pañha》의 한역으로 《나선비구경(那先比丘經)》이라고 하는데, 경이라고 하지만 불설(佛說)이 아니며, 빨리어 삼장에서는 장외(藏外)에 들어 있다.

기원전 2세기 후반에 서북 인도를 지배한 인도-그리스 왕국(박트리아)의 국왕인 그리스인 밀린다(메난드로스 1세)가 비구(比丘, 불교승) 나가세나(那先)에게 불교 교리를 질문하면 나가세나가 이에 해답(解答) 하는 대화 형식의 성전이며, 성립 시기는 기원전 1세기 후반에서 기원후 1세기 전반사이다.

 

기원전 100년의 인도-그리스 왕국
기원전 100년의 인도-그리스 왕국

내용은 대별해서 3편 혹은 4편으로 되어 있으며, 제1편은 밀린다와 나가세나의 전생(前生) 이야기를 서술한 서론과 두 사람이 3일간에 걸친 대화 끝에 밀린다가 제자가 되는 이야기, 제2편은 밀린다가 불교 교리상의 어려운 문제를 들어 그 해답을 나가세나에게 구한 대화, 제3편은 수행자가 지켜야 할 덕목(德目)을 비유로써 풀이한 대화이다. 특히 그리스적인 사유(思惟)와 인도나 불교적 사유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사상적 의의와 가치가 있다.

《밀린다 팡하》는 서구 불교학자들에게 매우 큰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기원전 그리스인 왕이 불교를 접하고 견성했다는 데에 충격을 받고 연구하기 시작했다. 밀린다 왕은 지금의 파키스탄의 시알코트인데 당시에는 사갈라라고 불렀다. 이 지역은 파키스탄 북동부에 위치한 펀자브 주의 도시로, 카슈미르 설산 지대에 위치하며 첸나브 강과 접하고 있다.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AD 83년경~168년경)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천문학자, 지리학자, 점성학자이다.
클라우디오스 프톨레마이오스(AD 83년경~168년경)는 고대 그리스의 수학자, 천문학자, 지리학자, 점성학자이다.

이 지역의 역사를 그리스 지리학자 프톨레마이오스는 상세하게 기록했다. 중국에 불교가 전해지기 전의 일이다. 《밀린다 팡하》는 삼장가운데 <쿠다카 니까야(Khuddaka Nikāya)>인 소부(小部) 장외에 속한다. <쿠다카 니까야>는 빨리어 경장(Sutta Piṭaka) 5부의 마지막 묶음으로, 결집이 끝난 후 남은 것들을 다시 모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일부 부파에서는 이를 경장(숫따 삐따까)이 아닌 논장(아비담마 삐다카)에 포함시키기고 쿠다카 삐따까(Khuddaka Piṭaka), 즉 소전(小典)으로 낮춰부르기도 했다. 그러나 숫타니파타, 담마빠다 등은 5부보다 먼저 성립되었다. 붓다 사망 직후부터 기원전 1세기까지 순차적으로 정리된 것으로 추측된다.

《밀린다팡하(Milindapañhā, 미란다왕문경(彌蘭陀王問經), Mil)》은 《넷티파카라나(Nettippakaraṇa, 지도론(指導論), Nett)》, 《페타코파데사(Peṭakopadesa, 장석론(藏釋論), Peṭ)》과 함께 장외에 포함됐다. 하지만 버마에서는 쿠다카 니까야에 포함시켰으며, 태국과 스리랑카에서는 소부의 정경으로 여기지를 않았다. 스리랑카의 경우는 이미 싱할라 문자로 편집이 되어 있었는데도 포함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버마에서는 일찍이 이 경의 중요성을 알고, 버마에서 있었던 제5,6차 경전결집 때에도 인정하여 포함시켰다. 중국에서는 동진(東晉 317〜420) 때 한역된 바 있다.

아무튼 밀린다 왕이 활약했던 오늘날의 파키스탄의 시알코트는 한 때 불교가 왕성하게 극성을 이루었던 곳이다. 그리스 시대가 끝나자 이 지역은 쿠샨제국이 지배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에프탈이 석권하게 된다.

500년경 에프탈 제국의 강역.
500년경 에프탈 제국의 강역.

에프탈(Ephthalites)은 5세기 중엽부터 약 1세기 동안 투하리스탄을 중심으로 투르키스탄과 서북 인도에 세력을 떨친 페르시아계(系) 유목 민족이다. 백훈족(White Huns)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 사적(史籍)에는 엽달(嚈噠), 읍달, 혹은 활(滑)이라고 기록되었고, 서방 사료에는 에프탈 등으로 기록되어 있다. 왕족은 알타이 지구에서 서쪽으로 이동한 투르크족이었으나, 피지배층은 인종·언어가 다 이란계의 투하리스탄 토착민으로 왕족도 상당히 이란화되어 있었다.

5세기 중엽 투하리스탄 지방을 지배하고 있던 키다라족(寄多羅月氏)을 격파하여 그 땅을 빼앗은 다음, 사산조 페르시아를 쳐서 위와 같은 광대한 판도를 점하였다. 중국과도 통교(通交)하여 동서 무역의 이익을 차지했다. 북위(北魏)의 승 송운(宋雲), 알렉산드리아의 상인 코스마스가 남긴 이 나라에 대한 견문기(見聞記)는 유명하다. 천신(天神)과 화신(火神)을 믿어 조로아스터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증오하였는데, 특히 펀자브 방면의 통치자 미히라쿨라 왕은 불교 박해자로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다음 쿠샨제국의 불교를 알아보도록 하자.

보검<세계불교연구원장>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