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교 13경 이야기(1)

공자님이 교육하는 모습,
공자님이 교육하는 모습,

불교 13경은 유교 13경에 대비해서 정선된 경전이다. 중국에서 13경에 대한 비중이 높고, 경전에 대한 가치와 성가를 높이 평가하다보니 불교에서도 이에 질세라 13경을 정해서 내 세운 것이다. 그렇다면 유교에서 말하는 13경은 어떤 경전을 말하는가.

13경은 《논어》(論語)《맹자》(孟子)《시경》(詩經)《서경》(書經)《역경》(易經)《주례》(周禮)《의례》(儀禮)《예기》(禮記)(《중용》(中庸), 《대학》(大學) 포함)《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춘추곡량전》(春秋穀梁傳)《이아》(爾雅)《효경》(孝經)을 말한다.

《논어》(論語)는 공자와 그 제자들의 대화를 기록한 책으로 사서의 하나이다. 저자는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공자의 제자들과 그 문인들이 공동 편찬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 사람의 저자가 일관적인 구성을 바탕으로 서술한 것이 아니라, 공자의 생애 전체에 걸친 언행을 모아 놓은 것이기 때문에 여타의 경전들과는 달리 격언이나 금언을 모아 놓은 성격을 띤다. 공자가 제자 및 여러 사람들의 질문에 대답하고 토론한 것이 '논'. 제자들에게 전해준 가르침을 '어'라고 부른다.

논어집해(論語集解)
논어집해(論語集解)

공자 시대 이후로 《논어》는 중국의 철학자들과 가치관에 깊은 영향을 끼쳤고, 이후 동아시아에도 영향을 미쳤다. 《논어》는 유교 경전의 다른 세책과 함께 사서라고 불리며 유교의 기본 가치관인 "예, 의, 충, 인(禮、義、忠、仁)" 이라는 유교적 인본주의를 가르쳐왔다.

거의 2천년 동안 《논어》는 중국의 학자들이 배우는 기본 과정이 되어왔는데, 공자의 저작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은 도덕적으로 바르고 학식이 있는 사람으로 취급되지 않았다. 중국의 과거 시험은 진나라(265〜420)에서 시작되어 청나라 말기까지 지속되었는데, 과거 시험에서는 유교경전을 강조하여 수험생들이 공자의 말을 인용하여 그들의 글에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평가하였다.

《논어》는 많은 언어로 번역되었는데, 영어로는 아서 웨일리와 A. 찰스 뮬러, 그리고 윌리엄 수딜의 번역이 가장 유명하다. 일찍이 16세기 후반에 《논어》의 일부는 예수교 중국 선교사들에 의하여 라틴어로 번역되었다.

볼테르와 에즈라 파운드는 열 번째 향당편에서 공자가 단순한 사람이었는지 명확하게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특히 볼테르는 계몽철학자로서 '《논어》'야말로 당대까지의 허황된 형이상학이나 신학에 근거하지 않은 정치철학서라고 칭송하며 자신의 연구실에 공자의 초상화를 걸어둘 만큼 공자를 존경하였다. 근래에 《논어》를 영어와 프랑스어로 번역한 시몽 레스는 이 어록은 유명한 사람의 개인의 삶을 묘사한 첫 기록일 것이라고 말했다. 엘리아스 카네티도 “공자의 《논어》가 가장 오래된 지적이고 영적인 완벽한 개인의 초상이라고 말하며 향당편은 근대적인 책과 같이 감동을 주는데, 모든 것을 담고 있으면서도 정말 중요한 것은 빼놓고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평했다.

맹자의 초상화
맹자의 초상화

《맹자》는 전국시대의 유가였던 맹자가 각국의 제후들에게 유세를 하거나, 자신의 제자들과 대화를 나눈 것, 혹은 고자 등의 다른 사상가들과의 논쟁한 것을 기록한 어록이다. 《사기》에 따르면 《맹자》는 맹자 은퇴 후 제자인 만장(萬章) 등의 제자와 함께 지은 것이라는 설이 있으나, 실제로는 맹자 말년이나 맹자 사후에 제자들이 맹자가 남긴 말을 기록하여 엮은 책이라 생각된다. 총 7편 14장구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기》〈맹자·순경열전〉에는 7편, 《한서》〈예문지〉에는 11편이라 기록되어 있다. 그 4편의 경우에는 언제 실전되었는지는 미상이다. 춘추시대에 저술된《논어》와는 달리, 이미 주 왕실이 완전히 쇠퇴하여 그 권위를 망실하고 전국 7웅이 횡행하여 패권을 다투던 시기에 저술된 책이기 때문에, 《논어》와는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전국시대에 유세를 하기 위해 군주와의 대화나 상대 학파의 사상가와의 논쟁에서 《논어》에 비해 많은 비유와 변론법을 사용하고 있다.《맹자》 전체의 내용은 '살인을 좋아하지 않는 군주'가 능히 천하를 통일할 것이며, 군주가 포악하고 무도하여 천명이 떠나면 필부에 불과하다 하여 왕도정치와 혁명론을 역설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오랫동안 높이 인정받지 못했으나 남송의 주자가《맹자》를 사서의 하나로 인정하고, 주석한 후에 십삼경의 하나로 인정받았다.

 

《맹자》 양 혜왕 장 상구
《맹자》 양 혜왕 장 상구

《중용》(中庸)은 사서오경에 속하는 경전 중 하나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지녀야 할 자세와 태도를 제시하고 있다. 본래 예기의 31편이다.

《중용》의 저자 자사
《중용》의 저자 자사

자사(子思483~402기원전)는 노나라(魯)의 유학자이다. '자사'는 자이며, 성씨는 공(孔), 이름은 급(伋)이다. 공자의 손자이자, 공리(孔鯉)의 외아들이다. 할아버지 공자의 제자인 증자의 제자가 되어, 유교의 학맥을 이어갔다. 보통 자사와 그의 학파에서 나온 맹자의 학맥을 유학의 정통 노선으로 간주한다. 증자의 유심주의 철학(惟心主義哲學)을 이어받았고, 그것이 맹자에게 이어져서 선진 유가(先秦儒家)의 유력한 한 학파를 형성하였다. 뒤에 주자학에서 공자, 증자, 자사, 맹자의 학통을 도통으로 존숭했다. 《중용》에 따르면, 그는 ‘천(天)’이라는 주대 이래의 종교적 관념을 이어 발전시켰다. 특히 ‘성(誠)’이라는 생각을 도입해 그 체계의 중심을 두고 유심주의 철학을 구성하여 유가사상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하였다.

《대학》(大學)은 사서오경의 하나인 유교 경전이다. 본래 《예기》(禮記)의 제42편이었으나, 송나라 시대에 성리학이 확립되면서 사서의 하나로 받아들여졌다

증자(曾子 505~435기원전)는 중국 전국 시대의 유가(儒家) 사상가이다. 이름은 삼(參), 자는 자여(子輿)이며, 증자는 존칭이다. 남무성(南武城, 지금의 산둥 성) 출신이다.

 

《대학》을 지은 것으로 추정하는 증자
《대학》을 지은 것으로 추정하는 증자

공자의 만년의 제자로서 공자보다도 46세 연하이다. 공자 사후 유가의 유력한 일파를 형성하여 공자사상의 유심주의적 측면을 발전시켰다. 그의 언행은 《논어》에 몇 조목이 보이며, 또 《대대례기》(大戴禮記)의 증자 10편 및 《효경》은 그의 저작이라고 인정된다. 그는 당시 진행 중이던 봉건제의 붕괴를 제지하기 위하여 씨족제로부터 비롯된‘효(孝)’라는 덕목을 강조하였다. 또, “하루에 세 번 내 몸을 살펴본다”라고 하여 공자 사상의 근본을 충서(忠恕)라는 말로 표현했다. 공자 사상의 계승자로서의 역할을 했으며, 후에 증자의 학통은 자사, 맹자로 이어져 유가의 도통을 전하는 데에 큰 역할을 했다.

《대학》은 자기 수양을 완성하고 사회 질서를 이루는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이론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대학’(大學)이라는 의미는 통치자의 학문이라는 설과 인격자의 학문이라는 설로 나눌 수 있다. 주자는 《대학》이 소학(小學)을 마치고 태학(太學)에 입하하여 처음 배우는 개설서라고 했는데, 오늘날 대학교의 기본 교양 교재와 같은 성격이라고 말할 수 있다.

《대학》은 유가 사상의 주요 사상을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수기치인(修己治人), 곧 자신을 수양한 후에 백성을 다스리라는 것이다. 즉 사회의 지도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수양하고 책임과 의무를 다한 후에 이를 주변 사회로 넓혀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삼강령과 팔조목에 담아내었다.

삼강령:

명명덕(明明德) : 자신의 밝은 덕을 밝게 드러내야 한다.

신민(新民) : 자신의 밝은 덕으로 백성을 새롭게 한다. 고본 《대학》에 수록된 용어는 친민(親民) : 백성과 친하게 된다.

지어지선(止於至善) : 최선을 다하여 가장 합당하고 적절하게 처신하고 행동한다.

팔조목:

격물(格物) : 세상 모든 것의 이치를 찬찬히 따져보는 것 → 고본 《대학》에는 없는, 주희가 새로 지어 넣은 조목

치지(致知) : 지식과 지혜가 극치에 이르게 하는 것 → 고본 《대학》에는 없는, 주희가 새로 지어 넣은 조목

성의(誠意) : 의지를 성실히 다지는 것

정심(正心) : 마음을 바로 잡는 것

수신(修身) : 자신을 수양하는 것

제가(齊家) : 집안을 화목하게 이끄는 것

치국(治國) : 나라를 잘 다스리는 것

평천하(平天下) : 세상을 화평하게 하는 것

정현(불이성 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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