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방선지식을 두루 친견하다

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 달마선원을 지키고 있는 선원장 상명선사와 수좌들.
태고총림 조계산 선암사 달마선원을 지키고 있는 선원장 상명선사와 수좌들.

 

통도사 강원을 마치고 나니 제법 아상(我相)이 높아졌다. 사실 안다고 해 보아야 별것도 아닌데, 그때만 해도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기상으로 제방을 만행하기로 했다. 60년대 70년대는 스님들이 제방 각처로 만행을 많이 다녔다. 선방에서 한철 난적이 있고, 강원에서 문자도 익힌 여세를 몰아서 길을 나섰고, 어느 절이고 가면 법당에 걸린 주련을 새기면서 아는 척도 하는 운수납자 같은 흉내를 좀 내기 시작했다.

 

광주 상무대 무각사 송년법회에 참석해서 기념촬영
광주 상무대 무각사 송년법회에 참석해서 기념촬영

 

이미 경봉선사 문하에서는 한철을 났었고, 서옹스님이나 묵담스님을 친견한 바가 있었고, 강원을 마치고는 부안 내소사 <금강경>해설로 명성이 높았던  혜안선사를 찾아뵙고 한 말씀을 여쭈었다. "은산철벽(銀山鐵壁)을 뚫어야 되는 것이여!" 하면서 그야말로 아리송한 법문을 하셨다. 덜 익은 풋내 나는 초심자가 어찌 큰스님의 웅지를 알 수 있었으리요. 은산은 무엇이며 철벽은 무엇이란 말인가. 지금같으면 한마디 일러라하면, “신선이 구름을 타고 십만 팔 천리 밖에서 거문고를 탑니다.”라고 답을 하련만, 그때야 풋 중 시절이라, 정신만 오히려 혼미할 따름이었다. 내소사를 나와서는 가야산으로 향했다. 가야산 해인총림으로 가서는 방장 성철선사를 친견하였다. 또 지관 강주스님을 만나서 인사를 드리니 통도사 강원을 이미 졸업했으면, 동국대학을 거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상담을 해주기도 했다. 해인사를 나와서 월래 관음사에서 주석하고 계시던 향곡 선사를 찾아가서 문안을 드리기도 했다. 이렇게 제방 각처를 정처 없이 만행을 하다 보니, 이런 생활도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돌아다니다가 백양사에를 갔더니 교무 소임을 맡겼다. 교무소임을 2년 정도 보고 있었는데, 광산군 송정리 금산사라는 절이 있는데 주지로 취임하게 됐다. 1년 6개월 정도 주지를 하니, 이번에는 서울 관악구 상도동에 있는 벡운암 주지를 또 맡게 되었다. 그 후에는 양주 흥국사 총무, 태백(장성) 장명사 주지, 부산 용당동 동명불원 총무 등을 하다 보니 10년이란 세월이 금방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인연따라 살다보니  광주에 정착하게 되었고, 태고종과 인연이 깊게  닿아서 지금까지 조계산 선암사에서  화두를 들고 있다. 

1981년부터 태고종 전남 종무원 총무국장을 맡게 되었고, 삼정사 주지를 하게 되고, 1988년 용곡 큰스님께 건당 입실하여 30여 년 동안 조계산 선암사에 걸망을 내려놓고 선원장이란 소임을 맡고 있다. 태고종 시대와 선암사 시대는 나중에 소개하기로 하겠다.

처음 발심했을 때는 말뚝신심이 하늘을 찔렀다. 선암사에 정착하기 전에는 참선 맛을 몰랐었는데, 달마선원(칠전)에서 실참실수(實參實修)를 하면서 깨달은 것은 하나도 틀린 것이 없고 과거 큰 스님 네들께서 가르치신 바가 하나도 그른 것이 없었다.

 

영취염화시상기(靈鷲拈華示上機)

배동부목 접맹구(背同浮木接盲龜)

음광부시미미소(飮光不是微微笑)

무한청풍부여수(無限淸風付與誰)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어 보이니

물위 뜬 판때기 만난 눈먼 거북이가 어찌 다르리요.

가섭(음광)존자가 빙그레 미소 짓지 아니했던들

한량없는 이 소식 누구에게 전할까?

 

시와 공을 초월해서 부처님의 심인(心印) 하나 얻으려고 평생을 바쳤으니, 알고 보면 세수하다가 코 만지기보다 쉬운 것을 평생 찾아 헤매었으니 참으로 길고 긴 여정이었다.

방거사 시에 왈,

시방동취회 (十方同聚會)

개개학무위 (箇箇學無爲)

차시선불장 (此是選佛場)

심공급제귀 (心空及第歸)

스님 네들이 여러 곳으로 부터 함께 모여서

저마다 무위의 함이 없는 경지를 추구하니

여기가 바로 부처가 가려지는 장소가 아니런가?

마음이 공해지면 차제에는 돌아갈 곳, 중생계가 아닐까?

 

선암사 설선당에서 화두를 들고 유유자적하는 사명선사.
선암사 설선당에서 화두를 들고 유유자적하는 상명선사.

 

정리=원응<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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