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경북종무원 13일 오후 4시

대구 경북교구 종무원 지방종회의원스님들이 문이 굳게 잠긴 종무원 앞에서 문을 열기를 기다리고 있다.   
평화적이고 합법적인 방법으로 종헌.종법에 의한 지방종회를 개최하기 위해서 종도들의 공동의 장소인 종무원사 개방을 요청하였으나, 불응하자 종무원사 앞 거리에서 임시종회를 열고 있다.   
21명 중 15명의 지방종회 의원이 참석, 성원이 되어서 임시 종회의 안건을 토의하고 있는 종회의원스님들.  
종회 식순과 토의안건. 
태고종 역사상 초유의 길거리 종회를 열고 있는 대구 경북  지방종회의원스님들.

대구경북 종무원 지방종회(의장 해석스님)는 13일 오후 제11차 임시 지방종회를 종무원사에서 개최하기 위하여 21명중 15명의 종회의원스님들이 참석하여 종무원사에 입장하려고 했으나, 이미 불신임(탄핵)당한 전 종무원장 자운(도법)스님 집행부가 문을 잠그고 종회 개최를 방해하자, 지방종회는 종무원사 앞 길거리에서 제11차 임시종회를 개최했다. 임시 지방종회는 개회사, 삼귀의 반야심경 의장스님 인사말씀 종무원장 해임에 따른 추후대책 및 안건토의 사홍서원 폐회 순으로 진행됐다. 제11차 임시지방종회는 빠른 시일 내에 대구 경북 종무원의 정상화와 종무원장 선출을 위한 비상대책위원을 구성하기로 결의하고, 종회의장 해석스님을 대책위원장으로 선출했다.

대국 경북 교구 종무원 지방종회(종회 의장:해석)는 11월 9일 오후 2시 종무원사에서 종회의원 21명 중 19명이 출석, 종회를 개최하고 종무원장 도법스님을 종무원장 직무유기 및 월권을 사유로 불신임(탄핵)을 종회의원 21명중 19명 출석 찬성 15명 반대 4명으로 가결, 도법스님을 대구 경북 종무원장직에서 퇴임시킨 바 있다.

지행<편집국장>

<해설>

대구경북종무원 지방종회는 임시종회를 13일 종무원사 밖에서 열고, 대책위원회를 구성하고, 빠른 시일 내에 종무원장을 선출하여 교구 종무를 정상화 한다는 방침이다. 종회의원 70%가 도법 종무원장 체제 가지고는 안 되겠다는 판단을 내리고, 불신임(탄핵)이라는 강수를 둬서 안됐지만 도법스님을 낙마시키고 새로운 종무원장을 직선제로 선출해서 대구 경북 종무원을 새롭게 이끌어갈 리더를 뽑는다는 것이 대구 경북 종무원 지방종회와 종도들의 여론이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으며 새판 짜기는 시간문제인 것으로 판명이 났다.

도법스님은 이미 종회의원이나 종도들로부터 외면을 받았다. 깨끗하게 물러나서 후일을 도모하는 원모심려의 큰 그림을 그려야지 근시안적인 단견으로는 현재의 파국을 수습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하는데 꿈을 깨지 못한 것 같아서 안타깝다. 이번 불신임(탄핵)에 따른 해임은 무엇보다도 본인 스스로가 자초한 결과이다. 종무원장이면 지역 종무원의 종도들을 위한 공복으로서 보살행을 하고 심부름꾼이라는 정신으로 임해야 함에도 종도위에 군림하려는 권위의식을 갖고 움직였고, 전직 총무원장과 이웃 종무원장의 원격조정, 그리고 총무원집행부와 불필요한 각을 세우면서 사사건건 대립을 주도하고 종정법통까지 무시한 종회의장과 행보를 같이하면서, 종단과 지방종도들의 정서와는 반하는 행보를 취한 것이 이번사태를 불러오게 된 배경이라고 본다.

도법(자운)스님은 그들과 반 총무원 연합전선에 합류해야할 아무런 이유가 없음에도 친분과 약간의 물질적 도움이라는 뒷골목 의리 때문에 눈앞에 둔 지역 종도들의 민심은 저버리고 멀리 있는 분들에게 우정을 과시하다가 마당 안에 있는 식구들에게 오히려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고서야 자신이 정작 불신임(탄핵) 당한 것을 알게 된 듯, 뒤늦게 후회하면서 강한 반발을 하고 있다.

종회의원 70%가 이미 등을 돌렸으면, 사태판단을 얼른 하는 것이 그나마 그가 살길임에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종무원사무실을 개방하지 않고 봉쇄하고 있는 것은 매우 잘못된 결정이면서, 후일에 도법스님이 받아야할 징계수준만 높이고 있을 뿐이다. 도법스님은 이 같은 생각과 반발을 빨리 접고, 종무원사무실을 개방하고 대책위원회에 열쇠와 종무를 인계하고 후임 종무원장을 조속히 선출해서 교구 종무를 정상화 하도록 단안을 내리는 것이 현명한 판단이라고 사료된다. 더 이상의 시간을 끌면서 반발하다가는 그야말로 설자리를 잃고 ‘산문출송’이라는 불명예를 안게 될 것임은 불을 보듯 훤한 일이다. 자비문중의 정서를 모르는 그의 승려관 종단관 불교관을 탓해야지, 인간적인 우치함까지도 책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저작권자 © 한국불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