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고종단의 현대화와 종무행정체계를 세운 종단 지도자

선암사에서 개최된 태고종 전국 승려수련대회
선암사에서 개최된 태고종 전국 승려수련대회
일본에서 개최된 세계불교도우의회(WFB)대회 참석
일본에서 개최된 세계불교도우의회(WFB)대회 참석
일본 WFB대회에 참석한 좌로부터 윤고암 조계종 종정, 이성수 총무원장, 남허 대종사(태고종 총무원장).

남허스님은 태고종 창종과 더불어서 제2대 중앙종회의장에 피선되어 종회를 이끌었다. 지금의 종회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 든다. 무게감이 너무 떨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종단의 운명인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큰 분들이 태고종을 이끌었던 것을 보면서 지금의 종단형국을 보노라면 정말 한숨 밖에 안 나온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도 한국불교를 생각하고 종단발전을 염원했던 큰스님들을 회고하면 부종수교의 원력을 세우고 수행 정진했던 분들의 노고는 이루다 형언할 수 없는 대승보살님들이다.
남허 대종사는 수원시 인계동에 법흥사를 창건하고 종단 종승위원장을 맡아서 종단의 종통과 정체성을 정립하는데 이론을 체계화시켰다. 태고종은 변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1974년 11월 25일 총무총장(총무원장)에 취임했다. 동시에 월간 불교사 사장에 취임했다. 남허 대종사는 총무원장에 취임하면서 부장급인선을 하는데 젊은 신진승려들로 태고종 총무원의 얼굴을 새롭게 했다. 나중에 7인방이라고 불리 우는 이규범(운산), 홍인곡, 김운경, 김대운, 박인공, 이벽파, 이백우 스님 등이다. 법륜사와 서울 3사에 대한 안배였다. 전임 총무원장 안덕암 스님이 다소 나이가 든 장년들을 기용했다면, 남허 총무원장 스님은 과감하게 30대의 젊은 피를 종단의 부장급간부로 발탁하여 종단을 새롭게 해보려는 야심찬 로드맵을 작성했다. 여기에 이지성, 김춘배, 정백인, 윤영우, 이원응 편백운 등이 포진하는 진용을 갖춘 것이다.
남허 대종사 총무원장 밑에서 종무를 익혔던 운산, 인곡, 인공, 종연, 백운 스님이 총무원장으로 진출했고, 영우스님이 중앙종회의장으로, 원묵 스님이 원로회의 수석부의장, 고동우스님이 지방종무원장을 역임했고, 보운스님이 종단의 요직을 두루 거쳤으며, 종묵 스님이 인천교구 종무원장을 역임했고, 원응스님은 국제통으로 활약하면서 지금은 한국불교신문과 월간 불교 주필로 활약하고 있다. 남허 대종사의 직계 은법 상좌들도 다수가 입적한 상태이지만, 아직도 핵심 제자들은 종단의 중진으로 활동하고 있고, 손상좌 100여명이 종단의 이곳저곳에 포진, 맥을 이어가고 있다.                            

남허 문도회에서 발간한
원응 편 《남허스님 법어집》

남허대종사께서 총무원장으로 재직할 때 월간 불교 편집국장을 했던 필자는 스님의 열반을 지켜보았고, 그 후 해외로 나갔다가 영국에서 귀국하여, 문도들의 요청으로 《남허스님 법어집》을 정리하여 문도회 이름으로 발간하는데, 원고 정리를 한 바 있다. 한동안 열반 다례재에도 참석 못했던 불경을 참회한다. 다시 이렇게 추모기라도 쓰게 되어서 스님께 빚을 갚는 것 같아 마음이 홀가분하다.

원응<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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