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여권 노트에 담긴 원고 책으로 정리하는 것이 소원

자신이 손수 세운 대웅전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 지암 원로스님
자신이 손수 세운 대웅전에서 좌선을 하고 있는 지암 원로스님
지암원로스님이 편백운 원장스님과 담소
지암원로스님이 편백운 원장스님과 담소
50여권의 노트에 적힌 비망록을 펴 보이고 있다.
50여권의 노트에 적힌 비망록을 펴 보이고 있다.
지암스님의 은법 맏 상좌 월인스님이 총무원장스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지암스님의 은법 맏 상좌 월인스님이 총무원장스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지암 원로스님은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로 소탈하게 총무원장 스님 일행을 대한다. 마치 천진 동자처럼 이런저런 말씀을 거리낌 없이 하신다. 말씀 가운데서 절 집에서 오래 사신 역사가 묻어난다. 팔순(八旬)을 넘기신 원로스님인지라, 거침이 없으시다. 젊은 후학들을 위해서 좋은 말씀 해 달라고 하자, 특별히 할 말이 없다고 하신다. 한참 뜸을 들인 다음, “이젠 후학들이 활동 해야제!”라고 말씀했다. 아마도 1차적으로는 상좌들을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 같고 둘째는 종단의 후배들에게 당부하신 말씀으로 여겼다. 문하에 상좌는 20여명이며, 맏 상좌가 광주 전남교구 종무원장 월인 스님이다. 월인 스님은 동진 출가해서 지암 원로 스님 문하에서 성장했다고 한다.

지암 원로스님은 상좌 월인 스님을 뿌듯하게 생각하는 듯, 은근히 자랑스러워한다. 불문에서 상좌는 속가에서 자식과 같은 존재다. 스승과 제자, 은사와 상좌 간의 관계는 너무나 끈끈하기에 필설로서는 다 표현하기 어렵다. 다른 상좌들도 있지만 정이 가는 상좌가 있기 마련이다. 아마도 세심정사 불사에 함께 고생한 것이 정이 가는 듯 했다. 월인 스님은 이제 광주 시내에서 법륜사를 창건, 도심포교에 매진하고 있다. 월인 스님은 광주시 지정문화재 23호 3인 멤버 중 나비 작법 무 보유자다. 월인 스님의 꿈은 35만평 부지에 전수관을 건립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원로스님은 이제 여한이 없다고 하면서, “후학들이 잘 이어주기를 바랄뿐”이라고 했다. 원로스님이 은사 최종산 스님에게서 영향을 받고 훈도를 받았듯이 제자들에게도 여법한 사찰 하나 물려주는 것이 평생 원력이었다고 한다. 원로스님은 한이 맺힌 듯 했다. 은사스님과 함께 증심사에서 밀려나고, 문빈정사에 잠시 의탁했었으나, 이마저 여의치 않아서 결국 거리로 나앉게 되었고 한다. 원로스님은 세심정사를 건립하는데 심혈을 경주했지만, 지금까지 당신 명의의 소유권 등기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이제 원로스님은 한 가지 소원이 있다면 누군가가 50여권으로 정리한 원고를 정리해서 문집이라도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인 것 같았다.

인터뷰 정리=원응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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