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의 나라, 미륵대불의 위용

지난 7월 1일 울란바토로 시내 중심가 다시 쵸일링 사원에서 위용을 드러낸 23m의 미륵대불: 몽골에 부처님 시대가 다시 오기를 기대하는 몽골인들의 염원과 원력을 상징하는 희망.   

초원의 나라 몽골은 지금 온통 싱싱한 녹색으로 변했다. 비가 오지 않으면 풀이 힘이 없고, 초원은 시들해 보인다. 몽골에서는 여름에 비가 오지 않으면 흉년이라고 한다. 비가 좀 와서 푸릇한 생기가 돌아야 제 맛이 나는데, 우리가 울란바토르에 도착한 6월 30일만 해도 드라이한 분위기였다. 그런데 7월 1일부터 비가오기 시작했다. 몽골 사람들은 풍년이 들 조짐이라고 했다. 이번 몽골행은 특별한 목적이 있었다. 다시쵸일링 사원의 미륵대불 점안낙성식 법회에 참석하고 7월 2일은 국제학술대회가 있어서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내친 김에 부랴트 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와 바이칼 호수를 가보기 위해서 여행길에 나섰다.

울란바토르에서 조금 외곽으로 나가면 칭기즈칸 동상 공원이 있다. 이곳에는 크고 작은 여러 개의 야외 쉼터가 있다. 싱그러운 초록색 들판과 개울가가 우리의 옛 시골 풍경과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여행의 목적은 다양하지만, 나의 경우는 철저한 원칙이 하나 있다. 불교와 관련된 여행이다. 불교행사나 회의가 아니면 좀처럼 발걸음을 떼지 않는다. 확대한다면 종교행사나 회의가 아니면 나가지 않는다. 행사나 회의가 아니면 불교문화 종교문화 리서치를 하기 위해서 나간다. 이번에는 목적이 두렷해서 몽골까지는 8명이 러시아는 6명이 동행했다.

다시쵸일링(준 후레) 사원은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그렇게 큰 사원은 아니다, 그렇지만, 역사적으로는 매우 중요한 사원이다. 1937년 공산정권에 의해서 파괴되기 전에는 적어도 수천 명의 라마들이 공동체 생활을 했던 사원이다. 지금은 간단사가 제일 큰 사원이지만, 역사적으로는 이 사원이 오히려 더 의미가 있다고나 하겠다.

미륵대불 점안낙성법회 다른 나라에서 온 불교대표들

이 사원의 주지 스님하고는 오랫동안 국제 불교 활동을 해오고 있다. 공산권 시절에는 큰 절 간단사에 있었다. 1990년 구소련의 공산체제가 무너지면서 개혁개방의 바람과 함께 몽골도 소비에트의 위성국가의 굴레에서 벗어나서 민주국가가 되면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자 주지스님은 발 빠르게 사원이 있던 이곳을 되찾게 되었는데, 다행하게도 어려서부터 이 사원에서 생활했던 노스님들의 도움으로 연고권을 내세워 이 사원을 복원하게 된 것이다.

긴 이야기는 할 수 없지만, 한때 몽골불교를 이끌었던 역사성과 전통성이 있는 사원이다. 공산주의 시절에는 서커스 공연장으로 활용되었다. 사람들은 현재의 모습만을 보고 쉽게 판단해 버리는 습성이 있다. 그런데다가 너도나도 몽골 전문가를 자처하다보니, 정보의 왜곡이 생긴다. 각설하고, 이 절의 주지스님은 달라이 라마 문하에서도 공부를 했고, 인도 스리랑카 등지에서 유학을 한 스님이며, 영어 러시아어 신할라(스리랑카어) 힌디어 티베트어에 능통한 분이다보니 국제적으로는 몽골불교를 대표해서 활동하고 있는 큰 스님이시다.

 그러면 몽골불교를 역사적 문화사적 관점에서 조금 조명해 보자. 몽골은 역사적으로 우리와 밀접한 관련 속에 존재하는 나라이다. 우선 인종적으로 몽골로이드(Mongoloid)라는 인종적 관계이다. 몽골인과 한국인은 너무나 닮아 있기 때문이다. 언어적으로도 우랄알타이어족이라는 공통성을 갖고 있다. 먼 옛날 같은 조상을 가졌던 것은 분명한 것 같다.

하지만 지금 몽골과 한국은 이런 인종적 언어적 인류학적 관련을 천착하기 보다는 경제적인 면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한국에 약 5만 명에서 10만 명의 몽골 출신들이 거주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한국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이 가운데는 유학생들도 상당수 있다. 반면에 몽골에도 약 3-4천명의 한국인들이 있다. 대부분은 기독교 선교사들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온 선교사들은 몽골은 한국 다음으로 선교되어야할 아시아 국 가운데 하나라고, 강한 의욕을 보이면서 한국에서의 선교 노하우를 실천하고 하고 있다. 선교 이야기는 나중에 하겠다.

미륵대불 점안낙성법회가 열리기전의 모습 필자 두 번째 줄 우측

몽골은 종교적으로 자연숭배 사상이 널리 퍼진 나라로서, 샤머니즘이 뿌리 내린 나라였다. 그리고 고대부터 텡그리 사상이 있어왔다. 텡그리(TENGRY)란 용어의 개념은 터키와 몽골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신’이란 뜻이다. 중앙아시아에 사는 사람들에게 이 텡그리 신앙은 신화적인 데에 기초하고 있다. 하늘의 신은 청명한 창공으로 가득한 하늘 어딘가에 존재하는 신령한 존재로서의 하느님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몽골족은 한 때 유라시아 영토의 거의 대부분을 정복하여 몽골 제국을 세웠다. 14세기 중국에 세웠던 원(元)제국은 티베트 불교를 받아들였다. 몽골제국이 무너지자 몽골족들은 다시 자기들의 고대 신앙체계인 샤머니즘으로 돌아갔다. 그 후 1578년 군사지도자인 알탄 칸(Altan Khan)은 칭기즈칸의 후계를 자처하며 신 몽골제국을 건설하려는 야망을 갖고, 흩어진 몽골제후국들의 연합운동을 주도했다.

동시에 티베트 불교의 겔룩파(Gelug 일명 황모파)의 수장을 초청하여 스스로 불교의 보호와 후원자인 의식을 치루고 티베트 불교를 국교로 공식화 했다.

몽골 울란바토로= 원응<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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