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시 장흥, 한국불교 태고종 청련사로 가는 익숙한 길에 의외로 생각치 못한 향기를 간직한 곳이 있다. 양주시립미술창작스튜디오 ‘777레지던스 생활문화센터’가 바로 그곳인데 도암스님의 서예작품 전시회가 지친 현대인의 마음을 채워주고자 다양한 감상을 전해주고 있었다.

들어가자마자 아래 사진과 같은 큰 족자를 볼 수 있다.

5월 5일 어린이날을 맞이하여 많은 관람객들이 왔었는데 그들에게 특히 어린이들에게 꼭 가르쳐주고 싶었기에 입구에서 가장 먼저 설명하는 작품이라고 한다. 본인의 차량에 ‘독도는 우리땅’이라는 문구를 붙이고 청와대 앞부터 경기도 전역을 돌았다고 하니 구국의 기백을 이 작품에 고스란히 녹여낸 것이리라.

대한민국의 국태민안을 기원하는 ‘대한민국반야심경’. 혹자는 이런 작품에 서예의 좋고 나쁨을 평가하고 또 경제적 가치를 부여할수도 있겠다.

그러나 스님의 의지를 이어받은 다음에야 어찌 감히 작품의 후일을 계산할 수 있겠는가.

스님의 산수화는 독특하다. 원근의 자연스러움을 강제하여 독특한 화법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위의 먼 산은 그냥 제 갈길 가도록 멋지게 내버려둔다.
아래는 가까운 마을인 듯, 개성 강한 색채감으로 표현하고 있다. 애매한 것은 중간에 있는 산이다.
분명… 멀다면 마을보다는 멀고, 가깝다면 위의 산보다는 가까워야 하건만, 색채도 뒤지지 않고, 또한 날카로운 붓터치로 소나무를 줌인한다.
마치... 이 무리에도, 저 무리에도 끼지 못하는 그런 우매한 중생이 있다면 멱살을 잡아서라도 이끌어가려는 강렬한 의지가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림 중간의 저 산턱에 앉아 정신줄 놓고 쉬어가면 어떨까?

그깟 정신줄 좀 놓으면 어떠하리.

절벽에 놓인 소나무를 날카롭게 잡아내 듯, 저 머~언 산처럼 아예 정도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면, 내가 정신 못차릴 때, 내가 힘들어할 때, 그럴 때 스님께서 나를 붙잡아주시지 않겠는가?

어머나… ‘글자’를 그린 것 아닌가?

이런 글을 실제로 사용하던 그 당시의 고대인들보다 더 잘 그린게 아닐까?

아직 표구가 안된 미완성 작품. 가감없는 붓놀림으로, 흐트러지기 전까지 절묘하게 뻗는다. 덕분에 낯설은 원근감을 보여주지만 ‘그림을 종이에 찰싹 붙인 것 같은 느낌’...? 이런 묘한 인상과 안정감으로 눈길을 사로잡았다.

운좋게 스님의 작업실을 구경할 수 있었다. 사실 너무 정이 많은 스님인지라, 차 한잔과 짧은 교감 없이는 그냥 보내지 않는 스님이었기에, 어쩌면 필수 코스였을지도.

다만, 뭐 하나 찾을 수도 없을만큼 너저분한 그런 공간을 생각했는데, 반대로, 스님의 작업실은 너무나 깨끗했다. 오히려 스님들 특유의 향내와 먹물 냄새가 은은히 베어있는 아늑한 곳이었다.

이 밖에도 많은 서예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시에도 조예가 깊으신 스님은 다른 문인들과의 교류도 다양했는데, 역사성 강한 스님의 예술은 많은 이들의 경외감을 받고 있었다.

특히 ‘한일간의 첨예한 정치현안으로 비화되고 있는 <독도>에 대한 이해와 강한 역사의식을 불굴의 신념에 담아 격한 어조로 노래하는 그의 시적 행위는 가슴을 저미기에 못내 눈물겹다.’라는 평론(2013, 교수 엄창섭)은 그동안 스님의 실천과 과거 정부와의 괴리를 어렵지 않게 떠올리도록 만들어준다.

다케시마, 동북공정,, 치욕스런 외교, … 우리 국민 중에서, 아직까지 누구도 풀지 못한 숙제. 그리고 내 자식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은 숙제를 스님은 이렇게 홀로 부딪치고 있었던 것인가… 나무 등걸을 내주시는 것 같았는데, 난 어느새 무장되어 있다. 쉬러 왔건만 억울하다!

나오는 길에 아래의 사진과 같은 선물을 받았다. 덕분에 좀 덜 억울하다.

하하. 넓은 소나무 그늘에 앉아 부채를 펄럭이는 것만으로도 나름대로 풍류가 있지 않을까.

종교라는 틀을 넘어서, 작품으로써 세상을 이끌어가는 예술가로서의 스님에게 심심한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오래도록 건강하시고, 다음엔 더 좋은 작품으로 또 만나뵐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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