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련사 창건 제1191주년 기념 학술 세미나가 4월 14일 경기도 양주시 청련사에서 개최됐다. 청련사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서울 성동구 왕십리에 소재했던 태고종의 서울 3사 가운데 하나였다. 청련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천년고찰로서 그 역사와 전통은 유구하다.

청련사는 조선시대에는 조선의 건국과 함께 한양의 비보사찰로서 서울의 역사만큼이나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 그 자리를 지켜왔으나 끝내는 ‘1950년대 발생한 불교분규로 인한 소유권 시비로 인한 아파트 건설로 불가피하게 현재의 자리인 양주 개명산 자락으로 공간 이동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청련사는 ‘천년고찰, 양주 청련사’를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아마도 1천 년 이상 한 자리를 지켰던 가람이 가까운 거리도 아닌 수십 km를 이동한데 대한 청련사 재적 스님들의 미안함과 송구함의 의사표시라고 받아들이고 싶다.

청련사의 천년 역사와 전통, 그리고 청련사 관련 유형무형의 문화재와 청련사만의 독특한 정체성이 중요하지, 공간적 장소의 이동으로 옛터에 대한 미련과 미안함의 아쉬운 정감은 이해는 가지만, 이전한 청련사의 옛 건물과 함께 새 터에서 새 역사를 창조해 나가면 된다고 본다. 한국불교 가람사(伽藍史)에서 장소이동을 한 사찰이 어디 청련사만이겠는가.

청련사가 창건 1191주년 기념으로 ‘양주 청련사의 역사와 문화’란 큰 주제와 다섯 개의 소주제별로 청련사의 정체성을 드러내고자 한, 청련사의 기획과 의도에 전적으로 찬동하면서 앞으로 청련사의 무궁한 발전과 번창을 기원한다. 청련사가 서울 왕십리 종남산 무학봉 자락에서 1천년의 회상(會上)을 유지했다면, 이제는 양주 개명산 자락에서 천년이 아닌 그 이상의 수만 년을 이어서 선불장(選佛場)이 되도록 정성을 다하여 새롭게 가꿔나가면 된다.

무량겁의 세월 속에서 1천년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다. 불교의 시공(時空) 관념은 때와 곳을 초월하여 무시무종(無始無終)으로 항상 무금(無今)인 것이다. 또한 일체처(一切處)가 바로 불도량(佛道場)이 아니랴! 세미나 개최 취지대로 청련사가 보유하고 있는 대웅전의 아미타삼존상과 원통보전의 관세음보살상, 13점의 불화를 문화재로 등록하여 청련사가 문화재를 보유한 전통사찰로서 빠른 시일 내 자리매김 되도록 종단차원에서도 적극 협조해야 할 것이다.

왕십리 시대의 청련사(안정사)는 태고종과는 뗄 수 없는 주요사찰로서 역할을 했다. 이른바 서울 3사란 별칭으로 통할 정도로 봉원사, 백련사와 함께 사실상 태고종을 떠받치는 지렛대였음은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편백운 총무원장도 축사에서 “청련사는 한국불교태고종의 직할교구로서 종단의 기둥과 같은 사찰입니다. 천년고찰로서 청련사가 갖고 있는 그 역사성과 전통성은 태고종을 넘어서 한국불교사적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라고 했듯 청련사는 태고종 창종과 더불어 공동운명체적인 행보를 해왔던 태고종의 중추적인 사찰임에 틀림없다. 청련사와 종단은 보다 더 긴밀한 유대관계로 위상을 정립, 태고종의 직할교구로서의 기능을 강화해 줄 것을 요망한다.

청련사가 뜻한 바대로 유형문화유산이 문화재로 지정되고 무형문화유산 또한 발굴, 체계화 해서 그야말로 문화재를 지닌 전통사찰로서의 제자리를 찾기를 바라면서, 그동안 청련사에 주석했던 스님들에 대한 승전(僧傳) 연구 또한 빠뜨려서는 안 될 것이다. 승보(僧寶)란 유·무형의 유산 뿐 아니라, 재적했던 승니(僧尼) 또한 승보로서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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