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정 (전국비구니회장)

전국비구니회장 법정스님.
전국비구니회장 법정스님.

상쾌한 아침이다. 나는 요즘 승가의 일원이 된 것을 너무나 행복하게 생각한다. 특히 인도 성지 순례를 갔다 오면 이런 기운이 적어도 3년 정도는 가는 것 같다. 왜 출가했는지, 출가의 본분이 무엇이며, 비구니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등등 나는 인도에서 그런 근원적인 물음에 답을 안고 돌아온다.

꿈 많던 소녀시절, 삶을 그저 아름답게만 생각했던 감상주의적인 문학소녀적인 환상과 동경이 가득했던 세속의 삶, 그곳은 나에게 이상향이 아니었다. 부모형제들은 울고 불고 난리였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런 삶이 이상이 아니었다. 회색빛 승복이 나를 유혹했다. 너무나 성스럽고 정갈해 보였다. 번뇌의 삶과 해탈의 삶의 경계가 바로 회색빛 승복이었다. 무조건 입고 싶었다. 이 길은 나의 길이다. 이런 각오로 세간과 출세간의 경계를 덜컹 넘고 말았다.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로웠다. 다른 세계였다. 뒤 돌아볼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 거울에 비친 나의 자화상은 성녀처럼 보였다. 스스로 만족하고 행복감에 젖어 어쩔 줄 모르는 삶이 지속되었다. 행자기간을 지나서 말 그대로 비구니가 되었다. 출가자로서의 긍지와 보람을 느끼면서 나의 설계는 시작되었다.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이고 희망차게 잘 진행되었다.

그런데 나에게 처음 닥친 문제는 산중에서의 격리된 수행자의 삶이냐 아니면 세속과의 경계에서 전법자로서의 삶이냐 하는 갈등이 생기게 되었다. 은사스님께 상의했더니, 진정한 수행자는 불이(不二)의 삶을 살줄 알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세간 출세간이 따로 없다고 하셨다. 처음엔 가슴에 와 닿지가 않았다.

이제 어느 덧 불문에 들어와서 탁자밥을 먹은 지도 제법 연륜이 쌓이자, 은사스님의 말씀이 불현듯 현실로 다가왔고, 진리였다. 세간에 뿌리 내리지 못한 출세간의 삶이란 사막의 모래 위에 서 있는 나무에 불과하다는 것을 자각했다. 하여 좀더 적극적인 수행자의 삶을 살기로 하였다.

사찰도 잘 운영하면서 포교에도 열심히 정진하고 승가의 일원으로서 동료 비구니 스님들과도 뭔가 잘 해보자는 뜻에서 소임도 마다하지 않는 용기를 내게 되었다. 그런데 막상 전국비구니회의 회장소임을 맡고 보니 자연스럽게 종단의 일에도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되었다. 한마디로 너무나 많은 실망감이 나를 엄습했다. 또 다른 세속 같은 출가세계의 한 단면이 나를 괴롭게 했다. 비구니회의 몫으로 중앙종회의원이 되어서 종회에 출석, 회의에 참석하면서 출가승단의 정체성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되고 이래도 되는 건가 하는 회의감이 들 때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인도 성지순례중 기원정사에서 참선에 든 전국비구니회장 법정스님.
인도 성지순례중 기원정사에서 참선에 든 전국비구니회장 법정스님.

모두가 한 생각을 내려놓고 출가본분을 생각하고 수행자로서의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상상도하기 힘든 품격 낮은 언행이 난무하는 것을 연약한 비구니로서는 정말 감당하기가 힘들다. 출가본분을 다시 생각하게 하는 이런 일이 내 앞에 전개될 때, 나는 인도를 생각한다.

사위성 기원정사를 순례했을 때였다. 부처님은 이곳 기원정사에서 19안거를 보냈고, 동(東) 기원정사에서 6안거를 보냈다고 한다. 동 기원정사 옆에는 대애도(大愛道) 비구니가 거처하는 암자가 있었다 한다. 대애도는 누구인가? 바로 싯다르타 고오타마의 이모인 양모, 마하파자파티이다. 80세에 최초의 비구니가 된, 우리 비구니들의 최초 조사(祖師)이다. 부처님은 이모의 출가를 반대했다고 한다. 출가자의 길은 고행길이기에 반대했지만, 모자(母子)의 정은, 비구와 비구니로서의 위상으로 승화되고 출가 승단의 구성원이 되는 계기가 되었다. 팔경법(八敬法)을 제정하고 이 법을 수용하면서까지 출가의 길을 택했던 대애도 비구니스님의 마음은 무엇이었을까?

우리종단에서 비구니들의 위상과 역할은 무엇일까? 나는 요즘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하고 있다. 이젠 우리 비구니들도 뭔가 적극적으로 종단 일에 참견하고 의사를 표출하고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본다. 출가구성원의 한 축을 차지하는 비구니들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서 진지한 고민과 대안이 수립되고 실천할 수 있는 방안이 강구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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