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종주 경운원기 대선사 진영. 선암사 성보박물관 소장.
화엄종주 경운원기 대선사 진영. 선암사 성보박물관 소장.

한 개의 사찰이 총림규모의 가람으로 발전하려면 꽤 장구한 세월이 요구된다. 조계산 선암사는 지난 60여 년 동안 소유권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선암사의 전통과 역사성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데,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다. 이유는 단 하나 해방 후, 이른 바 ‘불교정화’란 미명아래 이승만 대통령의 ‘유시’가 발단이 되어 분규(법난)가 발발되었다.

긴 싸움 끝에 문교부의 중재안에 따라서 불교재건비상종회 등의 과정을 거쳐서 통합종단이 출범했고, 통합종단은 중앙종회를 구성해서 종회를 여는 등, 지루한 불교내분이 종식되는가 했는데, 결국에는 조계사측과 법륜사측 조계종으로 갈라서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하고 말았다.

이후 지루한 법정 공방이 시작됐고, 양측은 사찰을 두고 이른바 ‘절 뺏기 싸움’이 본격화되었다. 자연스럽게 법정에서는 사찰소유권을 둘러싼 소송이 줄을 이었다. 또 여기에는 1962년 8월에 시작된 ‘불교재산관리법’이 변수로 작용했다. 문제는 정부의 편향된 시각과 관권개입으로 법륜사측(서대문 총무원)은 불리한 입장이었고, 사찰등록과 소유권리에 대한 법적보호가 통합종단에만 주어지고, 서대문 총무원측은 1965년 6월 제기한 ‘종헌무효 및 효봉 조계종 종정 불인정 확인’소송에서 서울지방법원이 ‘비상종회의 종헌 제정 당시 위법사항이 있어서, 종헌과 효봉 종정 추대는 무효’라고 판시, 상황은 서대문 측에 유리하게 전개되었으나, 결국 고법과 대법에서 서대문측은 패소하게 되었다.

산중불교시대에서 원종-임제종-조선불교선교양종-보수파는 한국불교조계종, 다른 혁신파는 대한불교조계종이라고 할 수 있는데 ‘조계종’이라는 동명으로는 등록이 불가하다는 정부(문교부)의 판단에 따라서 한국불교조계종은 부득이 한국불교태고종이라는 간판으로 새롭게 출발하게 되었다.

나중에 한국불교조계종은 한국불교태고종과 합종의 형식을 취해서 통합하게 된다. 태고종이 탄생하게 된 또 하나의 결정적 이유는 ‘불교재산관리법’이다. 지금 ‘조계종’이라는 유사종단의 수가 50개도 넘는 아이러니는 어떻게 설명해야할지 조계사(조계종)측과 법륜사(태고종)측 모두에게 숙제를 던져주고 있음을 깊이 생각해 볼 때이다.

다시 이야기를 선암사로 집중해 보자.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한국불교는 겉잡기 어려운 국면으로 빠져들고, 전국의 사찰들은 혼란과 무질서로 뒤죽박죽이 되는 어지러운 상황으로 점점 말려들고 말았다.

선암사 홈페이지에 따르면, 선암사는 백제성왕 5년인 527년에 아도화상이 창건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렇다면 어언 1천 5백년의 성상이 쌓였다. 이후 도선국사가 지금의 자리에 가람을 중창했고, 의천 대각국사는 삼창주로서 대각암에 주석하였다고 한다. 대각국사 중창건도기에 의하면 법당 13, 전각 12, 요사 26, 산암 19개였다고 한다.

경운원기 대선사 비(碑). 선암사 부도전에 모셔져 있다.
경운원기 대선사 비(碑). 선암사 부도전에 모셔져 있다.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선암사는 호남의 명찰로 자리잡아갔고, 사자상승 법류상속에 의한 가람으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해 오면서 승가공동체를 형성해 왔다. 선암사는 아도화상 창건 이래 도선국사 -의천 대각국사-경잠-경준-문정-호암을 거쳐서 상월 새봉과 서악스님의 중창을 거쳐서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는 사적이다. 상월 새봉스님은 선암사 중창불사만이 아닌, 화엄대법회를 개최했고, 1798년에는 해붕 전령스님이 칠전을 중창하였고, 해붕- 눌암 -익종 스님이 차례로 중창불사를 주도했으며, 현재의 가람형태를 갖췄고, 화재 때문에 청량산 해천사로 바꿨던 산명과 사명도 조계산 선암사로 개칭해서 부르게 되어 오늘에 이른다는 간략한 사찰의 연혁이다.

조선시대 말기에는 함명태선- 경붕익운- 경운원기- 금봉기림이라는 4대 명(名) 강백을 배출했다. 선암사는 1919년 본말사법에 의하여 전국사찰을 30본산으로 지정할 때 호남의 4대 본산 가운데 하나로 지정되었다. 선암사는 여수 순천 광주 지역의 말사들을 관장하였다.

다소 좀 장황한 설명이 이어졌지만, 여기서 왜 이렇게 선암사의 연혁을 나열식으로 전개했느냐 하면 이유는 간단하다. 선암사라는 가람은 사자상승에 의해서 면면히 계승되어 왔고, 선암사에서는 조선 후기 4대 명 강백을 배출할 정도로 강맥(講脈)이 이어져 왔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이다.

동아시아의 불교는 한역불교이다. 인도에서 저술된 거의 모든 범본(梵本) 불서는 1세기부터 12세기에 이르기 까지 거의가 한역되었고, 이 한역경전은 동아시아 불학의 총집성(總集成)으로서 대장경으로 집약하게 되는 것이며, 그 결론이 바로 고려대장경이다. 인도에서 범본 장경이 산실된 마당에 한역장경은 그대로가 불교경전으로 자리매김 되었고, 동아시아인 중국 한국 일본에서는 이 한역불전의 독해에 의해서 불학이 성립될 수밖에 없었다. 요즘 식으로 해석하면 조계산 선암사에는 백제시대부터 고려를 거쳐 조선에 이르면서 조선후기에 오면 최고의 4대 석학이란 학맥을 형성, 선암사는 그야말로 불학연구와 수행의 중심 사찰이었다는 것이다.

선암사 주지를 역임하고 금둔사 금둔선원 조실로 계시는 지허(指墟) 선사의 ‘선조사 경운 대종사(先 祖師 擎雲 大宗師)’<華嚴宗主 擎雲 元奇 大禪師 散稿輯: 辛奎卓 編譯, 擎雲元奇大禪師 門孫 會 刊 2016년 4월 3일>에 의하면 경운원기 대종사님의 일대기가 잘 정리되어 있다. 제자 가운데는 박한영, 진진응, 장금봉 등의 당대의 걸출한 제자들이 있었고, 지인들로는 당대의 유명한 선비들이 너무 많아서 일일이 다 열거하기가 번거로울 정도다.

경운원기 대선사는 1852년에 출생해서 1936년 입적하셨다. ‘화엄종주경운당대사비(華嚴宗主擎雲堂大師碑)는 미소산인 정인보 짓고 위창 거사 오세창 씀’으로 되어 있고, ‘조계산의 경운당 대사 비 음기(曹溪山擎雲堂大師碑陰記)’는 ‘경진년(1940)6월 경운원기 스승님의 문하생 구산 사문 정호 삼가 씀’이라고 되어 있는데, 정인보와 사문 정호가 누구인가. 당대 조선의 대석학들이다.

선암사 조사당. 중국에서 선을 전한 달마대사를 시작으로 육조혜능, 마조도일 등의 중국의 5대 선사 진영과 태고종조인 태고보우 국사, 그리고 선암사의 선(禪)을 널리 알린 침굉현변 선사 진영을 모셨다. 조사당 주련 오른쪽에 '放出曹溪一波淸' 왼쪽에 '劈開南岳千峰秀' 의 칠언구가 쓰여져 있다.
선암사 조사당. 중국에서 선을 전한 달마대사를 시작으로 육조혜능, 마조도일 등의 중국의 5대 선사 진영과 태고종조인 태고보우 국사, 그리고 선암사의 선(禪)을 널리 알린 침굉현변 선사 진영을 모셨다. 조사당 주련 오른쪽에 '放出曹溪一波淸' 왼쪽에 '劈開南岳千峰秀' 의 칠언구가 쓰여져 있다.

지허 선사의 <선 조사 경운원기 대종사>에 의하면,

“선암사 대승암 경운 대종사는 태고보우 선사의 20세 손이고 임제 선사의 39세 손이다. 임제 선사는 황벽희운 선사의 법을, 황벽 선사는 백장회해 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백장 선사는 마조도일 선사의 법을, 마조 선사는 남악회양 선사의 법을 이었으며 남악 선사는 육조혜능 선사의 법을 이었다. 경운 대종사는 조계 육조혜능 대사의 44세 손이고, 조계 육조 스님의 제자인 남악회양에게 법을 받은 마조도일 선사가 139인의 천하종사(天下宗師)를 배출하여 천하를 흔드는 대 선풍을 일으켰는데 후세에 조계 육조 혜능의 44세 손(孫) 경운 대종사가 우리나라 조계산에 배출되었다는 뜻으로 선암사 입구 경운 대종사의 비가 있는 길 양쪽에 표주석을 세우고 표주석 뒤에 다음의 7언구를 썼다”

경운 대종사 대승암 제자였던 박한영 스님은 조선불교조계종 종정을 역임하셨는데,

‘방출조계일파청(放出曹溪一波淸: 조계산의 한줄기가 맑게 트여 나와서)

벽개남악천봉수(劈開南岳千峰秀: 남악회양 선사가 천지개벽을 열어 수많은 봉우리를 수려하게 하였다)‘

란 시를 지었다.

근세 한국불교의 강맥은 선암사 경운 원기 대종사로부터 연원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경운 원기 대종사는 선교율(禪敎律)을 겸비한 화엄종주 대선사이셨다. 선암사가 소유권으로 인한 소송에 휘말리면서 제자들 또한 터전을 잃고 이리저리 방황하면서 곤경에 처하자, 스승의 위대함은 알았으나 알리는 일에는 소홀했던 것이다.

이제 선암사의 주인은 누구이며 누가 살아야 하는가의 당위성에 집중할 때라고 본다. 선암사는 대대로 사자상승에 의한 가람이며, 임제 정맥을 계승한 태고법손의 가람으로서 ‘불교정화니, 법난이니, 통합종단이니, 불교재산관리법이니, 하는 법적 다툼’ 이전에 선암사란 자체 가람의 전통과 역사와 선암사 그 자체의 적통성에 주목해야 하고, 이젠 태고종도들의 총본산으로서의 정체성에 입각해서 선암사를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차회에서는 현실의 현안문제로서의 태고종의 종권수호 대회와 조계종과의 대화를 중심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원응스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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